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우리는 미친다.’
NC 다이노스의 올해 가을야구를 관통하는 문장이다. 주장 손아섭은 정규시즌에서 직전 선수들이 모인 미팅 자리에서 이 문장을 외쳤다. “지치면 진다. 하지만 미치면 이긴다. 오늘 우리는 미친다”라고 말하는 ‘명언’으로 선수들의 사기를 북돋웠다.
그리고 이 문장은 올해 NC의 가을야구 슬로건처럼 됐다. 현재 응원단이 펼치고 있는 통천에 적힌 문구이기도 하다. NC 선수단은 실제로 미친듯이 질주했다. 정규시즌 4위로 마무리 지었다. 정규시즌 막판 페이스가 떨어지면서 더 높은 단계에서 시작을 못한 게 아쉬웠던 상황. 하지만 4위로 두산과의 와일드카드 결정전 1차전부터 3위 SSG와의 준플레이오프 3경기, 그리고 2위 KT와의 플레이오프 2차전까지. 6경기를 치르는 동안 매 경기 미친 선수들이 등장하면서 올해 가을야구 6연승을 질주했다.
와일드카드 결정전에서는 서호철이 만루홈런 포함한 6타점 대활약으로 대역전극을 이끌었다. 준플레이오프 1차전에서는 선발 신민혁의 호투, 대타 김성욱의 결승 투런포가 나왔다. 2차전은 손아섭 박건우 등이 활약했고 김형준의 쐐기포에 힘입어 승리했다. 3차전에서는 제이슨 마틴의 스리런 홈런, 그리고 프랜차이즈 에이스 이재학의 투혼으로 승리하며 플레이오프 무대로 올라섰다.
KT와의 플레이오프 1차전에서는 에이스 에릭 페디가 돌아왔다. 페디의 12탈삼진 역투에 오영수가 상대 에이스 쿠에바스를 격침시키는 홈런 포함해 3안타로 활약했다. 2차전에서는 박건우의 투런포가 있었고 9회말 2사 만루에서 유격수 김주원이 경기를 종료시키는 슈퍼 다이빙캐치가 나왔다. 매 경기 포인트로 꼽을 만한 순간들이 있었고 그 순간은 모두가 미쳤다.
그러나 가장 아래 단계부터 시작한 NC의 포스트시즌 여정은 지칠 때도 됐다. 그동안 6연승의 달콤함에 취해 있었고 승리의 각성 효과로 지친 줄 모르고 뛰었다. 그러나 이제는 각성의 효과도 옅어지고 있었고 체력적인 부침도 눈에 띄기 시작했다. 지난 2일 창원 홈으로 돌아와 치른 플레이오프 3차전은 NC의 힘이 서서히 떨어지고 있다는 것을 확인한 경기였다.
일단 앞서 6경기에서 44득점을 올린 득점력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플레이오프 2차전에서도 승리했지만 3점에 묶이면서 3-2의 진땀승을 거뒀다. 타선의 페이스가 확연하게 떨어지기 시작했다. 결국 3차전, 까다로운 구질의 공을 던지는 선발 고영표를 만나 단 3안타 밖에 뽑아내지 못하면서 영패를 당했다. 포스트시즌 6연승이 다소 허무하게 끊겼다.
불펜에서는 필승조 김영규가 7회 문상철에게 솔로 홈런을 얻어 맞았다. 좋지 않은 징조들이 등장했다.
그동안 미치니까 이겼는데, 이제 지치니까 졌다. 사령탑도 이를 인지하고 있고 경계했지만 선수들의 체력을 감독이 혼자 끌어올릴 수는 없었다. 강인권 감독은 3차전 경기를 앞두고 “지금 타선의 그래프가 내려가는 타이밍이다”라면서 “선수단의 피로도가 높은 것은 사실이다. 체력적인 것도 그렇지만 정신적인 부분들도 분명 피로도가 있을 것이다. 집중력도 어느 정도 하다 보면 한계가 있다. 2경기 하고 하루 휴식을 하는 일정이라서 어제 쉬고 오늘 연습하는 것을 봤을 때 컨디션들은 회복된 모습이었다”라고 했다. 그러나 선수단은 이전만큼 활발하지 못했고 활기를 띄지 못했다.
경기가 끝난 뒤에는 “타선이 득점 기회를 연결하지 못한 게 아쉬웠다. 고영표를 공략하지 못한 것이 어려운 경기가 된 이유인 것 같다”라면서 “김영규의 구속이 아직은 회복되지 않았다. 피로도가 높다고 보여진다. 부상은 없으니까 지켜보도록 할 것이다”라고 설명했다.
이제는 정말 한계와의 싸움이다. 박건우는 감기 몸살 증세로 고생했고 박민우 권희동 서호철 등 주요 주축 선수들은 햄스트링 어깨 발목 등 상태가 좋지 않다. 성한 몸을 가진 선수들이 거의 없다. 6연승이라는 마취제도 떨어진 상황.
그래도 여전히 NC는 유리한 고지를 점하고 있다. 시리즈 2승1패의 상황. 1승만 더하면 한국시리즈 무대로 올라설 수 있다. 일단 4차전 선발 매치업은 KT 윌리엄 쿠에바스, NC는 송명기다. KT는 여전히 벼랑 끝에 몰려 있는 상황이라 에이스 쿠에바스를 3일 휴식하고 투입하는 강수를 뒀다. NC는 순리를 지킨다. 만약 4차전에서 패하고 시리즈 전적 2승2패가 되더라도 NC는 극강의 에이스 에릭 페디가 5차전에서 기다리고 있다. 이제 NC는 그동안 잠시 잊고 있었던 한계와의 싸움을 다시 펼쳐야 한다. 이 한계를 넘어서야 한국시리즈가 보일 수 있다. /jhrae@os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