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G 트윈스가 무려 29년 만에 정규시즌 우승을 확정지으며 한국시리즈에 진출했다. LG의 오랜 한풀이가 머지않았다.
135경기 82승51패2무(승률 .617)를 기록 중인 LG는 남은 9경기에 관계없이 3일 정규시즌 우승이 확정됐다. 2~3위 KT와 NC가 3일 경기에 모두 패해 LG의 매직넘버가 모두 지워졌다. 6월27일부터 지켜온 1위 자리가 확정됐다. 4~5일 사직 롯데전을 위해 부산으로 이동하던 LG 선수단은 구단 버스에서 감격의 우승 순간을 맞이했다.
LG의 정규시즌 우승은 1994년으로 무려 29년 전이다. 당시 이광환 감독이 이끌던 LG는 투타 모두 강력한 전력을 자랑하면서 81승45패(승률 .643)로 정규시즌 우승을 차지했다. 그해 4월26일 1위 자리에 오른 뒤 한 번도 내주지 않을 정도로 압도적인 레이스를 펼쳤고, 한국시리즈에서도 태평양을 4전 전승으로 꺾고 통합 우승을 차지했다.
LG의 신바람 야구 시대가 활짝 열렸지만 영광의 시간은 너무 짧았다. 1995년 시즌 막판 ‘잠실 라이벌’ OB(현 두산)에 역전 우승을 내주며 정규시즌 2위로 마친 뒤 한국시리즈 진출까지 좌절돼 2연패에 실패한 LG는 1997~1998년, 2002년 한국시리즈 준우승을 끝으로 기나긴 암흑기에 들어갔다.
인위적인 세대 교체가 실패로 돌아갔고, FA 영입마저 번번이 실패하는 등 2003~2012년 10년 연속 포스트시즌에 진출하지 못했다. 스타 선수들은 많지만 하나로 융화되지 못해 ‘도련님 야구’라는 혹평을 듣기도 했다. 김상현, 박병호, 서건창 등 LG에서 나간 선수들이 리그 MVP로 도약하면서 ‘선수 못 키우는 팀’으로 전락했다.
2013년 정규시즌 2위로 긴 암흑기를 끊고 가을야구에 나간 LG는 육성에 눈을 뜨며 포스트시즌 안정권 팀으로 도약했다. 2014년과 2016년에 이어 2019~2022년 4년 연속 포스트시즌에 오르며 컨텐더로 입지를 다졌지만 큰 경기에 약한 면모를 보였다. 최근 2년 연속 포스트시즌 업셋을 당하며 우승의 꿈이 좀처럼 이뤄지지 않았다.
그렇게 무려 29년의 시간이 흘렀다. 그 사이 LG는 12번이나 감독이 바뀌었다. 이 기간 LG보다 감독을 많이 바꾼 팀은 롯데(14번)밖에 없다. 두산이 6번밖에 교체하지 않은 것을 감안하면 LG의 변화는 극심했다. 우승을 이끈 이광환 감독이 물러난 뒤 천보성, 이광은, 김성근, 이광환, 이순철, 김재박, 박종훈, 김기태, 양상문, 류중일, 류지현 감독이 차례로 거쳐갔다.
우승 감독들을 외부에서 영입하고, 내부에서도 승격을 해봤지만 어느 누구도 재계약하지 못한 채 지휘봉을 내려놓아 ‘감독들의 무덤’이 되고 말았다. 2014년 5월 시즌 중간에 부임한 양상문 감독이 2017년까지 4시즌 가까이 이끈 게 최장 기간. 류중일, 류지현 감독은 2년 연속 포스트시즌 진출에도 가을야구 실패에 책임을 지고 물러났다.
하지만 올해 새롭게 지휘봉을 잡은 염경엽 감독이 잔혹사를 끊었다. 넥센(현 키움), SK(현 SSG)를 거쳐 LG 감독으로 선임된 염경엽 감독은 한국시리즈 우승 경력은 없지만 확고한 지도 철학과 컬러로 팀 체질 개선을 이뤄냈다. 시즌 초반 많은 논란에도 불구하고 공격적인 주루 플레이로 빠른 야구를 정착시켰다.
두꺼운 선수층으로 경쟁을 유도하며 적재적소에 선수들을 활용했다. 대주자 신민재를 주전 2루수로 키워냈고, 불펜 이정용을 선발로 전환시켜 성공했다. 박명근, 유영찬, 백승현 등 새로운 불펜도 발굴해냈다. 프런트에서도 FA 유강남(롯데)과 채은성(한화)이 빠진 자리에 박동원을 영입하고 외국인 타자로 오스틴 딘을 데려오며 후방 지원했다. 아직 최종 평가를 내리기 이르지만 트레이드 마감일에 선발투수 보강을 위해 유망주들을 내주고 최원태를 받는 승부수를 띄웠다.
1989년 시작된 단일리그 체제(1999~2000년 양대리그 제외)에서 정규시즌 우승팀의 한국시리즈 우승 확률은 84.4%(27/32)에 달한다. 한국시리즈 우승의 8부 능선을 넘은 LG가 가을야구 끝자락에서도 환히 웃을 가능성이 높아졌다.
정규시즌 우승 확정 후 염경엽 감독은 "첫 번째로 1년 동안 많은 원정도 와주시고, 홈에서도 열렬히 응원해주신 팬분들 덕분에 29년 만에 페넌트레이스 우승을 한 것 같다. 감사드린다. 두 번째로는 한 시즌 힘들기도 했고, 우여곡절이 굉장히 많았지만 우리 선수들, 주장 오지환, 김현수, 투수에서는 김진성, 임찬규를 중심으로 똘똘 뭉쳐서 페넌트레이스 1등을 위해서 열심히 1경기, 1경기 최선을 다해 뛰어준 선수들에게 고맙고 축하한다는 말을 전하고 싶다. 3번째로는 1년 동안 내가 화도 많이 내고, 잔소리도 많이 했지만, 선수들을 잘 리드해주고 우리가 가고자 하는 방향으로 잘 이끌어준 코칭스탭들에게 고맙다고 인사하고 싶다"고 전했다.
이어 염 감독은 "4번째로 현장을 지지해주고 믿어주신 구광모 구단주님, 구본능 구단주 대행님, 김인석 대표이사님, 차명석 단장님께 정말 뒤에서 그림자처럼 지원해주신 것에 감사한다. 또 우리 프런트들 전체, 팀장들부터 시작해서 모두들 현장에 도움을 주기위해 노력했고, 함께 고생한 프런트들과 이 기쁨을 함께 하고 싶다"며 "첫 번째 목표를 달성해서 너무 기쁘고, 가장 큰 두 번째 목표인 한국시리즈가 남아있다. 지금부터 휴식과 훈련 계획을 잘 짜고 준비 잘해서 마지막까지 우리가 웃을 수 있도록 준비 잘하겠다"고 다짐했다.
주장 오지환은 "29년 만에 정규시즌 우승은 우리 선수단, 프런트, 팬들이 함께 만들어준 결과라고 생각한다. 우승까지 오면서 감사한 분들이 너무나 많다. 우선 감독님, 코치님들 그리고 하나로 똘똘 뭉쳐 좋은 경기를 해준 우리 선수들, 뒤에서 서포트해주신 프런트분들, 마지막으로 항상 열정적으로 응원해주신 모든 팬들께 선수단 대표로 감사한 마음을 전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