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래서 현역 시절 국민타자라는 별명을 얻었나 보다. 보통 야구를 하는 것과 가르치는 건 전혀 다른 분야라고 하지만 이승엽 감독은 ‘신뢰’라는 무기를 앞세워 만년 백업 외야수가 타격에 눈을 뜰 수 있도록 도왔다. 조수행(30)은 생애 첫 끝내기의 공을 이승엽 감독에게 돌렸다.
조수행은 지난 29일 서울 잠실구장에서 열린 2023 신한은행 SOL KBO리그 LG와의 시즌 12차전에 2번 우익수로 선발 출전해 4타수 1안타 1타점 1볼넷 1득점으로 활약했다.
조수행은 1회 첫 타석부터 LG 선발 임찬규 상대로 볼넷을 골라낸 뒤 호세 로하스의 동점 투런포가 터지며 홈을 밟았다. 이후 3회 2루수 직선타, 5회 유격수 땅볼, 7회 우익수 뜬공으로 잠시 숨을 골랐다.
하이라이트는 마지막 타석이었다. 3-3으로 맞선 9회 2사 만루 찬스였다. 조수행은 LG 유영찬 상대로 1B-2S 불리한 카운트에 몰렸지만 4구째 148km 직구를 잡아 당겨 우전안타로 연결했다. 우익수 홍창기는 포구를 포기했고, 3루주자 강승호가 홈을 밟으며 극적인 끝내기 안타가 완성됐다. 조수행은 1루 베이스를 밟은 뒤 동료들의 물세례를 맞으며 생애 첫 끝내기의 기쁨을 만끽했다.
두산 이승엽 감독은 “조수행이 9회말 불리한 볼카운트를 극복하고 멋진 끝내기 안타를 때렸다. 후반기 들어 공수에서 정말 알토란 같은 역할을 해주고 있다”라고 칭찬했고, 동료 호세 로하스도 “(조)수행은 경기에 출장하든 안 하든 야구장에서 늘 같은 태도를 보여주는 최고의 팀원이다. 내가 끝내기 안타를 친 것처럼 기쁘다”라고 밝게 웃어 보였다.
경기 후 만난 조수행은 “데뷔 첫 끝내기다. 작년에 기억이 하나 있는데 그건 끝내기가 아니었다”라며 “처음 쳤는데 실감이 안 날 정도로 기분이 많이 이상하다. 물만 계속 맞아서 정신이 없다. 끝내기는 아마추어 시절에도 못 해봤던 것 같다”라고 감격의 첫 끝내기 소감을 전했다.
조수행은 작년 5월 18일 잠실 SSG전에서 허무하게 끝내기 안타가 무산된 기억이 있다. 2-2로 맞선 연장 11회 1사 만루서 등장해 좌전안타를 쳤고, 3루주자 김재호가 홈을 밟았지만 1루주자 안재석과 2루주자 정수빈이 다음 베이스로 진루하지 않는 본헤드플레이를 했다. SSG 야수진의 기민한 대처에 조수행의 끝내기 안타는 좌익수 앞 땅볼 이후 병살타가 됐다.
두산은 조수행이 등장하기 전 1사 만루에서 대타 김인태가 짧은 중견수 뜬공으로 물러나며 득점 없이 아웃카운트만 1개 추가됐다. 이에 부담을 느낄 법도 했지만 조수행은 “솔직히 부담 안 됐다면 거짓인데 최근 타격감이 계속 나쁘지 않아서 자신이 있었다”라며 “타구가 외야로 빠져나간 순간 처음 겪는 일이라 소름이 돋았다. 진짜 끝난 건가 싶었다. 처음에는 적시타를 친 기분이었는데 함성이 커서 실감이 났다”라고 말했다.
조수행은 강릉고-건국대를 나와 2016 신인드래프트서 두산 2차 1라운드 5순위로 입단했다. 어느덧 프로 8년차가 됐지만 그의 신분은 여전히 백업이다. 빠른 발과 넓은 수비 범위를 보유하고도 두산의 두터운 외야층을 뚫지 못하며 대주자, 대수비 출전이 잦았다. 올해도 정수빈의 백업으로 시즌을 출발했고, 적은 기회 속 타격에 애를 먹으며 이달 중순까지 시즌 타율이 1할대에 머물렀다.
조수행은 8월 타율 2할7푼으로 반등 계기를 만들더니 9월 3할1푼6리의 맹타 속 두산 외야 한 자리를 꿰찼다. 최근 10경기로 한정하면 타율이 3할6푼4리에 달하며, 시즌 타율도 어느덧 2할2푼8리까지 끌어올렸다.
무엇이 달라졌을까. 조수행은 “시즌 초중반 너무 부진했는데 그 때부터 감독님, 코치님들이 자세를 많이 잡아주시고, 신경도 많이 써주셨다. 연습을 토대로 실전을 하다 보니 좋은 결과가 나왔다. 그래서 더 꾸준히 연습을 했다”라고 반등 비결을 밝혔다.
조수행은 9월 맹타와 데뷔 첫 끝내기의 공을 사령탑에게 돌렸다. 그는 “감독님께서 이야기를 자주 해주신다. 타격 때 직접 불러서 조언을 해주시기도 한다”라며 “감독님께서는 늘 ‘네 야구를 편하게 하라’고 말씀해주신다. 기습번트도 너무 좋아해주신다. 물론 내가 많이 살기도 했지만. 그러다 보니 타격감이 더 좋아졌다”라고 감사를 표했다.
조수행의 끝내기를 등에 업은 두산은 추석 3연전 기선제압과 함께 최근 2연패, LG전 5연패에서 탈출하며 5위 SSG와의 승차를 3경기로 벌렸다. 시즌 68승 2무 60패.
조수행은 “아무래도 우리가 올해 LG 상대로 많이 처져있었는데 오늘을 계기로 남은 경기에서 많이 이겼으면 좋겠다”라며 “경기에 계속 나가면서 자신감이 생긴다. 항상 잘할 수는 없겠지만 앞으로 더 좋은 모습 나올 것 같다”라고 이날의 승리에 남다른 의미를 부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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