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년 전 텍사스 레인저스 유니폼을 입고 메이저리그 도전에 나선 한국인 투수 양현종(35·KIA 타이거즈)은 개막 로스터에 들지 못했다. 당시 코로나19 팬데믹 영향으로 로스터에 없지만 원정에 동행하는 예비 선수 5명을 뜻하는 ‘택시 스쿼드’ 제도가 메이저리그에 특별 도입됐고, 양현종은 이 멤버로 캔자스시티 개막 원정을 향했다.
당시 양현종과 함께 5명의 택시 스쿼드 멤버 중 한 명이 외야수 아돌리스 가르시아(30)였다. 2019년 12월 한국인 투수 김광현을 영입한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가 가르시아를 양도 지명(DFA) 처리했고, 텍사스가 클레임을 걸어 그를 영입했다. 그러나 2021년 2월에도 가르시아는 또 DFA 됐고, 원하는 팀이 없어 텍사스 산하 마이너리거로 이관됐다.
그 당시 텍사스와 스플릿 계약을 맺은 양현종과 함께 불안정한 신분이었던 가르시아가 텍사스의 월드시리즈 진출을 이끌었다. 그해 4월 중순 메이저리그 콜업 후 잠재력을 폭발시킨 가르시아는 올해 148경기 타율 2할4푼5리(555타수 136안타) 39홈런 107타점 OPS .836으로 최고 시즌을 보냈고, 첫 가을야구에서도 연일 맹타를 휘두르고 있다.
24일(이하 한국시간) 미국 텍사스주 휴스턴 미닛메이드파크에서 치러진 2023 메이저리그 포스트시즌 아메리칸리그 챔피언십시리즈(ALCS·7전4선승제) 7차전에서도 4번타자 우익수로 선발출장한 가르시아는 솔로 홈런 두 방 포함 5타수 4안타 5타점으로 맹타로 텍사스의 11-4 승리를 이끌었다. 2011년 이후 12년 만에 월드시리즈에 오른 텍사스는 1961년 창단 이래 첫 우승에 도전한다.
가르시아는 ALCS 4차전부터 포스트시즌 역대 최다 타이 4경기 연속 홈런을 터뜨렸다. 5차전에서 역전 스리런 홈런 후 배트 플립과 사구로 벤치 클리어링 중심에 섰던 가르시아는 6~7차전이 열린 원정 미닛메이드파크에서 타석에 들어설 때마다 휴스턴 팬들의 야유를 받았다. 하지만 6차전 4연타석 홈런 후 9회 만루 홈런에 이어 이날 7차전도 3회와 8회 솔로포 두 방으로 야유를 잠재웠다.
홈에서 열린 3~5차전을 모두 내줬지만 1~2차전에 이어 6~7차전까지 원정 4경기를 모두 잡은 텍사스는 시리즈 전적 4승3패로 휴스턴을 꺾고 월드시리즈 진출에 성공했다. ALCS 7경기에서 타율 3할5푼7리(28타수 10안타) 5홈런 15타점 OPS 1.293으로 맹활약한 가르시아가 이견 없이 MVP를 거머쥐었다. 15타점은 포스트시즌 단일 시리즈 최다 신기록.
경기 후 공식 인터뷰에서 가르시아는 “타석에 설 때마다 야유를 받았지만 이런 경기에서 팬들이 팀을 위해 보내는 응원에 많은 감정이 느껴진다. 그런 게 나에게 힘이 된다. 동기부여가 됐다”며 “(1회) 코리 시거의 선제 홈런이 내게 큰 에너지를 줬다. 시거는 평소 차분하고 감정을 잘 드러내지 않는 사람이다. 덕아웃에 들어올 때 흥분한 시거의 모습을 보고 에너지를 받았다”고 말했다.
쿠바 출신으로 2016년 일본 요미우리 자이언츠에서도 잠깐 뛴 가르시아는 망명을 통해 2017년 미국으로 왔다. 그는 “일본에서 보낸 시간은 정말 아름다운 경험이었다. 놀랍고 즐거운 시간이었지만 항상 미국에서 야구하고 싶었다”고 망명하게 된 이유를 밝히며 “여기까지 오는 데 정말 많은 어려움을 겪었다. 월드시리즈에서 뛰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지만 신이 나를 올바른 팀과 장소로 이끌어줬다. 이 순간이 정말 감사하다”고 감격스러워했다.
두 번의 DFA를 딛고 ALCS MVP에 등극한 가르시아는 “다른 나라에서 꿈을 안고 이곳에 왔다. 커리어 초반에는 성공하지 못했지만 포기하지 않았다. 그만한 가치가 있었다”고 스스로 자랑스러워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