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식이 너무 길었던 것일까. 꼴찌에서 기적의 정규시즌 2위를 해낸 KT 위즈가 1차전에서 NC 다이노스에 예상치 못한 참패를 당했다.
지난 10일 수원 두산전을 끝으로 10개 구단 가운데 가장 먼저 정규시즌을 마친 KT. 당시 극적인 5-4 끝내기승리로 정규시즌 2위를 자력으로 확정 지었고, 플레이오프 직행 티켓을 거머쥔 상태서 무려 3주의 긴 휴식을 가졌다.
KT는 사흘의 휴식을 가진 뒤 곧바로 플레이오프 대비 훈련에 돌입했다. 3일 훈련-1일 휴식 체제로 훈련을 진행하며 단기전을 대비한 가운데 두 차례의 청백전을 통해 실전 감각을 끌어올렸다. 비록 이 과정에서 간판타자 강백호가 옆구리 부상으로 이탈했지만 고영표, 엄상백, 웨스 벤자민, 박병호, 김민혁 등 부상에 신음했던 선수들이 모두 건강을 회복했다.
여기에 KT에는 2년 전 타이브레이커와 한국시리즈에서 눈부신 호투를 펼치며 통합우승을 이끈 에이스 윌리엄 쿠에바스가 있었다. 이강철 감독은 “정규시즌이 끝나자마자 플레이오프 1차전 선발투수로 쿠에바스를 택했다. 쿠에바스는 우리의 에이스다”라고 무한 신뢰를 드러냈다.
그도 그럴 것이 쿠에바스는 지난 6월 보 슐서의 대체 외국인투수로 합류해 대체 외인 성공 신화를 썼다. 2021년 통합우승 이후 지난해 부상으로 2경기 만에 팀을 떠났지만 한층 업그레이드 된 기량을 앞세워 1992년 오봉옥(13승), 2002년 김현욱(10승)에 이어 KBO리그 역대 3번째 무패(12승) 승률왕을 차지했다. 외국인선수로는 최초. 이 감독은 팀을 꼴찌에서 2위로 이끈 일등공신으로 쿠에바스를 꼽았다.
그러나 30일 수원KT위즈파크에서 열린 NC와의 플레이오프 1차전에서 전혀 예상치 못한 상황이 전개됐다. 믿었던 쿠에바스가 와일드카드 결정전, 준플레이오프를 거쳐 올라온 NC 타선에 3이닝 6피안타(1피홈런) 2볼넷 2탈삼진 7실점(4자책)으로 무너진 것.
1회부터 손아섭-박민우 테이블세터에 연속 안타를 맞은 뒤 제이슨 마틴 상대 희생플라이를 허용했고, 2회에는 하위타선에 위치한 오영수에게 뼈아픈 솔로홈런을 허용했다.
3회에는 야수진의 황당 실책이 발생했다. 쿠에바스가 선두 박민우에게 평범한 뜬공 타구를 유도한 가운데 KT에서만 두 차례의 FA 계약을 통해 148억 원을 거머쥔 3루수 황재균이 치명적 포구 실책을 범했다. 쿠에바스는 이후 박건우(2루타), 권희동 상대로 적시타를 맞고 2점을 더 내줬다.
쿠에바스는 좀처럼 안정을 찾지 못했다. 4회 선두 김형준을 7구 끝 볼넷 출루시킨 뒤 김주원의 번트 타구를 잡아 2루에 송구 실책을 저질렀다. 송구만 정확했다면 타이밍 상 아웃을 노릴 수 있었지만 마음이 너무 급했다. 이어 폭투까지 범해 2, 3루를 자초한 가운데 손아섭 상대 1타점 적시타를 맞고 엄상백에게 마운드를 넘겼다. 충격의 조기 강판이었다.
선발이 일찍 내려간 상황에서 소방수도 찾아볼 수 없었다. 엄상백이 박민우의 볼넷에 이어 박건우에게 희생플라이를 맞았고, 이어 올라온 이상동이 권희동을 만나 무려 11구 승부 끝 2타점 쐐기 3루타를 헌납했다. 우중간으로 향하는 타구를 중견수 배정대가 끝까지 쫓아가 포구 채비를 마쳤지만 타구가 글러브를 맞고 튀어나왔다. 외야 수비의 달인으로 불리는 배정대였기에 짙은 아쉬움이 남았다.
공격은 부상에서 돌아온 20승 괴물 에릭 페디 상대로 단 1점을 뽑는 데 그쳤다. 3회 문상철의 솔로홈런이 없었다면 영봉패를 당할 뻔 했다. 이후 김영규가 올라온 7회 선두 장성우와 대타 오윤석이 연속 안타로 분위기를 바꾸는 듯 했지만 문상철이 좌익수 뜬공, 배정대가 병살타로 찬물을 끼얹었다. 다만 9회 배정대의 만루홈런으로 2차전 전망을 밝힌 건 긍정적인 요인이었다.
최종 결과는 2위 KT의 5-9 완패. 이강철 감독은 “NC 타선의 기세가 나흘 휴식을 통해 조금은 가라앉길 바란다”라고 기원했지만 역으로 3주 휴식을 한 KT의 투타 경기력이 무뎌졌다.
KT는 5전 3선승제의 시리즈에서 1패를 안은 채 2차전에 임한다. 2차전 선발로 나서는 다승 2위 웨스 벤자민의 어깨가 무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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