롯데 사상 최고 경력의 감독이 왔다. KBO리그 최초로 7년 연속 한국시리즈에 진출하며 두산에서 3번이나 우승컵을 들어올린 ‘명장’ 김태형(56) 감독이 롯데 새 사령탑에 선임됐다.
롯데는 제21대 김태형 감독 선임을 20일 공식 발표했다. 계약 기간은 3년으로 계약금 6억원, 연봉 6억원으로 총액 24억원의 조건이다. 지난 11일 KT와 3년 24억원에 재계약한 이강철 감독과 함께 현역 감독 중 최고 대우.
신일고-단국대 출신 포수로 1990년 OB(현 두산)에 입단한 뒤 2001년까지 선수로 뛴 김 감독은 은퇴 후 두산과 SK(현 SSG) 배터리코치를 지냈다. 2015년 두산 감독으로 부임한 뒤 지난해까지 8년간 1149경기 645승485패19무(승률 .571)를 기록했다. 김응용(1554승), 김성근(1388승), 김인식(978승), 김재박(936승), 강병철(914승), 김경문(896승), 김영덕(707승), 류중일(691승) 감독에 이어 통산 감독 승수 9위로 현역 감독 중에선 최다승이다.
김 감독 부임과 함께 두산은 2015~2021년 7년 연속 한국시리즈에 진출하며 왕조 시대를 열었다. 2015·2016·2019년 3차례 한국시리즈 정상에 오르며 최고 명장으로 인정받았지만 지난해 9위로 떨어진 뒤 계약 만료와 함께 팀을 떠났다. 올해는 SBS스포츠 야구 해설위원으로 활동했다.
야인 생활은 길지 않았다. 검증된 감독을 가만히 둘 리 없었다. 올해도 7위에 그치며 6년 연속 가을야구가 좌절된 롯데가 김 감독을 선임했다. 김 감독을 향한 뜨거운 팬심을 외면하지 않았다. 그동안 새로운 인물의 감독을 주로 선임하던 롯데가 이렇게 경력이 화려한 감독을 데려온 것 자체가 놀라운 일이다.
우승 감독 영입에 소극적이었던 롯데, 구단주 의중 담은 결단
롯데는 1982년 초대 박영길 감독 이후 20명의 새 사령탑을 선임했다. 평균 재임 기간이 2년밖에 되지 않을 정도로 감독 교체가 잦았다. 새 사령탑은 큰 틀에서 내부 승격 6명, 외부 영입 14명. 외부 14명을 또 분류하면 전직 감독 8명, 타팀 코치 3명, 대학 감독 2명, 외국인 1명이다.
전직 감독 중 우승 경력자는 강병철, 백인천 감독 2명밖에 없었다. 강병철 감독은 1984년 롯데의 창단 첫 우승을 이끈 뒤 1985년을 끝으로 떠났다 1991년 재선임되면서 돌아왔다. 1992년 우승 후 다시 1993년을 끝으로 지휘봉을 내려놓은 뒤 2006년 다시 돌아왔다. 두 번의 우승 모두 롯데에서 한 것으로 외부 영입이긴 하지만 ‘롯데 사람’에 가깝다.
롯데 출신이 아닌 우승 감독 영입은 2002년 6월 시즌 중 부임한 백인천 감독이 유일하다. 백 감독은 1990년 LG의 우승을 이끈 뒤 삼성을 거쳐 롯데에 왔지만 극심한 성적 부진 속에 2003년 8월 시즌 중 물러났다. 그 이후로 10명의 감독이 새로 선임됐지만 우승 경력자는 없었다. 초보 감독만 7명이나 될 정도로 새로운 인물들이 주를 이뤘다.
우승 3회에 빛나는 김태형 감독은 지금껏 롯데의 감독 선임 기조와 완전히 다르다는 점에서 파격이라 할 만하다. 구단주인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이 “리더십도 있고, 이기는 야구를 하면서 선수단의 역량과 경기력을 끌어올릴 수 있는 분, 그리고 선수 육성에도 일가견 있는 분을 모셔왔으면 좋겠다”는 신임 감독 가이드라인을 구단에 제시했다.
이에 부합하는 최적의 인물은 역시 김 감독밖에 없었다. 요즘 시대에 좀처럼 보기 드문 강력한 카리스마로 무장한 김 감독은 승부사적 기질이 강하고, 뚜렷한 실적도 갖고 있다. 이만한 감독감 자체가 얼마 없다. 롯데도 물밑에서 발 빠르게 움직여 구단 사상 최고 경력자를 감독으로 모셔왔다.
김응용 감독 말곤 누구도 2개팀 우승 못했는데…김태형 도전
올해로 42년째인 KBO리그에서 한국시리즈 우승 감독은 모두 18명. 이 중 2개팀에서 우승한 감독은 김응용 전 한화 감독이 유일하다. 김응용 감독은 해태에서 무려 9번(1983·1986·1987·1988·1989·1991·1993·1996·1997년) 우승한 뒤 2002년 삼성의 창단 첫 한국시리즈 우승을 이끌며 리그 최초 2개팀 우승 감독이라는 타이틀까지 얻었다.
그러나 이후 어떤 감독도 2개팀에서 우승하지 못했다. 현대에서 4번이나 우승한 김재박 감독은 2007~2009년 LG에서 3년 연속 가을야구 진출에 실패했다. 2011~2014년 삼성의 통합 우승 4연패를 이끈 류중일 감독도 2018~2020년 LG에서 포스트시즌 2회 진출에 성공했지만 한국시리즈 문턱은 밟지 못했다.
SK 왕조 시대를 열며 3차례 한국시리즈 정상에 오른 김성근 감독도 2015~2017년 한화에선 한 번도 가을야구에 못 나갔다. 두산에서 두 번 우승한 김인식 감독도 2005~2009년 5년간 한화를 이끌었지만 2006년 준우승이 최고 성적이었다. 2005~2006년 삼성의 통합 우승 2연패를 견인한 선동열 감독도 2012~2014년 KIA에선 3년 연속 가을야구 좌절로 쓴맛을 봤다.
‘야구는 선수가 한다’는 말처럼 감독이 미치는 영향력이 크지 않은 종목으로 여겨진다. 아무리 좋은 리더십과 지도력을 갖춘 감독이라도 선수 구성이나 전력이 받쳐주지 않으면 성적을 낼 수 없다는 게 여러 감독들을 통해 증명됐다. 그런 점에서 6년 연속 가을야구에 실패한 롯데에 온 것은 김태형 감독 개인에게도 큰 도전이다. 두산 시절 쌓은 성과도 롯데에서 결과를 내지 못하면 평가절하될 수 있다.
김 감독은 두산 감독 선임 당시 SK 코치였지만 두산에서 선수와 코치로 오랜 시간 지냈고, 구단과 선수단을 누구보다 잘 아는 내부인에 가까웠었다. 반면 롯데는 그동안 따로 인연이 없는 팀으로 새로 적응을 해야 한다. 두산에선 프런트가 수년간 다져놓은 화수분 야구를 극대화시켰지만 롯데는 그에 비해 뎁스가 떨어진다. 신인 드래프트에서 젊은 유망주들을 두루 확보했지만 당장 성적을 내야 하는 김태형 감독 입장에선 마냥 미래만 바라볼 순 없다. 외국인 선수를 비롯해 즉시 전력을 프런트에서 적절하게 잘 공급할 수 있을지가 관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