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부터 KBO 야구가 확 바뀐다. 기계가 판정하는 ABS(Automatic Ball-Strike System, 자동 볼 판정 시스템)와 함께 메이저리그에 안착한 피치 클락이 시행됨에 따라 투수들의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견제 횟수 제한도 적용돼 발 빠른 선수들에게 유리한 환경이 조성됐다. 투수들이 신경써야 할 게 늘었고, 도루의 시대가 열릴 가능성이 높아졌다.
KBO는 지난 19일 제4차 이사회를 통해 2024년부터 ABS와 피치 클락을 도입하기로 결정했다. 세계 최초 ‘로봇 심판’ 도입이 크게 화제가 돼 묻혔지만 피치 클락도 주목할 만한 변화다. 현장에선 피치 클락이 경기력에 미칠 영향력이 상당히 클 것으로 보며 마무리캠프 때부터 대비에 들어가고 있다.
경기 시간을 단축하는 데 목적을 두고 올해 메이저리그에 도입된 피치 클락은 투수가 무주자시 15초, 유주자시 20초 이내로 공을 던져야 하는 규칙이다. 타자도 무주자시 7초, 유주자시 12초 이내로 타격 준비를 마쳐야 한다. 이를 위반할 경우 투수에겐 볼 하나가, 타자에겐 스트라이크 하나가 자동 선언된다. 타자의 타석당 타임 요청도 한 번으로 제한된다.
투수에게도 주자 견제 및 투구판에서 발을 빼는 횟수가 타석당 2회로 제한이 따른다. 3번째 견제까지 할 순 있지만 주자를 잡아내지 못하면 보크로 처리돼 주자에게 한 베이스를 공짜로 주게 된다. KBO 피치 클락도 메이저리그처럼 견제 횟수를 제한하기로 함에 따라 투수들에겐 비상이 걸렸다.
지금처럼 타자나 주자 상대로 길게 타이밍 싸움을 하거나 견제구를 남발할 수 없다. 인터벌이 길거나 주자 견제가 느슨한 투수들은 경쟁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투구 템포를 빠르게 가져가면서 주자를 묶는 능력까지 필요해졌다. 슬라이드 스텝도 더 짧고 간결하게 연습해야 한다.
투수들에게 상당한 적응 시간이 필요하고, 경우에 따라 투구에 악영향을 미칠 가능성도 높다. “메이저리그와 우리나라 투수들의 수준 차이를 생각하면 적응 시간이 오래 걸릴 것이다. 투수들에게 너무 불리하다”는 의견이 나온다. 전체적인 투수 뎁스가 얕은 KBO리그 현실상 피치 클락이 시기상조라는 우려도 있다.
피치 클락 영향으로 내년 KBO리그도 타고투저가 예상된다. 올해 메이저리그 야구 흐름도 피치 클락으로 확 바뀌었다. 경기당 득점(8.6점→9.2점), 도루 시도(1.4개→1.8개), 도루 성공(1.0개→1.4개), 도루 성공률(75.4%→80.2%) 모두 지난해보다 비약적으로 상승했다. 지난해에는 30도루 이상 선수가 6명에 불과했는데 올해는 18명으로 3배가 늘었다.
피치 클락 도입 전까지만 해도 타자들에겐 출루, 장타의 가치가 높아졌다. 체력 소모와 부상 위험이 크다는 이유로 도루의 가치가 떨어졌지만 피치 클락과 함께 적극적인 주루가 득세했다. 내년 KBO리그도 도루의 시대가 다시 열릴 가능성이 높아졌다. 출루 능력이 있으면서 발 빠른 선수들의 가치가 더욱 높아질 것으로 보인다.
한편 메이저리그는 피치 클락으로 경기 시간 단축 효과를 제대로 봤다. 평균 경기 시간이 지난해 3시간4분에서 올해 2시간40분으로 24분이 줄었다. 3시간30분 이상 걸린 게 9경기에 불과했다. 몰입도가 큰 포스트시즌에서도 20분(3시간22분→3시간2분) 단축에 성공했다. 올해 KBO는 정규이닝 기준 3시간5분을 목표로 내세웠지만 3시간12분으로 뜻을 이루지 못했다. 연장 포함 경기 시간이 3시간16분에 달하는데 2005년 이후 3시간10분 밑으로 떨어진 적이 없다. 내년에는 피치 클락으로 얼마나 경기 시간을 줄일 수 있을지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