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약 그때 한국을 떠났다면 지금 KBO 역수출 신화가 있었을까.
한국시리즈와 월드시리즈 모두 승리투수가 된 최초의 선수, 메릴 켈리(35·애리조나 다이아몬드백스)의 KBO리그 커리어는 4년이 아닌 2년이 될 수도 있었다. 2015년 SK 와이번스(현 SSG 랜더스)와 계약하며 한국이라는 낯선 땅에 온 켈리는 2016년을 마친 뒤 미국으로 돌아갈 생각이었다.
미국 ‘디애슬레틱’은 지난 29일(이하 한국시간) 월드시리즈 2차전에서 텍사스 레인저스를 7이닝 3피안타(1피홈런) 무사사구 9탈삼진 1실점으로 제압하며 애리조나의 9-1 완승을 이끈 켈리의 스토리를 전했다. 익히 알려진 대로 KBO리그 성공을 발판 삼아 메이저리그 데뷔 꿈을 켈리인데 2년 만에 한국을 떠날 뻔한 사연은 잘 알려지지 않았다.
디애슬레틱에 따르면 켈리는 2016년 자신의 에이전트 아담 카론에게 “한국 생활에 한계가 왔다. 마이너리그 계약을 하는 한이 있더라도 미국으로 돌아가고 싶다”고 말했다. 아내 브리와 친형 리드에게도 같은 말을 할 만큼 한국을 떠나고 싶은 의지가 확고했다.
그때 에이전트 카론이 제동을 걸었다. 아내와 친형에게 연락해 “켈리가 그렇게 하도록 놔두지 말라”고 직설적으로 말했다. 한국에 남는 게 마이너리그 계약보다 더 많은 돈을 벌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때만 해도 켈리는 메이저리그 이목을 끌 수준은 아니었다.
에이전트의 만류로 마지 못해 한국에 남은 켈리는 2018년까지 2년을 더 뛰고 미국으로 갔다. KBO리그 4년 커리어를 인정받아 애리조나와 메이저리그 계약을 하면서 31세의 늦은 나이에 빅리거가 되는 꿈을 이뤘다. 그리고 5년의 시간이 흐른 올 가을, 월드시리즈라는 꿈의 무대에 올라 최고 투구로 주인공이 됐다.
7년 전 한국을 떠나겠다던 켈리를 뜯어말렸던 에이전트 카론도 켈리의 가족과 함께 이날 경기가 열린 텍사스 글로브라이프필드를 찾았다. “어제 일처럼 기억난다”며 그 당시를 떠올린 카론은 “켈리는 보통의 선수들과 달리 메이저리그 계약으로 돌아갈 기회가 있을 때까지 한국에서 버틸 만큼 강인하고 똑똑했다”고 말했다.
한국에서 1년만 잘하면 메이저리그 계약을 따낼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 켈리에겐 4년의 시간이 결코 쉽지 않은 여정이었다. 한국이 싫어서가 아니었다. 메이저리그에 대한 열망이 그 무엇보다 컸다. 켈리는 “더 나아지기 위해 노력하지 않고, 한국에 오래 머물며 안주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건 내 선택 사항이 아니었다. 그걸로 충분하지 않았다”고 돌아봤다.
SK와 옵션이 포함된 다년 계약이 2018년 한국시리즈 우승과 함께 끝났고, FA가 된 켈리는 애리조나로부터 2+2년 보장 550만 달러 오퍼를 받으며 마침내 빅리거가 되는 꿈을 이뤘다. 이후 5년째 애리조나의 주축 선발로 꾸준히 안정적으로 활약하고 있다. 지난해 시즌 전에는 2025년 구단 옵션 포함 2+1년 보장 1800만 달러 연장 계약까지 성공했다.
켈리는 이날 월드시리즈 2차전 승리 후 ‘폭스스포츠’와 방송 인터뷰에서 “한국에 있을 때도 이런 날을 꿈꿨다. 하지만 당시에는 그저 꿈에 불과했다”며 “이런 기회를 준 애리조나 구단에 정말 감사하다”고 말했다.
디애슬레틱은 ‘한국에서 4시즌 동안 아침에 일어나 커피를 내리고 메이저리그 야구를 보던 켈리가 상상하던 그런 밤이었다’고 이날을 묘사했다. 켈리는 “솔직히 말해 26살에 한국으로 건너가는 것이 빅리그나 월드시리즈에서 투구하는 것보다 훨씬 더 두려운 일이라고 생각한다. 한국에 갔을 때는 말 그대로 멀리 떨어져 있는 것처럼 느꼈다”고 되돌아봤다.
아득히 멀게만 보였던 메이저리그였는데 켈리는 올 가을 이 무대의 가장 주목받는 투수가 됐다. 월드시리즈 포함 이번 포스트시즌 4경기(24이닝) 3승1패 평균자책점 2.25 탈삼진 28개 WHIP 0.83으로 위력을 떨치며 일약 스타로 떠올랐다. 켈리와 애리조나에서 원투펀치를 이루고 있는 동료 투수 잭 갤런은 “켈리가 인정받은 게 늦은 감이 있지만 매우 당연한 일이다. 리그에서 가장 과소평가된 투수라 생각한다”고 치켜세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