최근 한국시리즈에 진출한 팀의 핵심 코치가 타 팀 감독으로 내정되면 한국시리즈 우승이 불발됐던 KBO리그의 달갑지 않은 징크스가 있다. 이호준 타격코치가 SSG 랜더스 감독으로 내정된 LG는 징크스를 깨고 1994년 이후 29년 만에 우승에 도달할 수 있을까.
지난 5일 본지 단독 보도에 따르면 김원형 감독과 계약 해지를 발표한 SSG가 최근 이호준 LG 타격코치를 새 감독으로 내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SSG는 LG와 KT의 한국시리즈가 끝난 뒤 감독 선임을 공식 발표할 전망이다.
지난해 KBO리그 최초 '와이어 투 와이어' 통합우승을 거둔 SSG는 올 시즌 정규시즌 3위로 가을야구에 진출했지만 준플레이오프에서 4위 NC에 3전 3패로 탈락하는 참사를 겪었다. SSG 구단은 지난해 한국시리즈를 앞두고 3년 총액 22억 원에 재계약한 김원형 감독과의 계약을 1년 만에 전격 해지했다.
SSG는 “팀 운영 전반과 선수 세대교체 등 변화와 혁신이 필요하다고 판단했다. 팀을 쇄신하고 더욱 사랑받는 강한 팀으로 변모시키기 위해서 변화가 불가피했다. 이에 당초 선수 및 코칭스태프 구성에 대한 변화 범위를 뛰어넘어 현장 리더십 교체까지 단행하게 됐다”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향후 SSG는 다양한 후보군을 선정해 감독 인선 작업을 시작할 계획이다. 야구장을 찾는 팬들에게 더욱 더 재밌는 야구를 선보일 수 있는 감독을 선임하기 위해 노력할 것이다”라고 새 사령탑 기준을 밝혔다. SSG는 LG 라인업을 짜임새 있는 공포의 타선으로 변모시킨 이호준 코치에게 지휘봉을 맡기기로 결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호준 코치는 2000년부터 2012년까지 13년 동안 SSG의 전신인 SK에서 왕조 구축을 이끌었다.
한국시리즈를 앞두고 팀 내 핵심 코치의 감독 내정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2010년대 들어 제법 많은 코치들이 한국시리즈를 앞두고 타 팀 감독으로 내정됐는데 공교롭게도 모두 한국시리즈 우승에 실패한 뒤 감독으로 부임했다.
시작은 2017년 두산 수석코치를 맡다가 한화 사령탑이 된 한용덕 전 감독이었다. 2017시즌 도중 김성근 감독의 중도 하차 이후 이상군 감독대행 체제로 시즌을 마친 한화는 차기 사령탑으로 일찌감치 한용덕 감독을 낙점했다. 한용덕 감독이 수석 겸 투수코치로 몸담은 두산이 포스트시즌을 치르는 중이라 발표 시점이 미뤄졌고, 두산이 10월 30일 한국시리즈 5차전에서 KIA에 패하며 준우승이 확정된 뒤 한화가 한용덕 감독 선임을 발표했다.
이듬해 이강철 두산 수석코치 또한 두산이 한국시리즈 우승에 실패한 직후에 KT 지휘봉을 잡았다. 당시에도 올해와 마찬가지로 KT의 이강철 신임 감독 내정 소식이 두산의 한국시리즈에 앞서 발표됐다.
두산이 한국시리즈를 준비하는 기간에 이강철 코치가 KT 구단의 제안을 받아들였고, 당시 김태형 감독을 비롯해 두산 구단 측에 양해를 구하고 합의 과정을 마쳤다.
당시 이강철 감독은 “현재 팀이 한국시리즈를 앞두고 있어 감독 수락과 발표 시기에 대해 고민이 많았는데 김태형 감독님과 사장·단장님께서 배려를 많이 해주셨다. 두산의 6번째 한국시리즈 우승에 최선을 다해 힘을 보탠 후 기쁘고 홀가분한 마음으로 KT 감독으로 임하겠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정규시즌 1위 두산은 당시 한국시리즈에서 SK(현 SSG)에 2승 4패 일격을 당하며 우승에 실패했다.
2019년 10월에는 허문회 키움 수석코치가 롯데 사령탑으로 내정됐다. 10월 26일 키움이 두산에 4전 전패로 한국시리즈 우승에 실패한 가운데 베일에 싸여있던 롯데 감독이 허문회 코치라는 사실이 밝혀졌다. 9월 초 부임한 롯데 성민규 단장이 4~5명 국대 감독 후보군과 만남을 가지며 면접을 진행했고, 선수들 사이에서 평판이 좋고 육성에 일가견이 있는 허 코치를 일찌감치 차기 사령탑으로 내정했다. 허 코치 또한 키움의 준우승을 보고 팀을 떠났다.
가장 최근 사례는 SSG와 계약이 해지된 김원형 전 감독이다. 2020년 11월 6일 준플레이오프를 통과한 김원형 두산 투수코치의 SK 사령탑 내정 소식이 전해졌고, 감독 선임 발표 시기를 조율 중이었던 SK가 포스트시즌 중인 두산의 배려 아래 감독 선임을 공식 발표했다.
김원형 감독은 당시 “현재 플레이오프를 앞두고 있음에도 감독 내정을 축하해주시고 조기 감독 발표를 배려해 주신 두산 베어스의 전풍 대표이사님, 김태룡 단장님, 김태형 감독님께 감사드린다”라며 “SK 감독이 돼 두산을 떠나지만 베어스의 7번째 우승과 한국시리즈 2연패를 기원하겠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결과는 또 준우승이었다. 두산은 플레이오프에서 2위 KT를 3승 1패로 물리치고 한국시리즈에 진출했지만 NC에 2승 4패로 무릎을 꿇으며 한국시리즈 2연패에 실패했다.
시간이 흘러 이제 또 다른 한국시리즈 진출팀인 LG의 타격코치가 시리즈를 앞두고 타 팀 사령탑으로 내정됐다. 2002년 이후 21년 만에 한국시리즈에 진출해, 1994년 이후 29년 만에 우승을 노리는 LG가 그 동안의 '준우승 징크스'를 깨고 감격의 통합우승을 거둘 수 있을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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