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년 전 한국시리즈를 연상케 하는 환상적인 수비로 위기의 팀을 구해낸 박경수(39·KT 위즈). 그러나 인터뷰 내내 캡틴의 표정은 밝지 못했다. 3차전 승리의 기쁨보다 1, 2차전 부진으로 인한 미안함이 커보였다.
박경수는 지난 2일 창원NC파크에서 열린 2023 신한은행 SOL KBO 포스트시즌 NC 다이노스와의 플레이오프(5전 3선승제) 3차전에 9번 2루수로 선발 출전해 39세라는 나이를 의심케 하는 멋진 다이빙캐치로 승리에 힘을 보탰다.
3-0으로 앞선 7회말 수비였다. 선두 제이슨 마틴이 손동현 상대로 안타성 타구를 날린 가운데 박경수가 몸을 날리는 다이빙캐치를 선보였고, 재빠르게 1루에 송구해 첫 아웃카운트를 책임졌다. 박경수는 마틴의 아웃을 확인한 뒤 오른손으로 글러브를 강하게 치며 호수비의 짜릿함을 만끽했다. KT 이강철 감독은 “수비에서 박경수가 중요한 순간 잘 잡아줬다”라며 캡틴의 슈퍼캐치에 박수를 보냈다.
경기 후 만난 박경수는 “순간적으로 짜릿했다. 나 자신도 깜짝 놀랐다”라고 웃으며 “딱 그렇게 잡을 수 있는 타구였다. 그 동작이 아니면 못 잡는 타구였다. 크게 어려운 타구는 아니지만 꼭 다이빙해서 잡아야하는 타구가 있는데 오늘 딱 그렇게 됐다. 멋있어 보였는지 다들 칭찬을 많이 해줬다. 그런 플레이가 하나 나오면 팀 사기가 올라간다. 제일 큰 형이 조금이나마 좋은 모습으로 보탬이 된 것 같아서 기분 좋다”라고 소감을 전했다.
그러나 기쁨도 잠시 박경수의 표정은 금세 어두워졌다. 그는 “그 동안 너무 못했다. 고참들이 잘해야 하는데 전체적으로 좋지 않아서 선수들에게 너무 미안했다. 자책을 많이 하고 있다”라고 고개를 숙였다.
그도 그럴 것이 박경수는 2023시즌에 앞서 이강철 감독과의 면담을 통해 현역을 연장했지만 시즌 기록이 107경기 타율 2할 1홈런 12타점에 그쳤다. 여기에 플레이오프에서도 1차전 1타수 무안타, 2차전 2타수 무안타로 보탬이 되지 못했다. 물론 박경수의 역할은 그라운드보다 더그아웃에서 더 빛이 난다. 박경수는 KT의 정신적 지주이자 든든한 맏형이다. 수비 또한 그에 버금가는 내야수가 아직 나타나지 않고 있다. 그럼에도 캡틴의 마음은 편치 못했다.
박경수는 “1, 2차전을 모두 내준 뒤 선수단 미팅을 해야할 지 엄청 고민했다. 매년 가을야구를 하고 있지만 모두의 마음가짐은 다 똑같을 것이다. 그런데 굳이 미팅을 통해 말을 하면 분위기가 더 처질 것 같아서 많이 참았다”라고 고충을 털어놨다.
그 순간 박경수의 마음을 가볍게 만든 후배가 1명 등장했다. 베테랑 내야진의 한 축인 황재균이 자진해서 선수단에게 메시지를 전달한 것. 박경수는 “오늘(2일) (황)재균이가 한마디 하고 싶다면서 좋은 말을 했다. ‘우리가 또 할 수 있고, 마지막이라고 생각하지 말자. 2패했는데 뭐가 두렵냐. 더 하자’라는 메시지였다. 주장으로서 고마웠다”라고 뒷이야기를 전했다.
KT는 1, 2차전을 부진을 씻고 3차전에서 마침내 정규시즌 2위의 품격을 되찾으며 2패 뒤 1승에 성공했다. 여전히 1패면 가을야구가 종료되는 열세에 처해있지만 베테랑 캡틴은 남은 시리즈 전망을 밝게 내다봤다.
박경수는 “이제 어느 정도 적응했다고 봐도 될지 모르겠다. 어쨌든 3차전이 잘 풀렸고, 큰 실수 없이 좋은 플레이가 나와서 4차전이 조금 더 기대된다”라며 “3차전을 이겼으니 경기력이 더 올라오지 않을까 싶다. 여기에 우리는 4차전에 에이스 쿠에바스가 나간다. 내일(3일) 경기만 생각하겠다”라고 바라봤다.
이어 “우리는 올 시즌 초반 성적이 안 좋았지만 치고 올라갔다. ‘더 이상 떨어질 게 뭐 있나. 편하게 하자’라는 마음을 가졌다. 지금도 그렇게 됐으면 좋겠다. 이상하게 조금 어려울 때 선수들이 잘 뭉치는 팀이라 기대를 해보고 싶다”라고 역스윕을 꿈꿨다.
NC파크 3루 관중석에서 ‘비트배트’를 들고 열렬한 응원을 보낸 원정 팬들을 향한 인사도 잊지 않았다. 박경수는 “점수를 많이 낸 건 아니지만 이길 수 있는 경기를 보여드려서 다행이다. 우리 팬들이 멀리까지 와주셨는데 선수들은 포기라는 생각을 단 한 명도 안 하고 있다. 이길 때까지 계속 하나로 뭉쳐서 잘할 거니까 끝까지 많은 응원 부탁드린다”라고 감사를 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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