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월 30일 그랜드하얏트호텔에서 열린 2023 KBO리그 미디어데이. 10개 구단 감독들에게 '가을 야구에서 만날 것 같은 2팀을 꼽아 달라는 질문이 주어졌다. LG와 KT가 가장 많이 언급된 반면 이승엽 감독이 이끄는 두산은 롯데와 함께 아예 가을 야구 후보에서 제외됐다.
그럴 만도 했다. 두산은 지난해 60승 82패 2무로 정규 시즌 9위에 그쳤고 국가대표 출신 포수 양의지의 복귀를 제외하면 이렇다 할 전력 보강 요소가 없었기 때문.
당시 이승엽 감독은 "감독님들의 냉정한 평가 감사하다. 두산은 한 표도 나오지 않았다"면서 "역시 야구는 투수력이 중요하다. LG와 KT는 확실히 포스트시즌에 가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자신의 생각을 밝혔다.
흔히 '스타 플레이어 출신은 지도자로서 성공하기 어렵다'고 말한다. 자신이 잘했던 시기만 생각하고 선수들의 마음을 헤아리지 못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 이승엽 감독은 달랐다. 그는 "그라운드에서 뛰는 선수들이 주인공이 돼야 한다"고 늘 강조하며 잘할 수 있도록 격려를 아끼지 않았다.
그래서일까. 두산은 주축 선수들의 연이은 부상 악재에 힘겨운 시간을 보내기도 했지만 구단 최다 연승인 11연승을 질주하는 등 가을 야구를 향해 한 걸음씩 나아갔다. 정규 시즌 막판까지 3위 경쟁을 펼치다가 74승 68패 2무 승률 0.521로 포스트시즌 마지막 티켓을 거머쥐었다.
역대 와일드카드 결정전에서 5위 팀이 4위 팀을 꺾고 준플레이오프에 진출한 사례는 단 한 번도 없었다. 5위 팀이 1차전을 이기고 2차전을 만들어낸 것도 2016년 KIA와 2021년 키움이 유이하다. 그만큼 불리한 조건이었고 두산은 0% 확률에 도전하는 입장이었다.
두산은 19일 창원NC파크에서 열린 NC와의 와일드카드 결정전 1차전에서 9-14로 패하며 가을 잔치의 막을 내렸다.
이승엽 감독은 경기 후 "1년이 후딱 지나갔다. 지난해 부임하면서 가을 야구를 하겠다는 목표를 잡고 왔는데 1차적으로 성공은 했지만 1경기 만에 가을 야구가 끝나서 많이 아쉽다"고 말했다. 또 "뒷심이 부족해서 올해는 여기까지인 것 같다. 선수들 덕분에 즐겁게 야구를 했는데 부족한 부분을 잘 채워서 내년에 더 높은 곳으로 가겠다"고 덧붙였다.
올 시즌을 되돌아보며 만족스러운 부분과 보완해야 할 과제를 제시했다. 이승엽 감독은 "최승용, 김동주 등 피칭을 하면서 내년에는 더 좋아지겠다는 생각을 들게 했다. 젊은 투수들이 내년 선발로 할지 중간계투로 할지 모르겠지만 최승용은 마지막에 좋은 공을 던졌다. 김동주 선수와 함께 기대가 된다"고 했다.
반면 "타선 쪽에서 약점을 보였다. 득점권이나 전체적인 팀 타율, 팀 득점 모두 수치상으로 하위권이었다. 우리 투수들도 굉장히 부담감을 안고 올라왔다. 실점 하게 되면 패한다는 생각을 가졌던 것 같다. 체력적인 부분 정신적인 부분 모두 피로도가 많이 왔다. 우리 팀의 약한 타선을 내년에는 어떻게 공격적으로 바꿀까 생각해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이어 "젊은 야수진들 중에서 튀어나와야 하는 선수들이 부진했다. 어린 야수들이 올라오면 활력소가 생길 것이다. 가을부터는 젊은 선수들에게 많은 관심을 가지고 내년에는 즉시 전력으로 만들려고 한다"고 밝혔다.
사령탑 부임 첫해 아쉬운 부분도 없지 않았지만 지난해 꼴찌 바로 앞에 있던 팀을 5위까지 끌어올린 공도 분명히 존재한다. 이승엽 감독은 인터뷰가 끝날 무렵 "즐거운 점도 많았다. 선수들 덕분에 많이 이겼다. 힘들었지만 재밌게 잘 지냈다. 제 부족한 부분이 있었는데 비시즌 잘 채워서 더 높은 곳으로 가겠다"고 말했다.
현역 시절 '국민타자'라고 불릴 만큼 최고의 자리에 섰던 그는 두 번의 아쉬움을 되풀이하지 않았다. '진정한 노력은 결코 배반하지 않는다'는 좌우명처럼 끊임없이 노력하며 보란듯이 다시 일어섰다.
그는 부임 첫해 가을 야구 진출이라는 목표를 달성했지만 하루 만에 끝난 아쉬움을 만회하기 위해 누구보다 열심히 준비할 것이다. 이승엽 감독의 2024시즌은 이미 시작됐다고 해도 무방하다. /what@os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