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년 전 김병현(44)의 월드시리즈 악몽이 떠오른 경기였다. 22년 만에 월드시리즈 무대에 오른 애리조나 다이아몬드백스가 믿었던 마무리 폴 시월드(33)의 뼈아픈 블론세이브로 다 잡은 승리를 놓쳤다.
애리조나는 28일 미국 텍사스주 알링턴 글로브라이프필드에서 치러진 텍사스 레인저스와의 2023 메이저리그 월드시리즈(WS-7전4선승제) 1차전에서 5-6 끝내기 패배를 당했다. 9회 코리 시거에게 동점 투런포를 허용한 뒤 11회 아롤디스 가르시아에게 끝내기 홈런을 맞고 무릎 꿇었다.
애리조나로선 믿기지 않는 패배였다. 9회말 시작 전까지 5-3으로 리드하며 승리를 목전에 두고 마무리 시월드를 올렸다. 시월드는 이날 등판 전까지 올 가을 포스트시즌 8경기에서 1승6세이브를 거두며 평균자책점 제로 행진을 펼치고 있었다. 8이닝 동안 안타 3개, 볼넷 1개만 내준 게 전부. 삼진 11개를 잡을 정도로 투구 내용도 무척 좋았다. 철벽 마무리라는 표현이 어울렸다.
그러나 월드시리즈 데뷔전에서 무실점 행진이 끝났다. 그것도 치명적인 한 방이었다. 선두타자 레오디 타베라스에게 초구 스트라이크를 잡은 뒤 갑자기 4연속 볼로 1루에 내보낸 게 화근이었다. 다음 타자 마커스 시미언을 3구 삼진 처리했으나 코리 시거에게 던진 초구 93.6마일(150.6km) 포심 패스트볼이 몸쪽 높게 들어간 실투가 됐다.
시거가 놓칠 리 없었고, 타구는 우측 담장을 훌쩍 넘어갔다. 5-5 동점. 시월드의 이번 포스트시즌 첫 실점이 하필 동점 홈런이 된 것이다. 이후 시월드는 가르시아에게 몸에 맞는 볼과 2루 도루를 허용한 뒤 미치 가버를 자동 고의4구로 1루를 채웠다. 오스틴 헤지스를 3구 삼진 처리하며 끝내기 위기는 벗어났지만 경기 흐름이 텍사스로 완전히 넘어갔다.
애리조나는 10회 올라온 카일 넬슨이 11회 1사까지 막은 뒤 미겔 카스트로로 투수를 교체했다. 그러나 카스트로는 첫 타자 가르시아에게 우측 담장 밖으로 가는 끝내기 솔로 홈런을 얻어맞았다. 가르시아는 카스트로의 5구째 가운데 들어온 96.7마일(155.6km) 싱커를 밀어쳤다. 텍사스의 6-5 끝내기 역전승. 애리조나의 충격패였다.
애리조나가 월드시리즈에서 끝내기 홈런을 맞은 것은 두 번째. 첫 번째가 바로 한국인 투수 김병현으로 지난 2001년 뉴욕 양키스와의 월드시리즈 4차전에서 허용했다. 당시 김병현은 디비전시리즈, 챔피언십시리즈에서 4경기 3세이브를 거두며 6.1이닝 무실점으로 위력을 떨쳤지만 월드시리즈에서 주저 앉았다.
양키스타디움에서 열린 4차전에서 3-1로 앞선 8회 조기 투입된 김병현은 3타자 연속 삼진으로 기세를 올렸지만 9회 2사 1루에서 티노 마르티네스가 동점 투런 홈런을 맞고 블론세이브를 범했다. 연장 10회까지 마운드에 올랐지만 데릭 지터에게 끝내기 솔로 홈런을 맞고 무너졌다.
김병현은 5차전에서도 2-0으로 앞선 9회 투입됐지만 2사 1루에서 스캇 브로셔스에게 좌월 투런 홈런을 맞고 블론세이브를 범했다. 4차전과 달리 바로 투수 교체가 이뤄졌지만 애리조나는 알비 로페즈가 연장 12회 알폰소 소리아노에게 끝내기 안타를 허용하며 2-3으로 졌다. 애리조나가 6~7차전에서 승리하며 4승3패로 월드시리즈 정상에 올라 해피엔딩으로 끝났지만 김병현에겐 그야말로 악몽 같은 순간이었다.
이날 경기 후 토레이 로불러 애리조나 감독의 공식 인터뷰에서도 2001년 김병현에이 소환됐다. ‘팬들은 김병현을 떠올릴 것이다. 2001년 몇 번의 블론세이브가 있었다. 선수들과 감독은 이런 역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부담스럽지 않은가?’라는 질문에 로불로 감독은 “난 전혀 아니다. 지금 선수들 중 다시 상황을 기억할 만큼 나이가 많은 선수가 별로 없다. 열성적인 팬들은 기억하겠지만 누구도 그때를 연결시키지 않는다”고 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