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O리그 흥행은 인기 팀들의 성적에 의해 좌우되곤 했다. 특히 지방을 중심으로 전국적인 팬덤을 갖춘 KIA, 롯데, 삼성, 한화가 흥행을 책임지는 인기 팀으로 분류된다. 이른바 ‘기·롯·삼·한’으로 불린다.
그런데 올해 4개팀 모두 가을야구에 탈락했다. 공교롭게도 6~9위가 기·롯·삼·한 순이었다. 삼성과 한화는 시즌 내내 하위권에 맴돌았고, KIA와 롯데는 엄청난 상승 구간이 있었지만 지속성을 유지하지 못한 채 포스트시즌이 좌절됐다.
하지만 기·롯·삼·한의 동반 부진도 KBO리그 흥행에는 큰 문제가 되지 않았다. 총 관중 810만326명(평균 1만1250명)으로 2017년(840만688명), 2016년(833만9577명)에 이어 역대 3번째 많은 관중을 동원했다. 2018년(807만3742명)에 이어 5년 만에 800만 관중을 돌파하며 야구 인기 부활을 알렸다.
시즌 전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에서의 실망스런 성적과 일부 선수 및 관계자들의 사건사고가 발생해 팬들의 발걸음이 끊길까 걱정했는데 기우였다. 지난해 607만6074명(평균 8439명) 대비 25% 관중 증가율을 보이며 기대를 뛰어넘었다.
29년 만에 정규시즌 우승을 차지한 LG가 10개 구단 체제 최초로 120만(120만2637명) 관중을 넘어서며 흥행도 1위를 했다. 이어 SSG(106만8211명)가 인천 연고팀 사상 두 번째로 많은 관중을 모았다. 다음으로 두산(96만9562명), 롯데(89만1745명), 삼성(84만5775명), KIA(71만7025명), KT(69만7350명), 키움(58만3629명), 한화(56만6785명), NC(55만7607명) 순이다. 10개팀 모두 평균 관중 7000명 이상 들어왔다.
팀 순위는 8위에 그쳤지만 관중 동원 5위로 흥행 파워를 보여준 삼성처럼 성적을 떠나 야구장을 찾는 팬들이 많아졌다. 야구장 응원 문화를 즐기며 놀이공간으로 삼는 팬층이 늘었다. 각 구단들도 다양한 마케팅을 펼쳤고, 선수들도 적극적인 팬서비스로 팬들의 발걸음이 떠나지 않게 붙잡았다.
여기에 KBO도 발 맞춰 리그 흥행을 위해 과감한 변화를 시도한다. 지난 18일 제4차 이사회를 통해 보다 공정하고 박진감 넘치는 경기를 보이기 위해 ABS(Automatic Ball-Strike System, 자동 볼 판정 시스템)와 피치 클락을 도입하기로 결정한 것이다.
지난 7월 KBO는 ‘팬 퍼스트’ 가치를 높이기 위해 KBO리그와 국가대표팀 레벨 업 프로젝트를 발표했는데 실행위원회와 해당 실무 부서에서 지속적으로 제도 개선을 위한 논의를 심도 있게 했다. 팬들의 다양한 불만을 듣고 니즈를 충족시키기 위해 빠르게 움직였고, 조금 시기상조로 여겨지는 기계 판정을 과감하게 1군 도입했다. 미국 마이너리그에선 100% ABS 진행과 팀당 3회씩 챌린지를 주는 형식으로 나눠서 시험 운영했는데 KBO는 모든 공을 기계가 판정하는 100% ABS 가동을 준비 중이다.
아직 메이저리그도 정식으로 도입하지 못한 ‘기계 판정’은 기술적인 완성도가 100% 완벽하지 않다. 당초 2024년 메이저리그 도입을 목표로 추진했지만 의외로 심판노조가 아니라 선수노조에서 반대하고 나섰다. 현장에서 여전히 심리적인 거부감이 있는 상황인데 KBO가 먼저 시작한다. 공정성과 신뢰성을 높여 리그의 질을 향상시키기 위함이다.
아울러 메이저리그에 혁신적인 스피드업을 가져온 피치 클락도 도입한다. 메이저리그는 올해부터 무주자시 15초, 유주자시 20초 이내로 투수가 공을 던져야 하는 피치 클락을 도입했다. 타자도 무주자시 7초, 유주자시 12초 이내로 타격 준비를 마쳐야 한다. 불필요한 동작 없이 스피드업을 이끌어낸 결과 올해 메이저리그 평균 경기 시간은 2시간40분으로 지난해(3시간4분)보다 무려 24분을 줄였다. 3시간30분 이상 걸린 것도 9경기뿐이었다.
피치 클락과 함께 수비 시프트 제한, 베이스 크기 확대로 인플레이 타구와 도루가 눈에 띄게 늘면서 경기가 훨씬 다이내믹해졌다. 규정 변경 효과 속에 메이저리그는 올해 총 관중 7074만7365명으로 지난해(6455만6658명)보다 9.5% 증가율을 보였다. 30개팀 중 26개팀의 관중이 증가하면서 2017년 이후 6년 만에 7000만 관중을 회복했다.
KBO는 지난 2월 올해 평균 경기 시간을 정규이닝 기준 3시간5분으로 내세웠다. 그러나 3시간12분으로 목표 달성에 실패했다. 연장 포함 평균 경기 시간은 3시간16분. 2005년 이후 3시간10분 밑으로 떨어진 적이 없다. 엿가락처럼 늘어지는 경기가 많은 게 오래된 고민이었다. 2010년부터 주자가 없을 때 12초 이내로 공을 던져야 하는 ‘12초룰’을 도입했지만 1차 큰 효과가 없었다. 하지만 내년에는 피치 클락을 통해 스피디한 경기 진행으로 불필요한 시간을 줄여 흥행에 박차를 가할 것으로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