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대에 합격했는데 진학을 포기하고 야구를 택했다. 매스 대신 공을 잡은 투수 파블로 로페즈(27·미네소타 트윈스)의 결정은 틀리지 않았다. 4년 7350만 달러(약 995억원) 장기 계약을 따내더니 가을야구에서 ‘빅게임 피처’로 떠올랐다. 하늘나라로 떠난 의사 출신 부모님에게 자랑스런 아들이 됐다.
로페즈는 지난 9일(이하 한국시간) 휴스턴 애스트로스와의 아메리칸리그 디비전시리즈(ALDS) 2차전에 선발등판, 7이닝 6피안타 1볼넷 7탈삼진 무실점 호투로 미네소타의 6-2 승리를 이끌었다. 1차전에서 4-6으로 패한 미네소타는 로페즈의 호투에 힘입어 반격하며 1승1패 균형을 맞추고 3~4차전이 열리는 홈으로 돌아갔다.
지난 4일 와일드카드 시리즈 1차전에서도 토론토 블루제이스를 5⅔이닝 5피안타 2볼넷 1사구 3탈삼진 1실점으로 막고 승리한 로페즈는 이날까지 이번 포스트시즌 2경기 모두 승리투수가 됐다. 2⅔이닝 1실점 평균자책점 0.71.
휴스턴 강타선도 로페즈 앞에선 무기력했다. 최고 97마일(156.1km), 평균 95.9마일(154.3km) 포심 패스트볼(33개), 체인지업(27개), 싱커(23개), 스위퍼(16개), 커브(6개)를 원하는 곳으로 구사했다. 좌타자 상대 체인지업, 우타자 상대 스위퍼가 위력적이었다. 하이 패스트볼도 결정구로 적극 활용하며 강력한 구위를 과시했다.
‘MLB.com’도 이날 ‘로페즈는 덕아웃에서 미네소타의 1차전 패배를 지켜보며 휴스턴 타자 한 명, 한 명에 대해 메모를 했다. 투구를 하지 않을 때 최대한 많은 정보를 수집하기 위해 노력했다’며 ‘로페즈는 해부학 책으로 가득찬 집에서 두 의사의 아들로 자랐다. 16살 때 학년을 건너뛰며 고교를 졸업하고 부모가 다닌 의과 대학에 합격했다’고 성장 과정을 조명했다.
베네수엘라 출신 우완 투수 로페즈는 교육열이 높은 의사 집안에 태어났다. 아버지는 일반의, 어머니는 병리학자였다. 지난 5월10일 MLB.com에 따르면 로페즈는 “2012년 7월 시애틀 매리너스에서 계약을 제안했을 때 부모님이 다니던 대학에 합격했다”며 “16살의 나이로 결정하기 힘든 일이었다”고 떠올렸다. 아버지와 병원에서 야간 근무하는 게 꿈이었지만 야구가 인생 행로를 바꿨다.
야구 인기가 뜨거운 베네수엘라의 어린 아이들이 그렇듯 로페즈도 야구에 빠졌다. 베네수엘라 출신 2004년, 2006년 AL 사이영상을 두 번 수상한 미네소타 좌완 에이스 요한 산타나가 로페즈의 우상이었다. “베네수엘라 모든 아이들이 산타나 팬으로 자랐다. 어렸을 때 트윈스 유니폼을 입은 그를 본 기억이 생생하다”고 추억을 반추했다.
로페즈는 스페인어, 영어, 포르투갈어, 이탈리아어 등 4개 국어를 마스터할 정도로 머리가 비상했다. 학년을 건너뛰면서 16살에 고교를 졸업했고, 20점 만점에 19.8점을 받아 부모님이 다니던 의대에 합격해 의사의 길을 걸을 수 있었다. 하지만 그때 시애틀이 로페즈에게 계약을 제의했고, 로페즈는 멘토인 아버지와 상담 끝에 야구를 하기로 결심했다.
아마추어 야구선수였던 로페즈의 아버지는 “100% 네 결정이다”며 아들에게 선택을 맡겼지만 나머지 가족들은 처음에 이해하지 못했다. 학구적인 성향이 강한 외할머니가 강하게 반대했다. “내가 야구를 하겠다고 했을 때 할머니가 별로 기뻐하지 않았던 것으로 기억한다”고 떠올린 로페즈는 11살 때 어머니, 3년 전 아버지가 차례로 세상을 떠났지만 성공한 메이저리거로 우뚝 섰다.
시애틀과 계약 후 마이너리그에서 유망주로 성장한 로페즈는 2017년 7월 마이애미 말린스에 트레이드됐고, 2018년 빅리그 데뷔 꿈을 이뤘다. 꾸준히 성장 단계를 밟더니 지난해 첫 10승을 거뒀다. 올해 1월 지난해 AL 타격왕 루이스 아라에즈와 트레이드돼 미네소타로 왔다. 우상 산타나가 전성기를 보낸 팀의 유니폼을 입었고, 4월 중순 4년 7350만 달러(약 995억원) 연장 계약도 체결했다. 32경기(194이닝) 11승8패 평균자책점 3.66 탈삼진 234개로 커리어 하이 시즌을 보내며 미네소타의 AL 중부지구 우승을 이끌었다.
와일드카드 시리즈 1차전 때 산타나의 미네소타 시절 유니폼을 입고 출근한 로페즈는 가을야구에서도 위력을 이어가고 있다. 미네소타에 와서 포심 패스트볼 구속(93.5마일→94.9마일)이 빨라졌고, 스위퍼를 새로 장착하며 A급 투수로 올라섰다. 미네소타 유격수 카를로스 코레아는 이날 승리 후 “진정한 에이스의 모습을 봤다. 오늘 경기로 로페즈는 리그 최고 투수 중 한 명으로 확실히 자리잡았다. 가장 큰 무대에서 부담이 컸을 텐데 강타선을 상대로 호투했다. 내가 본 것 중에서 가장 인상적인 경기였다. 2019년 휴스턴 시절 타자들에게 기회를 주지 않던 게릿 콜(뉴욕 양키스)이 떠올랐다. 정말 잘했다”고 칭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