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O리그 최초의 홈런을 기록하며 40인 레전드에도 선정된 '헐크' 이만수(65) 전 SK 와이번스(현 SSG 랜더스) 감독의 꿈이 이뤄졌다. 이 전 감독이 10년 전 야구를 보급하며 씨앗을 뿌린 라오스가 아시안게임 첫 승이라는 결실을 맺었다.
김현민 감독이 이끄는 라오스 야구대표팀은 지난 27일(이하 한국시간) 중국 사오싱 야구장에서 열린 2022 항저우 아시안게임 싱가포르와의 야구 예선전에서 8-7로 승리했다. 2회 2점을 내줬지만 3회 동점을 만든 뒤 6회에만 5득점 빅이닝을 만들어 역전했다. 7회 2점, 8회 1점을 내줬지만 1점차 리드를 끝까지 지키며 역사적인 아시안게임 첫 승을 완성했다.
라오스 야구는 지난 2018년 자카르타-팔렘방 대회 때 처음으로 아시안게임에 나섰다. 당시 태국에 0-15, 스리랑카에 10-15로 패하며 조기 탈락했다. 5년이 흘러 맞이한 이번 항저우 대회에서 26일 예선 첫 경기 태국전도 1-4로 패했지만 두 번째 경기에서 싱가포르를 잡고 역사적인 첫 승을 따냈다. 28일 태국-싱가포르전에서 태국이 승리할 경우 라오스는 조 2위로 사상 첫 본선 진출까지 이룰 수 있다.
라오스 야구대표팀 총괄 책임자로 아시안게임에 참가 중인 이만수 전 감독에게도 감격의 순간이었다. 이 전 감독은 지난 2014년을 끝으로 SK 감독에서 물러난 뒤 야구 불모지 라오스로 떠났다. 야구장 하나 없는 척박한 환경 속에서 사비를 털어 야구 장비를 하나씩 들여와 선수들을 가르치고, 야구팀을 창단한 뒤 라오스야구협회를 설립했다. 라오스야구협회 부회장직을 맡은 이 전 감독은 라오스 정부의 협조와 대한야구소프트볼협회의 지원을 이끌어내며 한국의 지도자들도 라오스로 파견, 야구 전파를 위해 온힘을 기울였다.
어느새 10년째 라오스와 인연을 맺고 있는 이 전 감독의 꿈이 27일 승리로 이뤄졌다. 이 전 감독은 자신의 SNS를 통해 "오늘의 승리는 제인내 대표와 김현민 감독 그리고 이준영 감독의 헌신과 희생 때문이었다. 그리고 오늘의 최고 수훈선수들은 라오스 국가대표 선수들이다. 이들 선수들이 잘 할 수 있도록 수년 동안 문체부와 대한체육회 그리고 대한야구소프트볼협회에서 적극적인 지원 덕분에 이런 놀라운 기적을 만들어냈다"며 기뻐했다.
이어 이 전 감독은 "오늘 경기는 역전에 또 다시 재역전을 번갈아 하면서 정말 마지막 9회까지 손에 땀을 지으며 힘든 경기를 했다. 마지막 9회초 스리아웃까지 밴치에서 꼼짝하지 않고 이것을 지켜보는 심정은 정말 숨이 막히는 느낌이다. 경기를 지켜보는 중국인들은 재미있을지 모르나 경기를 치르는 선수들이나 스텝진들은 숨죽이며 마지막까지 마음을 조아리며 모든 경기를 다 지켜봐야 했다"며 "경기가 다 끝나고 중국 담당자가 우리에게 다가와 야구를 잘 모르는 중국인들이 오늘 경기를 보면서 '야구가 이렇게 재미있고 스릴 넘치는 경기인 줄 몰랐다'며 많은 중국인들이 엄지척을 했다고 한다"고 뒷이야기를 전했다.
또한 이 전 감독은 "마지막 9회초 스리아웃이 되자마자 곧바로 그라운드로 뛰쳐나가 선수들과 함께 마운드에서 뒹굴었다. 모든 것들이 다 불가능처럼 보였던 일들이 10년 만에 기적처럼 모든 꿈들이 다 이루어지는 순간이다. 선수들과 함께 마운드에서 뒹굴었는데 누구할 것 없이 눈물을 흘렸다. 누가 보았으면 꼭 금메달 딴것처럼 오해를 했을 것이다. 그만큼 라오스 국가대표 선수들에게는 첫승이 금메달 보다 더 값진 승리였던 것이다"고 감격했다.
또한 이 전 감독은 "첫 승하자마자 갑자기 모든 선수들이 달려와 나를 행가레 쳐줬다. 공중에 3번 뜨면서 지난 10년의 시간들이 순식간에 필름처럼 스쳐지나갔다. 라오스에 들어간지 10년 동안 말하지 못하는 숫한 어려움과 힘든 일이 있었지만 지금까지 한 번도 포기하지 않고 달려올 수 있어 감사할 뿐이다"고 고마움을 전했다.
이 전 감독은 KBO리그를 대표하는 레전드 포수 홈런왕으로 유명하다. 대구상고-한양대를 거쳐 지난 1982년 원년부터 1997년까지 16년간 통산 1449경기 타율 2할9푼6리 1276안타 252홈런 860타점을 기록했다. 1984년 타격 3관왕(타율·홈런·타점)을 비롯해 홈런왕 3회(1983~1985년), 타점왕 4회(1983~1985·1987년), 골든글러브 5회(1983~1987년) 경력을 자랑한다. 은퇴 후에는 미국으로 건너가 마이너리그 코치를 거쳐 2000~2006년 메이저리그 시카고 화이트삭스 불펜포수코치로 활약했다. 2005년 월드시리즈 우승 멤버로 함께했고, 2007년 SK 수석코치로 한국에 돌아온 뒤 2012~2014년 SK 감독을 지냈다.
화려한 커리어를 보낸 이 전 감독이지만 이날 라오스의 첫 승이 그 어떤 순간보다 기뻤다. 이 전 감독은 "아무도 없는 코치실에 앉아 눈물을 한없이 흘렸다. 라오스 국가대표 선수들이나 나에게 국제대회에서 첫 승은 그 어느 승리보다 값진 것이다. 솔직히 88년 만에 시카고 화이트삭스 팀이 월드시리즈에서 우승을 해도, 선수 시절 3관왕과 최고의 기록을 세워도 눈물을 흘리지 않았다. 그러나 왠지 모르는 눈물이 한없이 나의 볼을 향해 내리고 있다"며 "지난 10년 동안 묵묵하게 말없이 나의 뒷바라지를 위해 헌신한 사랑하는 아내한테 오늘의 첫 승을 바치고 싶다. 당신의 희생과 헌신 그리고 사랑이 없었다면 인도차이나 반도에 야구 보급은 불가능했다"고 아내에게도 고마움을 잊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