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메이저리그 정규시즌 최다 104승을 거둔 애틀랜타 브레이브스를 디비전시리즈에서 격침시킨 필라델피아 필리스 선수들은 경기 후 클럽하우스에서 샴페인 파티를 하며 중심타자 브라이스 하퍼(31)를 향해 ‘아타 보이(atta boy)’를 외쳤다. ‘잘했어’라는 의미의 표현인데 몇몇 선수들은 이 문구가 새겨진 티셔츠까지 입고 있었다.
사건은 지난 10일(이하 한국시간) 두 팀의 내셔널리그 디비전시리즈(NLDS) 2차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필라델피아가 4-5로 패했는데 9회 마지막 아웃카운트가 1루 주자 하퍼의 주루사였다. 1사 1루에서 닉 카스테야노스가 외야로 큼지막한 타구를 날리자 하퍼가 전력 질주했다. 하지만 애틀랜타 중견수 마이클 해리스 2세가 펜스 앞에서 점프 캐치에 성공했고, 1루로 송구까지 연결해 귀루에 실패한 하퍼를 포스 아웃시켰다. 보기 드문 끝내기 더블 플레이.
경기 후 애틀랜타 유격수 올랜도 아르시아가 클럽하우스에서 “아타 보이 하퍼”라고 말한 게 ‘폭스스포츠’ 등을 통해 알려졌다. 하퍼에게도 이 발언이 전해졌다. 자존심 강한 하퍼는 가만히 있지 않았다. 12일 3차전에서 1-1 동점으로 맞선 3회 결승 스리런 홈런을 치고 베이스를 돌며 아르시아를 노려봤다. 하퍼는 6회에도 쐐기 솔로포를 터뜨리며 아르시아를 또 한 번 쳐다봤다. 필라델피아의 10-2 완승을 이끈 하퍼는 경기 후 공식 인터뷰에 “아르시아를 본 게 맞다”며 “동료들을 통해 그의 발언을 알게 됐다. 그 말을 전해주면서 내게 어떻게 할거냐고 묻더라”고 말했다.
‘디애슬레틱’에 따르면 3차전을 마친 뒤 필라델피아 선수들은 아르시아의 조롱이 하퍼를 자극했다고 입을 모았다. 필라델피아 선발투수 크리스티안 워커는 “애틀랜타가 하퍼를 깨운 것 같다”고 말했고, 또 다른 선발투수 잭 휠러는 “위대한 선수를 무시하는 것은 불에 기름을 끼얹는 것이다. 하퍼 같은 선수는 굳이 불에 기름을 더 붓지 않아도 위험한 선수”라고 동조했다. 외야수 제이크 게이브도 “아르시아가 한 말 때문에 하퍼가 폭발할 것 같았다”고 말했다.
하퍼는 4차전에서도 2타수 1안타 2볼넷으로 필라델피아의 3-1 승리에 힘을 보탰다. 정규시즌 성적은 필라델피아(90승72패)가 애틀랜타(104승58패)보다 14승이나 적지만 NLDS에서 3승1패로 업셋을 일으켰다. 지난해에 이어 2년 연속 애틀랜타를 NLDS에서 3승1패로 업셋하며 NLCS 진출에 성공했다.
하퍼는 이번 NLDS 4경기에서 타율 4할6푼2리(13타수 6안타) 3홈런 5타점 5볼넷 출루율 .611 장타율 1.154 OPS 1.765로 폭발했다. 지난해 NLDS에서도 4경기 타율 5할(16타수 8안타) 2홈런 5타점 OPS 1.592로 애틀랜타를 울렸는데 포스트시즌에서 애틀랜타 상대 통산 OPS가 1.675에 달한다.
‘MLB.com’ 사라 랭스 기자에 따르면 하퍼의 기록은 포스트시즌에서 특정팀 상대로 역대 3번째 높은 기록이다. LA 에인절스 상대 배리 본즈(1.994),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 상대 베이브 루스(1.694) 다음이다. 애틀랜타로선 앞으로도 같은 NL 동부지구로 자주 만날 가능성이 높은 하퍼가 더 부담스러워졌다.
결과적으로 아르시아의 조롱 한마디가 하퍼를 자극시켜 애틀랜타의 탈락을 부추겼다. 당사자인 아르시아는 억울한 모습. 그는 “하퍼가 들어선 안 될 말이었다. 클럽하우스에서 한 얘기였다”며 내부 공간에서 사담으로 편하게 한 말을 외부로 전달한 현지 취재진에 아쉬움을 나타냈다.
애틀랜타 포수 트래비스 다노도 “그런 말이 알려지면 미디어와 이야기하기 싫어진다. 올 한 해 좋은 일을 해준 사람들에게도 영향을 미친다”고 불쾌감을 표했다. 토론토 블루제이스 투수 케빈 가우스먼도 SNS를 통해 “기자가 해당 선수와 이야기하지 않거나 클럽하우스에서 들을 말을 인용해선 안 된다”고 주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