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찬호, 추신수, 양현종 등 한국인 선수들과 인연이 많은 텍사스 레인저스가 1961년 창단 이후 첫 월드시리즈 우승에 한걸음 더 다가섰다. 5경기 연속 홈런 포함 단일 포스트시즌 최다 타점 신기록을 세운 쿠바 출신 외야수 아돌리스 가르시아(30)가 없었다면 불가능한 일. 그 가르시아가 텍사스에 온 것도 한국인 투수 김광현이 없었다면 불가능했다.
김광현은 지난 2019년 12월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와 2년 보장 800만 달러에 계약하며 메이저리그에 진출했다. 세인트루이스의 40인 로스터에 김광현이 들어가면서 어느 한 선수가 빠졌다. 바로 가르시아였다. 양도 지명(DFA) 처리돼 방출 대기 신세였던 가르시아를 텍사스가 데려갔다. 현금을 주는 조건으로 데려왔는데 그야말로 헐값이었다.
2021년 5월 ‘디애슬레틱’에 따르면 당시 가르시아를 영입한 존 다니엘스 텍사스 사장은 그 금액이 10만 달러였다고 밝혔다. 2019년 당시 환율로 따지면 우리 돈으로 약 1억1600만원에 불과하다. 2019년 트리플A에서 32홈런을 쳤지만 대부분 패스트볼 공략으로 변화구에 대한 약점이 뚜렷했다. 선구안이 약해 무수한 삼진을 당했고, 세인트루이스는 가르시아의 가능성을 낮게 봤다.
텍사스도 가르시아를 한 번 포기했다. 2021년 2월 FA 영입한 투수 마이크 폴티네비치의 40인 로스터 자리를 마련하기 위해 가르시아를 DFA 처리한 것이다. 다른 29개 팀에서도 원하지 않아 웨이버가 통과된 가르시아는 텍사스 산하 마이너리그로 소속이 이관됐다. 하지만 그해 4월 중순 빅리그에 콜업되면서 잠재력을 터뜨리더니 올스타에 선정되며 31홈런 외야수로 자리잡았다.
올해는 커리어 하이 시즌을 보냈다. 148경기 타율 2할4푼5리(555타수 136안타) 39홈런 107타점 OPS .836으로 활약했다. 여세를 몰아 가을야구에서 대폭발 중이다. 13경기 타율 3할5푼7리(56타수 20안타) 8홈런 22타점 OPS 1.204. 아메리칸리그 챔피언십시리즈 4~7차전에 이어 28일(이하 한국시간) 월드시리즈 1차전까지 5경기 연속 홈런으로 광란의 가을을 보내고 있다.
특히 이날 월드시리즈 1차전은 5-5 동점으로 맞선 연장 11회말 우측 담장을 넘어가는 솔로 홈런으로 경기를 직접 끝냈다. 텍사스의 월드시리즈 선승을 이끌며 단일 포스트시즌 사상 최다 22타점 신기록까지 세웠다. ALCS MVP 수상에 이어 월드시리즈 1차전부터 끝내기 홈런 포함 4타수 3안타 2타점으로 무서운 기세를 이어갔다.
두 번이나 방출 대기 신세였던 가르시아에겐 그야말로 인생 역전. 2년 전 시즌을 앞두고 가르시아를 양도 지명한 크리스 영 텍사스 단장도 이날 1차전을 앞두고 공식 기자회견에서 이에 대한 질문을 받았다. 영 단장은 “그때 가르시아는 성장 중이었지만 메이저리그에서 좋은 선수가 될 수 있을 만큼 일관성이 있는지 의문이었다. 당시에는 40인 로스터에 들 정도는 아니었다”고 돌아봤다.
이어 영 단장은 “하지만 우리는 가르시아의 놀라운 워크에식과 에너지, 지속적으로 개선하기 위한 열정을 봤다. DFA를 하긴 했지만 가르시아가 우리 조직에 남길 바랐다”며 “우리가 항상 좋은 결정을 내리는 것은 아니다. 때때로 운이 좋아 잘 풀리는 경우도 있다. 가르시아가 다른 팀의 부름을 받지 못하면서 우리 팀에 남았고, 그는 빅리그로 돌아갈 수 있는 기회를 얻었다. 그 다음은 전부 역사”라고 이야기했다.
가르시아의 활약을 지켜보는 브루스 보치 텍사스 감독도 함박 미소. 보치 감독은 “가르시아가 시즌 막판부터 정말 잘해주고 있다. 크게 흔들리지 않고 절제하며 감정 조절도 잘한다. 그런 모습을 보는 게 정말 재미있다”고 말했다. 9회 극적인 동점 투런 홈런으로 역전승 발판을 마련한 유격수 코리 시거도 “특별한 선수는 이런 순간에 빛을 발하는데 가르시아가 시즌 내내 이런 활약을 했다. 그와 함께하는 것이 정말 즐겁다”고 치켜세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