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A 재수생' 임찬규(31·LG)의 14승 커리어하이 뒤에는 염경엽 감독의 굳건한 신뢰가 있었다. 그저 평범한 토종 선발에 지나지 않았던 투수에게 이닝과 투구수를 부여하자 이전과 전혀 다른 투구가 펼쳐졌다.
임찬규는 지난 15일 서울 잠실구장에서 열린 2023 신한은행 SOL KBO리그 두산과의 시즌 최종전에 선발 등판해 5⅔이닝 4피안타 1볼넷 3탈삼진 1실점 호투로 시즌 14번째 승리(3패)를 신고했다. 시즌 144번째 경기를 맞아 잠실구장을 가득 메운 홈팬들 앞에서 팀의 5-2 승리를 뒷받침하며 정규시즌 우승 트로피 수여식을 한층 빛나게 만들었다.
경기 후 만난 임찬규는 “그 동안 두산 상대로 수도 없이 맞았다. 맨날 점수를 내주고 패전투수가 됐다”라며 “나갈 때마다 이기고 싶은 팀이라 최선을 다했다. 그럼에도 못 미치는 내용이 있어서 아쉬웠는데 오늘 최종전에서는 승리를 해서 기분이 좋다”라고 전했다.
우승 트로피를 처음 들어본 소감에 대해서는 “많이 무겁더라”라고 웃으며 “29년 만에 트로피다. 2002년에는 LG가 한국시리즈에서 떨어져서 트로피를 보지 못했다. 오늘 구단 배려 아래 투수조장이라서 들어봤는데 구단과 팀원들에게 감사하다”라고 답했다.
임찬규의 2023시즌 최종 성적표는 30경기 144⅔이닝 14승 3패 평균자책점 3.42. 다승, 평균자책점 커리어하이를 쓰며 LG의 29년 만에 정규시즌 1위를 이끈 우승 에이스로 거듭났다. 여기에 최종전에서 규정이닝을 채우며 고영표(KT)와 곽빈(두산)을 넘어 토종 다승 1위까지 차지했다.
2011 LG 1라운드 2순위로 입단한 임찬규는 2018년 11승, 2020년 10승이 전부인 애증의 투수였다. 작년 부진으로 인해 FA 권리를 행사하지 않고 재수를 택했다.
임찬규는 “5월이 큰 전환점이 됐다. 감독님께서 직구 구속이 135km가 나와도 믿고 100개를 던지게 하겠다고 말씀하셨다. 책임 투구수는 90~100개, 이닝은 5이닝 이상으로 설정하셨다”라며 “지금까지 야구하면서 처음 듣는 이야기였다. 나한테 투구 이닝과 투구수를 부여하셨다. 그 때부터 새로운 야구가 됐다. 내가 어떻게 던져도 감독님께서 믿고 맡겨주신다는 확신이 생겼다”라고 염경엽 감독에게 14승의 공을 돌렸다.
시즌을 중간계투(4경기)로 출발한 부분도 14승의 원동력으로 작용했다. 임찬규는 “정말 큰 도움이 됐다. 힘을 빼려고 노력했고 롱릴리프 보직이 힘을 빼게 된 계기가 됐다. 롱맨으로 가면서 감독님이 새로운 야구를 입혀주셨는데 그걸 받아들일 수 있었다”라고 했다.
다만 에이스라는 타이틀에는 동의하지 않았다. 그는 “난 내가 에이스라는 생각을 한 번도 해본 적이 없다. 팀원들 도움이 있었기에 지금의 성적을 냈다. 에이스 역할을 했다고 하기엔 몇 년이 되지 않았다. 올해가 잘 맞아떨어진 것”이라며 “앞으로 2~3년 더 이런 성적을 내야 한다. 올해의 경우 작년에 팀을 위해 희생하지 못했다는 생각에 팀을 위해 시즌을 준비했더니 좋은 결과가 나왔다. 앞으로 시즌을 준비할 때 도움이 될 것 같다”라고 말했다.
이날 등판에 앞서 규정이닝, 토종 다승 1위라는 기록도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임찬규는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마운드에서 생각이 많아지면 안 좋다. 그래서 단순화하고 싶었는데 아니나 다를까 계속 생각이 나고 쫓기더라”라며 “내가 원하는 곳에 공을 던지려고 준비를 많이 했다. 열흘 동안 매일 연습을 했다. 행여나 그런 생각이 들 때 집중할 수 있는 법을 이미지트레이닝 했다”라고 전했다.
임찬규는 구체적으로 “나는 이미지트레이닝을 세밀하게 한다. 잔디 색부터 구장 냄새, 상대팀 감독을 그려놓고 만루에서 볼 3개를 던지는 최악의 상황까지 상상한다. 이건 계속 해도 팔이 아프지 않다. 5~10분이면 된다. 미리 그려보고 지우는 연습을 한다”라고 자신만의 이미지트레이닝 노하우를 설명했다.
정규시즌 우승팀 LG는 사흘 휴식 후 19일부터 2군 베이스캠프인 이천 챔피언스파크에서 한국시리즈 준비에 돌입한다. 대망의 1차전은 내달 7일 서울 잠실구장에서 열린다.
임찬규는 “2002년 거실에서 LG가 한국시리즈에서 떨어지는 걸 보고 많이 울었다. 그 때 선수들이 다 기억이 난다. 이렇게 한국시리즈에 올라가는 것만으로도 성공이다”라며 “감독님께서 내려오라고 할 때까지 투구 내용 신경 안 쓰고 전력투구를 할 것이다. 그게 좋은 결과를 내는 길이다”라고 각오를 밝혔다.
예비 FA 임찬규의 스토브리그에 임하는 각오도 들으 수 있었다. 임찬규는 “단장님께서 많이 챙겨주실 거라고 생각하고 있다”라고 말하며 해맑게 웃었다.
/backlight@os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