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값 한 것 같아요.”
넉살 좋은 입담을 자랑하는 이태양(33·한화)답게 스스로를 높은 평가를 아까지 않았다. 누구도 이 평가에 토를 달지 못할 것이다. 이태양이 FA로 돌아오지 않았더라면 한화는 또 꼴찌를 시즌을 마쳤을지도 모른다. 선발과 구원을 넘나들며 50경기 101⅓이닝을 소화한 ‘전천후 투수’ 이태양에게 4년 25억원은 조금도 아깝지 않은 ‘성공 투자’였다.
이태양은 지난 15일 대전 롯데전에서 시즌 마지막 등판에 나섰다. 승리투수가 되지 못했지만 5이닝 4피안타(1피홈런) 1볼넷 4탈삼진 2실점(무자책) 역투로 한화의 7-4 승리에 발판을 마련했다. 시즌 50번째 등판에서 100이닝(100⅓)을 돌파하며 양쪽에서 숫자를 꽉 채웠다.
올 시즌 선발 12경기, 구원 38경기를 나서며 3년 연속 100이닝을 돌파한 이태양은 3승3패2홀드 평균자책점 3.32 탈삼진 72개로 끝마쳤다. 50경기 이상 등판한 KBO리그 전체 투수 48명 중에서 100이닝 이상 소화한 선수는 이태양과 SSG 문승원(50경기 105이닝) 2명밖에 없다.
개막전부터 갑작스런 부상으로 자진 강판한 버치 스미스의 다음 투수로 긴급 등판하며 시즌 스타트를 끊은 이태양은 불펜 롱릴리프, 필승조, 추격조, 대체 선발 등 상황을 가리지 않고 팀 필요에 따라 전천후 투입됐다. 마운드의 만능키로 크고 작은 변수가 생길 때마다 끊임없이 호출을 받았다. 최원호 한화 감독도 “팀을 운영하는 입장에서 상당히 고마운 선수”라며 “좋은 투수”라고 말했다.
8월 중순 선발진에 구멍이 나자 로테이션에 정식 합류했다. 마지막 10경기는 선발로 마쳤다. 시즌 주후반까지 보직이 계속 바뀌고, 선발로 들어온 뒤에는 투구수를 늘리는 과정이 있었다. 어려움이 따랐지만 1군에서 한 번도 이탈하지 않고 시즌을 완주했다.
15일 경기를 마친 뒤 이태양은 “한 시즌 부상 없이 잘 마무리할 수 있어 좋다. 개인적으로 3년 연속 100이닝을 던졌는데 선발로만 던진 게 아니라 선발, 구원을 왔다 갔다 하면서 한 것이라 더 뿌듯하다. 부상 없이 그렇게 하는 게 쉽지 않다”며 “나이가 들수록 체력적으로 빨리 지치는 경향이 있다. 최대한 많이 훈련하면서 운동 능력이 뒤처지지 않게 커버하려 노력했다”고 말했다.
지난겨울 4년 25억원에 계약하며 친정팀 한화로 돌아온 이태양으로선 FA의 무게를 견뎌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그는 “처음에 다시 돌아왔을 때는 좋은 팀에서 좋은 경험하고 왔으니 구단과 팀 후배들, 팬분들께 달라진 모습을 보여줘야겠다는 부담이 있었다. 그러다 보니 초반에는 ‘내가 뭐하고 있나’ 이런 생각이 들기도 했다. 야구를 하고 있는 게 아니었다. 어느 순간 그런 것을 내려놨다. 작년에 하던 것 반만 하자는 생각으로 했는데 나쁘지 않은 성적으로 마무리한 것 같다. 내가 봐도 돈값은 한 것 같다”면서 웃었다.
팀이 4년 만에 탈꼴찌에 성공한 것도 투수조장이자 고참으로서 큰 비중을 두는 일이다. 이태양은 “모든 팀 구성원들이 올해 정말 열심히 노력했다. 작년, 재작년보다 조금씩 경기력이 나아지는 모습을 보여 그나마 다행이다. 어린 선수들이 이런 경험을 통해 더 높은 곳으로 가야 하지 않을까 싶다. 프로 선수들은 그라운드에서 자신감을 잃으면 끝난다. 그러면 될 것도 안 된다. (탈꼴찌를 함으로써) 이제 우리는 올라갈 일만 남았다. 모든 팀 구성원들이 자신감을 갖고 내년 시즌을 준비했으면 좋겠다”고 이야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