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C 다이노스의 슈퍼 에이스 페디는 결국 팀의 가을야구 마지막이 될 수 있는 순간에 나서지 못한다. ‘슈퍼 에이전트’가 아니라 구단이 전적으로 상황을 살피고 있지만 이미 누적된 피로는 어쩔 수 없는 듯 하다.
NC는 5일 수원 KT위즈 파크에서 열리는 ‘2023 신한은행 SOL KBO리그’ 포스트시즌 플레이오프 5차전 KT위즈와의 경기의 선발 투수로 신민혁을 예고했다. KT는 예상대로 웨스 벤자민이다.
한국시리즈 진출을 두고 2승2패로 맞서고 있는 상황. NC는 1,2차전을 승리하며 기세를 올렸지만 3,4차전을 내리 패하면서 되려 벼랑 끝 위기에 몰렸다. 와일드카드 결정전부터 강행군을 펼치며 체력과 집중력은 갈수록 떨어졌다. 3,4차전을 모두 손 쓸 수도 없이 내주면서 흐름도 KT쪽으로 넘어갔다. 이런 침체된 분위기를 끌어올리고 기류를 돌릴 수 있는 인물이 페디였다.
하지만 페디의 5차전 선발 등판은 불발됐다. 플레이오프 4차전이 끝나고 강인권 감독은 5차전 선발에 대해서 “지금 페디의 컨디션이 100%로 회복이 되지 않았다. 현재 신민혁의 컨디션도 나쁘지 않다”라면서 “내일(4일) 아침 컨디션을 체크해보고 결정하다록 하겠다”라면서 페디의 선발 등판 여부를 확정짓지 않았다.
결국 페디 대신 신민혁이 5차전 선발 투수로 예고됐다. 어쩌면 일찌감치 신민혁의 선발 등판을 결정해 놓았을 수 있다. 페디의 피로도는 생각보다 높았고 5일 휴식에도 풀리지 않았다.
정규시즌 페디는 KBO리그의 특급 에이스였다. 지난해까지 메이저리그 구단에서 선발 로테이션을 소화했던 경험은 리그를 압도할 수준이었다. 정규시즌 30경기 20승6패 평균자책점(180⅓이닝 40자책점) 209탈삼진의 기록을 남겼다.
다승 평균자책점 탈삼진 모두 1위로 트리플크라운을 달성했다. 선수로는 역대 4번째, 횟수로는 7번째로 작성했다. 선동열이 1986년과 1989~1991년까지, 총 4차례 트리플크라운을 기록했다. 이후 2006년 한화 류현진, 2011년 KIA 윤석민이 트리플크라운을 달성한 바 있다. 12년 만에 페디가 대기록을 세웠다.
하지만 지난달 16일 정규시즌 마지막 등판이었던 광주 KIA전에서 우측 전완부에 강습 타구를 맞으면서 주저 앉았다. 회복에 전념했다. 와일드카드 결정전과 준플레이오프를 모두 건너뛰었다. 시즌 내내 압도적인 구위를 선보였기에 피로도는 쌓일 수밖에 없었다. 이미 커리어 최다 이닝을 돌파했던 상황. 준플레이오프 3차전 선발 등판을 준비했지만 우측 팔꿈치 충돌 증후군 증세로 등판이 미뤄졌다. 팀은 준플레이오프를 3경기 만에 끝내면서 페디에게 충분한 휴식 시간을 줬다.
결국 약 2주 가량의 휴식 끝에 지난달 30일 플레이오프 1차전에 선발 등판했다. 정규시즌보다 더 위력적인 구위를 선보였다. 최고 155km의 투심 패스트볼(37개)이 스트라이크 존 구석구석을 파고 들었고 주무기 스위퍼(49개)도 날카롭게 꺾였다. 페디는 KT 타자들을 정신 없이 만들었고 6이닝 98구 3피안타(1피홈런) 1볼넷 12탈삼진 1실점으로 혼신투를 선보였다. 12탈삼진은 플레이오프 역대 한 경기 최다 탈삼진 신기록이었다.
이후 5일 휴식을 취하고 다시 마운드에 오를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이미 누적된 피로를 완전히 회복할 수는 없었다. 정규시즌과 포스트시즌 도합 186⅓이닝(정규시즌 180⅓이닝+포스트시즌 6이닝), 3002구(정규시즌 2904구+포스트시즌 98구)를 던졌다. 개인 커리어에서 이렇게 많은 공을 던진 적은 없었다.
KBO리그 최고의 무대인 한국시리즈까지 단 1승만 남겨두고 있는 상황. 승자 독식 경기이자 지면 탈락인 경기다. 그렇다고 NC는 페디의 등판 일정을 무리하게 당겨쓰지않았다. NC 구단과 페디는 최후의 수를 두지 않았다.
현재 페디를 향한 메이저리그의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MLB.com은 올해 애리조나 다이아몬드백스의 월드시리즈 진출을 이끈 메릴 켈리(2015~2018년 SK)를 예로 들면서 “KBO리그에서 성장한 켈리는 애리조나의 내셔널리그 우승 주역이 됐다. 페디도 빅리그로 돌아와 선발진에 입성할 것으로 에측이 되고 있다”라고 전했다.
이미 역수출의 성공 사례가 있는 상황에서 페디의 눈에 띄는 퍼포먼스는 메이저리그 구단이 예의주시할 수밖에 없다. 그렇기에 이미 많이 던진 페디의 몸 상태를 구단이 아닌 에이전시 측에서 관리할 수 있는 개연성도 있다. 페디의 에이전시는 ‘슈퍼 에이전트’ 스캇 보라스가 운영하는 보라스 코퍼레이션이다.
NC는 지난 2017년 보라스 사단 소속의 제프 맨쉽을 외국인 선수로 활용한 적이 있다. 그런데 시즌 중반 팔꿈치 통증이 있었던 맨쉽의 재활 스케줄을 에이전시인 보라스 코퍼레이션 쪽에서 관리했다. NC는 당시 맨쉽의 재활 일정 관리에 애를 먹은 바 있다. 맨쉽은 개막 7연승이라는 압도적인 퍼포먼스를 선보이기도 했지만 팔꿈치 통증으로 5월부터 두 달 가량 이탈했다. 21경기 12승4패 평균자책점 3.67이라는 비교적 평범한 성적을 남기고 1년 만에 한국을 떠났다.
하지만 페디의 상황은 전혀 다르다. NC 임선남 단장은 “페디는 추가적으로 검진한 것은 없다. 시즌을 치르면서 팔꿈치나 어깨 쪽에 피로도가 많이 쌓인 것을 관리할 필요가 있다”라면서 에이전시의 개입 여부에 대해서는 “전혀 아니다. 그런 일은 전혀 없다. 더 이상 그런 말이 안나왔으면 좋겠다. 그런 일은 절대 없다”라고 단호하게 선을 그었다. 구단이 전적으로 페디의 몸 상태를 관리하고 있고 페디의 몸상태는 현재 100%가 아니라는 것을 못 박았다.
페디 없이 경기를 치러야 하는 NC는 올해 포스트시즌의 신데렐라 신민혁에게 한국시리즈 진출의 운명을 맡겼다. 신민혁은 지난달 22일 SSG와의 준플레이오프 1차전에서 5⅔이닝 4피안타 1볼넷 3탈삼진 무실점으로 승리 발판을 마련했다. 31일 KT와의 PO 2차전에도 6⅓이닝 1피안타 1볼넷 2탈삼진 무실점 호투로 승리했다. 12이닝 무실점으로 빅게임 피처의 존재감을 보여주고 있다.직구 구속은 최고 144km로 빠르지 않지만 제구가 좋고, 페디에게 배운 커터와 체인지업을 조합해 포스트시즌을 지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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