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빈이 형이 너무 잘 챙겨주셨다. 빈이 형이 없었으면 이렇게 못했을 것이다.”
금메달을 따낸 항저우 아시안게임 한국야구대표팀의 MVP는 단연 투수 문동주(20·한화)였다. 지난 7일 대만과의 결승전에서 선발투수로 나선 문동주는 6이닝 3피안타 무사사구 7탈삼진 무실점으로 압도적인 투구를 펼치며 한국의 2-0 승리를 이끌었다.
문동주의 호투에 힘입어 한국야구는 2010년 광저우, 2014년 인천, 2018년 자카르타-팔렘방 대회 이후 4회 연속이자 1998년 방콕, 2002년 부산 대회 포함 6번째 금메달을 따냈다.
25세 이하, 프로 4년차 이하 선수들로 구성된 젊은 대표팀으로 24명 중 19명이 병역 혜택을 받았다. 막중한 부담감을 안고 마운드에 오른 문동주가 한국야구의 자존심을 살리고, 대표팀 선수들 커리어까지 바꿔놓았다. 경기 전 선수들끼리 자체 MVP를 선정하기로 했는데 경기 후 만장일치로 문동주를 택했다. 선수들이 한마음으로 상금을 모아 문동주에게 전했다.
지난 8일 귀국 후 대전에서 휴식을 취한 문동주는 15일 롯데전을 앞두고 한화생명이글스파크를 찾았다. 최원호 감독을 비롯해 코칭스태프, 선수단에 감사 인사를 전하며 같이 금메달을 획득한 노시환과 함께 환영식도 받았다. 금메달을 목에 걸고 선수단과 팬들로부터 환대를 받았다.
지난 1998년 방콕 아시안게임 야구 금메달 리스트인 최원호 한화 감독도 “금메달 잘 보관하라. 이걸 잘 이어가서 다음 대표팀에서도 활약하라”며 문동주에게 격려를 아끼지 않았다. 최 감독은 “그날 결승전이 동주가 성장하는 데 있어 상당히 인상이 남는 계기가 될 것이다. 나중에 포스트시즌 같은 큰 경기를 할 때 아시안게임 경험이 좋게 연상될 것이다”고 기대했다.
문동주는 “대회 이후 너무 많은 축하를 받고 있다. 기분 좋은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다. 아시안게임이 워낙 큰 대회이다 보니 어느 때보다 많은 관심을 받았고, 지인 분들의 연락도 끊이지 않았다. 똑같은 답장을 보내지 않는 스타일이라 모든 메시지에 일일이 전부 답해드리지 못한 것 같다. 혹시라도 서운한 분들이 있으시다면 정말 미안하다는 말씀을 전하고 싶다. 너무 많은 축하를 받아 정신이 없다”고 이야기했다.
국민적 관심이 크게 쏠린 대회였다. 조별리그 대만전에선 4이닝 3피안타 1볼넷 3탈삼진 2실점으로 나쁘지 않은 투구를 했지만 패전을 안았고, 4일 휴식 뒤 맞이한 결승전에서 다시 대만을 만나 부담감이 컸을 법했다. 자주 만날수록 타자에 비해 투수가 불리한데 결승전에서 문동주는 야구의 모든 법칙을 바꿔놓았다. 160km대까지 형성된 강력한 직구를 중심으로 KBO리그에서 자주 던지지 않은 체인지업으로 대만 타자들의 헛스윙을 이끌어냈다.
문동주는 “결승전이라고 해서 크게 긴장되진 않았다. 조별리그에서 대만 상대로 나쁘지 않은 투구를 했지만 커맨드에서 아쉬움이 있었다. 그 부분을 보완하고 들어간 것이 좋은 결과로 나왔다. 대만과 다시 상대하면서 타자들의 눈에 공이 익숙해질 것이라는 걱정도 있었지만 오히려 한 번 만나서 그런지 부담보다 편안한 마음으로 던질 수 있었다”고 돌아봤다.
이어 문동주는 “대표팀 분위기가 진짜 너무 좋았다. 같은 또래 나이의 선수들이 많아서 그런지 더욱 잘 뭉치고 즐길 수 있었다. 특히 결승전에서의 그 분위기는 정말로 잊지 못할 것 같다. (개인적으로) 제가 경기에 뛰면서 우승한 것도 처음이다”며 감격했다.
문동주는 룸메이트로 함께한 선배 투수 곽빈(24·두산)에게도 남다른 고마움을 전했다. 곽빈은 첫 경기 홍콩전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우측 날개뼈 부위에 담 증세로 대회 내내 고생했다. 고열을 동반한 몸살까지 겹치며 링거, 주사, 침술 그리고 진통제 등 각종 치료를 했다. 슈퍼 라운드 중국전부터 몸 상태가 회복돼 불펜 대기를 했지만 결승전까지 실전 등판 기회는 없었다.
이로 인해 ‘금메달 무임 승차’ 논란도 있었다. 지난 13일 잠실 KIA전을 마친 뒤 곽빈은 “결승전에서 2회부터 팔을 풀었는데 다행히 (문)동주가 잘 던져줬다”며 “동료들을 볼 때마다 미안하다고 말했다. 부상으로 팀에 도움이 되지 못해 마음이 불편했다. 그래도 다들 괜찮다며 격려를 해줬다”고 고마워했다.
비록 대표팀에서 공 하나 던지지 못한 곽빈이지만 한 방을 쓴 ‘룸메이트’ 문동주가 최상의 컨디션으로 경기에 임할 수 있게 물심양면으로 도와줬다. 문동주는 “빈이 형과 정말 잘 맞았고, 덕분에 같은 방에서 편하게 지낼 수 있었다. 빈이 형이 모든 면에서 저를 너무 잘 챙겨줬다. 형이 계속 ‘미안하다’는 말을 했는데 오히려 고맙다. 빈이 형이 옆에 없었으면 이런 성적이 나기 힘들었을 것이다. 같이 방을 쓰면서 야구 이야기도 많이 하고, 배운 점도 많았다. 빈이 형은 진짜로 착하다. 대회 내내 많이 배려해줬고, 경기에 집중할 수 있게 여러모로 도와주셨다. 많이 힘들었을 텐데 조금도 내색하지 않고 챙겨주고 힘을 주신 것에 대해 지금도 고맙다”고 진심을 전했다.
문동주는 금메달 획득 후 강백호(KT)와 동반 인터뷰를 하면서 그의 손을 꼭 잡아준 모습으로도 눈길을 끌었다. 올해 야구적으로 크고 작은 논란에 시달리며 공황장애로 심한 마음고생을 한 강백호는 인터뷰 중 울컥한 모습을 보였는데 문동주가 그 옆에서 손을 꽉 잡고 힘을 실어줬다. 강백호도 구단 방송을 통해 “인터뷰를 하는 데 손과 몸이 다 떨리더라. 동주가 엄지손가락을 쓱 내주길래 잡고 있었다. 고맙다고 했다. 큰 도움이 됐다. 역시 에이스는 손이 크더라”며 고마움을 나타냈다.
이에 대해 문동주는 “백호 형이 옆에서 인터뷰를 하는데 조금 힘들어하는 게 보였다. 제가 손이라도 같이 잡고 있으면 괜찮지 않을까 싶어 그렇게 했다. 백호 형이 고마워해줘 제가 더 고맙다. 이번에 백호 형과 함께할 수 있어 좋았다. 백호 형에게도 고맙다는 말을 꼭 전하고 싶다”며 애틋한 마음을 감추지 않았다.
이번 아시안게임을 통해 문동주는 대한민국 야구대표팀의 10년 에이스 탄생을 알렸다. 그는 “첫 성인 국제대회에서 많은 분들의 도움으로 좋은 기억과 자신감을 가질 수 있게 됐다. 진짜 잊을 수 없다. 너무나도 감사하다. 앞으로도 국제대회에서 더욱 자신감을 갖고 임할 수 있을 것 같다. 쫄 필요도 없고, 그렇다고 자만할 필요도 없다. 앞으로도 계속 더 많이 노력해서 조금씩 더 큰 목표를 키우고 싶다. 많은 응원을 보내주신 팬분들께도 감사한 마음뿐이다. 준비 잘해서 내년에 더 좋은 모습으로 돌아오겠다”고 다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