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화 채은성(33)은 야구계에서 인성이 좋기로 소문난 선수다. 1군 데뷔 10년차이지만 논란이나 구설수에 오른 적이 없다. 화내는 모습을 거의 보이지 않을 정도로 그라운드에서 평정심 유지도 잘한다. 상대 투수 공에 맞아도 지체하지 않고 1루로 뛰어가는 게 그의 트레이드마크.
그런 채은성이 그답지 않게 불만을 나타냈다. 지난 21일 대전 KIA전. 6회 2사 2루에 타석에 들어선 채은성은 김승현의 2구째 몸쪽 슬라이더가 스트라이크 판정을 받자 멈칫했다. 존을 벗어났다고 생각했는지 주심 박근영 심판을 바라보며 아쉬움을 나타냈다.
계속된 승부에서 6구째 공에 헛스윙 삼진을 당한 채은성은 타석을 벗어나며 배트를 땅에 던졌다. 앞서 볼 판정에 대한 불만이 쌓여 터진 모습. 과격하게 내던진 것은 아니었지만 평소 채은성답지 않은 모습이라 눈길을 끌었다.
이유가 있었다. 채은성은 “(불만을 표한 건) 거의 처음이다. 원래 그런 표현을 잘 안 하는데 오늘(21일) 우리 타자들이 계속 볼 판정에 아쉬워했다. (야수 중) 내가 제일 형이니 심판분께 잘 봐달라는 의미로 약간의 액션을 한 것이다”며 “후배들이 하기 어려운 것이다. 나이가 많은 내가 대표로 해야 했다”고 말했다.
현재 한화 야수 중 최고참인 채은성은 중심타자이자 선수단을 이끄는 리더 역할도 한다. 자기 것에만 신경 쓰지 않는다. 때로는 팀을 대표해 메시지를 전하는 역할도 해야 한다. 한화가 지난겨울 6년 90억원 거액에 채은성을 FA 영입한 것은 타격 생산력과 함께 젊은 선수들의 모범이 되어달라는 의미도 담겨있다.
올해 홈런, 타점 1위를 달리며 잠재력이 터진 노시환도 채은성을 따라 웨이트 트레이닝 루틴을 만든 효과를 톡톡히 보고 있다. 꾸준한 체력 관리로 성공적인 풀타임 시즌을 보내고 있다. 한화 관계자는 “채은성 효과가 그런 면에서 크다. 원정에 가도 숙소에서 일찍 일어나 눈을 비벼가면서 채은성 따라 웨이트 하는 노시환을 볼 수 있다. 젊은 선수들이 좋은 습관을 들일 수 있게 도와주고 있다”고 칭찬했다.
후반기 들어 타격 페이스가 한풀 꺾이고 수비 실수도 심심찮게 나왔지만 채은성이 타선에 있느냐 없느냐가 주는 차이는 무척 크다. 최원호 한화 감독은 “지금까지 이탈하지 않고 뛰어준 것만 해도 대단하다”며 “채은성이 선수들에게 상당히 모범이 되고 있다. 좋은 얘기들도 많이 해주고, 밥도 많이 사주더라”면서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선수들뿐만 아니라 현장에서 함께하는 불펜포수, 외국인 통역 등 지원 스태프들까지 두루두루 챙기는 채은성은 “다른 선수들도 다하는 것이다”며 “고참으로서 후배들에 모범을 보여야 뭔가 할 말을 할 수 있다. 어린 선수들은 아직 모르는 것들도 있고, 안일한 행동을 할 수도 있다. 혼낼 때는 따끔하게 혼내기도 한다. 후배들이 잘 따라와주고 있고, 야구를 대하는 자세도 많이 좋아졌다”고 이야기했다.
올해 121경기 타율 2할6푼6리(467타수 124안타) 20홈런 75타점 OPS .779를 기록 중인 채은성은 전반기에 비해 후반기 성적이 많이 떨어졌다. 햄스트링, 손목 부상 여파로 정상 컨디션이 아니고 체력도 지쳤지만 최근 10경기 홈런 4개를 몰아치며 2018년(25개) 이후 5년 만에 20홈런 고지도 밟았다. 리그 전체 홈런 비율이 1.64%로 역대 6번째 낮은 시즌이라 20홈런의 가치가 어느 때보다 더 크다. “20홈런보다 한 경기라도 더 이기고 싶다”는 리더로서 채은성의 가치는 20홈런 그 이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