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 개시 직전 양의지가 돌연 교체되며 졸지에 주전 포수와 4번타자를 동시에 맡게 된 장승현(29). 공격에서 야속할 만큼 많은 찬스가 찾아왔고, 번번이 후속타가 불발됐지만 수비는 달랐다. 양의지 못지않은 도루 저지 능력을 뽐내며 팀 도루 1위의 LG 발야구를 봉쇄했다.
지난 30일 서울 잠실구장에서 열린 2023 신한은행 SOL KBO리그 두산 베어스와 LG 트윈스의 시즌 13번째 맞대결.
두산의 4번 포수로 선발 출전한 양의지는 1회초 시작에 앞서 선발 김동주의 연습투구를 받으려던 찰나 백업 포수 장승현과 갑작스럽게 교체됐다. 사유는 부상이었다. 경기 개시 전 불펜피칭 도중 투구에 왼손 엄지 끝(손바닥) 부위를 맞아 부기가 발생했고, 경기를 강행하려 했으나 하필이면 공을 잡는 손을 다치며 경기를 뛰어보지도 못하고 장승현에게 바통을 넘겼다.
이미 양 팀 오더를 교환한 터라 타순을 바꿀 수 없는 노릇이었다. 양의지의 제외로 두산은 김동주-장승현 백업 배터리로 LG를 상대하게 됐고, 클린업트리오 또한 호세 로하스-양의지-양석환에서 호세 로하스-장승현-양석환으로 바뀌며 전력 약화가 불가피해졌다.
경기 후 만난 장승현은 “불펜에서 (양)의지 형과 함께 공을 보고 있다가 형이 맞은 걸 확인해서 바로 준비했다. 다행히 경기 직전 비가 조금 오면서 조금 시간이 있었다”라며 “4번이라는 자리가 솔직히 부담은 됐다. 내가 요즘 잘 못 치고 있어서 더 그랬다. 그래서 수비 쪽으로 많이 생각을 했다”라고 교체 상황을 설명했다.
4번타자 역할은 쉽지 않았다. 야속하게도 장승현 앞에 유독 많은 찬스가 찾아왔고, 장승현은 1회 2사 1루에서 유격수 땅볼, 3회 2사 1, 2루에서 헛스윙 삼진, 5회 1사 1, 3루에서 우익수 뜬공, 7회 1사 1루에서 루킹 삼진으로 물러났다. 만일 경기에서 패했다면 장승현이 패인으로 지목될 정도로 득점권 빈타가 잦았다. 적어도 타선에서만큼은 양의지의 공백이 느껴졌다.
수비는 달랐다. 강한 어깨와 순발력을 이용해 LG 발야구 봉쇄에 앞장섰다. 6회 2사 1루서 박해민, 7회 1사 1루서 문성주의 도루를 연달아 저지하며 상대 추격 흐름을 끊었다.
장승현은 “(박)해민이 형이 나갔을 때 무조건 도루할 것 같아서 계속 준비를 하고 있었다. 타석에서 만회를 못해서 더 준비를 많이 했는데 좋은 결과가 있었다”라고 흡족해했다.
다만 타격의 경우 양의지의 진심 어린 조언이 있었지만 4번타자 역할을 수행하지 못했다. 장승현은 “(양)의지 형이 늘 자신감 갖고 하라고 해주신다”라며 “오늘은 4번이니까 4번답게 삼진 먹어도 자신 있게 들어오라고 했다. 그런데 그게 잘 안 된 것 같다”라고 아쉬워했다.
장승현은 아울러 선발 김동주와도 찰떡 호흡을 자랑하며 6이닝 2피안타(1피홈런) 2볼넷 2탈삼진 1실점 승리를 합작했다. 5월 12일 잠실 KIA전 이후 약 4개월 만에 나온 김동주의 시즌 3승(5패)이었다.
장승현은 “(김)동주가 잘 던져서 이긴 것이다”라며 “동주가 원래 공은 좋은데 혼자만의 싸움을 많이 하는 성격이다. 바로 붙어도 되는데 기복이 있어서 오늘은 최대한 빠른 승부를 유도했다. 공이 좋아서 결과가 좋았다”라고 전했다.
2023년 9월의 마지막 날은 장승현에게 잊지 못할 하루가 될 전망이다. 양의지의 갑작스러운 교체로 주전 안방마님과 4번타자를 동시에 담당했고, 부담감 속에 묵묵히 자신의 역할을 하며 팀 승리를 맛봤다
장승현은 “프로 와서 4번도 쳐보고 잊지 못할 경기가 될 것 같다”라고 했다.
/backlight@os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