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이저리그 포스트시즌 역사를 통틀어 최악으로 남을 만한 투구였다. 가을에 유독 약해 ‘새가슴’ 소리를 듣는클레이튼 커쇼(35·LA 다저스)에게 또 하나의 흑역사가 쓰여졌다.
커쇼는 지난 8일(이하 한국시간) 2023 메이저리그 포스트시즌 내셔널리그 디비전시리즈(NLDS) 1차전에 선발등판, 애리조나 다이아몬드백스 상대로 ⅓이닝 6피안타(1피홈런) 1볼넷 6실점으로 뭇매를 맞고 조기 강판됐다. 1회도 버티지 못한 채 6실점으로 크게 무너졌고, 다저스도 다저스타디움 홈구장에서 2-11 무기력한 대패로 시작했다.
2루타, 안타, 안타, 2루타, 홈런, 땅볼, 볼넷, 2루타. 8타자 상대로 아웃카운트 하나밖에 잡지 못하며 쉴 새 없이 맞았다. 8명의 타자 모두 96마일(154.5km) 이상 하드 히트로 커쇼의 공을 정타로 만들었다. 총 투구수 35개로 최고 91.2마일(146.8km), 평균 90.4마일(145.5km) 포심 패스트볼(17개), 슬라이더(14개), 커브(4개)를 구사했는데 전부 통타당했다.
‘MLB.com’ 등 현지 언론에 따르면 포스트시즌에서 첫 아웃을 잡기 전에 5안타 5실점한 선발투수는 이날 커쇼가 최초. ⅓이닝을 던지며 6실점 이상 내준 선발투수는 2000년 길 에레디아(당시 오클랜드 애슬레틱스, ALDS 5차전 뉴욕 양키스전), 2019년 마이크 폴티네비치(당시 애틀랜타 브레이브스, NLDS 5차전 세인트루이스 루이스전)에 이어 3번째. 모두 ⅓이닝 6실점이다.
정규시즌, 포스트시즌 다 합쳐 커쇼 커리어 최소 이닝 투구로 한 이닝에 6점을 내준 것도 처음이다. 경기 후 데이브 로버츠 다저스 감독은 “힘든 경기였다. 이런 상황에 처할 줄 몰랐다. 원래 커쇼는 제구력과 위기 관리 능력이 뛰어난데 오늘은 안타깝게도 그렇지 못했다”며 “선수들이 훌륭한 게임 플랜을 짜고 실행했다는 점에서 더욱 충격적이다”고 당혹스러워했다.
커쇼도 이런 상황이 믿기지 않는 듯했다. 경기 후 클럽하우스에서 취재진에 둘러싸인 커쇼는 “모두를 실망시켰다. 부끄럽다”며 “1차전에서 좋은 투구를 기대한 팬들에게 정말 부끄럽다. 아직 기회가 있지만 이렇게 시작해서는 안 됐다. 다른 이유 없이 내 투구가 나빴다”고 말했다. 신인 중견수 제임스 아웃맨의 아쉬운 수비들도 있었지만 커쇼는 자신을 탓했다.
다저스 팀 동료들은 커쇼를 감쌌다. 포수 윌 스미스는 “커쇼는 틀림없이 역대 최고의 투수 중 한 명이다. 하지만 그도 사람이고, 실수를 한다. 며칠 내로 커쇼가 다시 돌아올 것으로 기대한다. 그라면 그 기회를 놓치지 않을 것이다”고 말했다. 1루수 프레디 프리먼도 “오늘 같은 상황은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을 것이다. 하지만 다음에 커쇼가 마운드에 오르면 우리는 자신감을 가질 것이다. 그가 다시 마운드에 오를 수 있길 바란다”며 설욕을 기대했다.
만약 다저스가 NLDS 2~3차전을 모두 패하지 않으면 13일 애리조나 홈구장 체이스필드에서 열리는 4차전에 커쇼가 다시 선발등판한다. 4일 휴식 등판이지만 이날 투구수가 35개밖에 되지 않아 크게 무리가 되지 않는다.
로버츠 감독은 커쇼의 몸 상태에 대해 “신체적으로 문제 없다. 구속은 제대로 보여주지 못했지만 구위는 좋았다고 생각한다. 실투가 좀 있었는데 상대가 잘 이용했을 뿐이다. 우리 계획은 변함없다. 커쇼가 4차전 선발등판할 것이다”고 여전한 믿음을 표했다. 커쇼도 “몸 상태는 괜찮다. 건강이 문제가 아니라 좋은 투구를 못했을 뿐이다. 4차전을 준비하겠다”며 5일 뒤 설욕 의지를 불태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