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C 다이노스 선발진에는 트리플크라운의 에이스, 에릭 페디를 제외하면 상대에 우위를 점할 수 있는 투수가 없었다. 구창모라는 걸출한 토종 에이스가 있었지만 마운드를 지키지 못하고 부상으로 자주 팀을 이탈했다. 구창모는 2021년 수술을 받았던 왼팔 전완부 척골 쪽에 다시 재골절을 당하며 시즌 아웃됐고 재수술을 받았다.
NC가 가을야구에 진출했지만 ‘언더독’으로 평가 받았던 이유 역시 확실한 선발이 없었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페디마저 정규시즌 막판 타구에 맞아 부상을 당했고 우측 팔꿈치 충돌 증후군 증세로 와일드카드 결정전, 준플레이오프 모두 마운드에 오르지 못했다.
하지만 NC는 선발진의 열세에도 불구하고 가을야구 ‘미친 질주’를 이어가고 있다. 그 중심에는 페디와 구창모의 빈 자리를 완벽하게 채워준 신민혁이 있었다.
신민혁은 31일 수원 KT 위즈 파크에서 열린 ‘2023 신한은행 SOL KBO리그’ 포스트시즌 플레이오프 2차전 KT 위즈와의 경기에 선발 등판해 6⅓이닝 1피안타 1볼넷 2탈삼진 무실점 역투를 펼치면서 팀의 3-2 승리에 발판을 놓았다.
그런데 여기서 ‘사고’를 쳤다. 신민혁은 엘리아스에 뒤지지 않는 피칭을 선보이며 대등한 경기를 이끌었다. 5⅔이닝 4피안타 1볼넷 3탈삼진 무실점의 역투를 펼치고 마운드를 내려왔다. 승리 투수가 되지는 못했지만 신민혁의 역투로 NC는 무너지지 않고 버텼고 결국 8회 대타 김성욱이 엘리아스를 무너뜨리는 투런포를 터뜨렸다. 신민혁의 역투를 바탕으로 NC는 준플레이오프 3연승 싹쓸이에 성공했다.
NC는 전날(30일) 플레이오프 1차전에서 돌아온 에이스 에릭 페디의 6이닝 3피안타(1피홈런) 12탈삼진 1실점의 역투와 타선의 폭발에 힘입어 9-5로 승리했다. 플레이오프 1차전 승리 팀의 한국시리즈 진출 확률 78.1%를 손에 넣었다. 이 기세를 신민혁이 이어가야 했다.
신민혁의 매치업 상대는 다시 외국인 에이스였다. 정규시즌 15승(6패)으로 다승 2위를 차지한 웨스 벤자민과 선발 매치업을 이뤘다. 그러나 이번에도 상대 에이스와 대결에서 뒤지지 않고 오히려 경기를 압도했다. 신민혁은 이날 2사 2사 후 문상철에게 좌익수 방면 2루타를 허용했다. 이게 신민혁의 유일한 피안타였다.
이후 7회 1사까지 14타자를 연속 범타 처리하는 위력으로 KT 타선을 잠재웠다. 신민혁의 패스트볼과 체인지업 커터 조합으로 타자들의 타이밍을 흔들었다. 정타조차 거의 허용하지 않았다. 최고 144km의 포심 패스트볼은 15개 밖에 구사하지 않았다. 대신 주무기 체인지업 35개와 커터 28개를 던지면서 KT 타자들의 방망이를 헛돌게 했다.
7회 1사 후 알포드에게 볼넷, 그리고 박병호의 3루수 땅볼 때 2루수 박민우의 포구 실책으로 1사 1,2루 위기를 만든 뒤 마운드를 내려왔다. 박수 받을 만한 토종 에이스의 위력투였다.
이어진 1사 1,2루에서 신민혁의 바통을 이어받은 류진욱은 장성우를 투수 병살타로 솎아내면서 신민혁의 무실점 피칭을 지켜냈다. 신민혁이 올해 포스트시즌 12이닝 무실점, ‘제로맨’으로 등극하는 순간이었다.
신민혁은 페디 따라하기를 시작한 이후 더 좋아졌다. 피칭 전 셋업 동작을 페디처럼 바꿨다. 상체를 숙이고 포수 미트를 바라보는 셋업 자세는 페디와 똑같다. 여기에 페디의 수많은 주무기 중 하나인 커터의 그립을 배워서 요긴하게 활용하고 있다. 이날 던진 커터가 페디가 전수해준 작품이었다.
경기 후 신민혁은 “페디의 폼도 따라하면서 던지는 것 등 많은 것을 물어본다. 페디를 따라하는 게 많다 보니까 변화구도 좋아지고 뭔가 날카로워진 것 같다. 스피드도 붙고 제구도 잘 되는 듯한 느낌이다”라면서 “페디의 폼으로 바꾼 뒤 잡생각이 많이 사라졌다. 이전의 자세에서는 다리 들 때 생각이 많았다. 페디처럼 폼을 바꾼 뒤 아무 생각 없이 던지니까 제구도 좋아진 것 같다”라고 설명했다.
커터에 대해서는 “커터는 원래 던졌는데 페디가 던지는 그립으로 바꿨다. 약간 달라진 것인데 제구도 잘 되고 있다”라면서 “체인지업 때문에 커터가 사는 것 같다. 커터와 체인지업은 반대로 휘는 구종들이니까 효과를 보고 있는 것 같다”라고 설명했다.
신민혁의 12이닝 무실점 호투를 함게 이끈 포수 김형준은 “(신)민혁이가 페디에게 커터를 배우고 나서 잘 먹히더라. 그것을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있다. 제구도 잘 되고 불리한 카운트에서 저도 민혁이를 믿고 변화구 사인을 낼 수도 있는 것이다. 어느 구종으로 다 스트라이크를 던질 수 있는 투수니까 편하다”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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