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산 타율 2할1푼2리 타자가 투수 전향 4년차에 1점대(1.96) 평균자책점을 찍으며 리그 정상급 불펜으로 우뚝 섰다. 평범한 내야수였던 주현상(31)에게 투수로의 포지션 변경은 그야말로 신의 한 수, 인생 역전이다.
한화가 4년 만에 탈꼴찌를 할 수 있었던 데에는 주현상을 빼놓고 설명할 수 없다. 올 시즌 55경기에서 59⅔이닝을 소화하며 2승2패12홀드 평균자책점 1.96 탈삼진 45개 WHIP 0.84로 커리어 하이 시즌을 보냈다. 50이닝 이상 던진 투수 105명 중 1점대 평균자책점은 LG 함덕주(1.62)와 주현상 둘밖에 없다.
주현상은 “1점대 평균자책점은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어 새로운 느낌이다. 처음 투수를 할 때만 해도 생각할 수 없었던 기록이다”며 “시즌 초반 안 좋을 때가 있었지만 처음으로 다시 돌아가 욕심을 버린 게 좋은 성적의 디딤발이 된 것 같다. 운도 많이 따라주고, 열심히 준비하다 보니 좋은 결과가 나왔다”고 이야기했다.
시즌 시작은 좋지 않았다. 4월2일 고척 키움전에서 9회 끝내기 밀어내기 볼넷을 내주는 등 3경기 만에 2군으로 내려갔다. 5월 중순 1군 복귀했지만 이번에도 3경기 만에 내려가야 했다. 한 번도 아니고 두 번의 2군행은 1군 투수가 된 2021년 이후 처음이었다. 거듭된 부진으로 좌절할 수 있었지만 포기하지 않고 재정비했다.
퓨처스 팀에서 주현상은 익스텐션을 늘려 볼끝에 힘을 싣는 데 집중했다. 6월15일 다시 1군에 돌아온 뒤 13경기 15이닝 연속 무실점으로 완전히 다른 투수가 됐다. 6월(0.00), 7월(0.930, 8월(2.84), 9월(2.03), 10월(0.00) 5개월 연속 꾸준하게 호투하며 평균자책점을 1점대까지 낮췄다. 팀에 없어선 안 될 필승조, 불펜 에이스로 자리잡았다.
주현상은 “시즌 초반 볼넷이 많았다. 타자를 너무 완벽하게 잡으려고 욕심내다 보니 승부가 길게 갔다. 다시 1군에 온 뒤에는 결과를 떠나 내 공을 던지며 빠른 승부를 들어가려 했다”고 변화를 설명했다. 직구 평균 구속도 2021년(141.9km), 2022년(143.2km) 그리고 올해(144.km) 매년 더 상승하는 중이다. 최고 구속 151km도 여러 번 찍으며 구위를 뽐냈다.
주현상은 “공을 많이 던지다 보니 팔 스피드가 잘 유지되고 있다”고 말했다. 투수 전향 4년차로 완전히 투수의 팔이 되면서 구속이 점점 붙고 있다. 직구 힘이 갈수록 좋아지면서 직구, 슬라이더 투피치로 상대를 압도하는 수준까지 발전했다. 체인지업 비중을 줄인 주현상은 “좌우 타자 가리지 않고 슬라이더를 많이 던진다. 커터성 공도 있다 보니 타자들이 어려워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주현상은 원래 투수가 아니었다. 청주고-동아대를 거쳐 2015년 2차 7라운드 전체 64순위로 한화에 내야수로 지명받았다. 안정된 3루 수비력을 인정받아 데뷔 첫 해 1군 103경기를 뛰었다. 급할 때 포수 마스크도 두 번이나 쓰며 화제가 됐다. 그러나 이듬해 15경기 출장으로 비중이 줄었고, 군입대로 잠시 자리를 비웠다. 그 사이 한화 3루에는 노시환이란 걸출한 유망주가 입단했고, 2019년 8월 돌아온 주현상의 팀 내 입지도 좁아졌다.
그때 주현상의 강한 어깨를 눈여겨본 정민태 투수코치의 권유로 방망이를 내려놓고 마운드에 올랐다. 현재 SPOTV 해설위원인 정민태 코치는 “3루에서 1루로 송구할 때 날아가는 공이 빠르고 힘 있었다. 그 정도 스피드면 투수를 해도 충분히 할 수 있겠다고 봤다. 야수로는 경쟁력이 떨어져 그만둬야 하는 상황이 될 수도 있었다”고 기억을 떠올렸다. 주현상은 1군 통산 118경기 타율 2할1푼2리(222타수 47안타) 무홈런 12타점으로 방망이가 약했다.
2020년 첫 해 퓨처스리그에서 투수로 다듬은 뒤 2021년부터 1군에 모습을 드러낸 투수 주현상은 3년 연속 40경기, 50이닝 이상 던지며 주축 불펜으로 거듭났다. 주현상은 “투수하길 잘했다”며 웃은 뒤 “정민태 코치님께서 군대 가기 전부터 ‘투수해도 좋겠다’고 말하셨다. 요즘도 해설을 하러 오실 때마다 인사를 드린다”며 고마워했다.
야수로서 빛을 보지 못했지만 김성근 감독 시절에 혹독한 수비 펑고를 받은 것도 잊을 수 없는 기억이다. “그때 엄청 고생했다”고 떠올린 주현상은 “야수를 할 때도 공 던지는 것을 좋아했다. 3루에서 펑고를 받고 1루로 강하게, 세게 던지는 것을 반복하다 보니 스피드도 빠르게 나왔다. 그런 것들이 지금까지 다 영향이 있는 것 같다”고 돌아봤다.
1점대 평균자책점에도 올 시즌 스스로에게 95점을 매긴 주현상은 “초반에 안 좋았던 부분이 아쉽다. 내년에는 시즌을 시작부터 좋은 모습을 계속 이어가고 싶다. 올해보다 더 잘할 수 있게 비시즌 몸을 잘 만들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