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SEN=백종인 객원기자] 박해민의 타구가 높이 뜬다. 우익수가 자리 잡는다. 플라이 아웃으로 7회 말이 끝났다. 이제 8회 초다. 팬들의 눈은 한곳으로 쏠린다. 마운드에 나오는 건 누굴까. 불펜이 열린다. 문을 나서던 주인공이 잠시 쪼그려 앉는다. 그리고 뭔가를 땅에 새긴다. 임찬규가 숙연한 모습으로 등장한다. (23일 잠실, 한화-LG)
그야말로 장관이다. 3루 쪽 관중들이 일어서 뒷짐을 진다. 장엄한 육성 응원이 시작된다. ‘최.강.한.화.’의 외침이다. 그러자 1루 쪽에서 대꾸한다. ‘무.적.엘.지.’가 쩌렁쩌렁 울린다. 잠실의 8회 초가 그렇게 뜨거워진다.
2사 후 이도윤이 출루한다. 중견수 앞 안타다. 겨우 단타 하나다. 그걸로 충분하다. 다시 비등점을 향해 부글거린다. 박상언 타석에 절정을 이룬다. 8구 실랑이가 벌어진다. 와중에 파울 하나가 홈런만큼 멀리 날았다. 환호와 탄식이 엇갈린다.
마지막 결정구는 느린 커브였다. 헛스윙 삼진으로 24번째 아웃 카운트가 나온다.
홈팀 선발이 주먹을 불끈 쥔다. 어퍼컷 세리머니다. 벌써 이 게임에만 몇 번째인지 모른다. 그래도 상관없다. 그를 향한 기립 박수가 쏟아진다. 모자를 벗어 관중석을 향해 치켜든다. 에이스들이나 할 법한 퍼포먼스다. 그게 무척이나 잘 어울리는 하루였다.
13년 차 투수의 인생 경기다. 8회까지 5안타만 내줬다. 1회 홈런(채은성)이 유일한 흠집이다. 나머지는 완벽했다. 삼진 6개를 잡아내며, 무사사구 게임을 펼쳤다. 이렇다 할 위기도 없었다. 직구, 커브, 체인지업이 현란하다. 투구수는 96개로 끊었다.
12승으로 자신의 최다승을 경신했다. 국내파 중에는 고영표와 함께 맨 앞에 섰다.
마지막 8이닝 게임은 까마득하다. 20살 때인 2012년이다. “현대 야구는 8~9회까지 안 던져도 된다고 얘기한다. 하지만 나는 던지고 싶었다. 그동안 역량이 부족해서 못 던진 것이다. 반성도 많이 한다.” (경기 후 인터뷰)
8월 이후 승승장구다. 9게임에서 6승(1패)이나 올렸다. 이쯤 되면 차명석 단장이 떠오른다. 그가 남긴 멋진 어록들이다. 7월 말이었다. 희대의 트레이드를 성사시킨 다음이다. ‘회광반조’ 그리고 ‘메기효과’라는 멋진 말을 무대 위에 올렸다.
“최원태 정도면 우리 팀에 와서 3선발 정도를 충분히 할 수 있지 않을까(하는 마음이었다). 사실 임찬규가 3선발하고 있는 게 마음에 안 들었고, ‘니 자리는 네 번째로 가야 한다.’ 그런 생각이었다.”
물론 90%는 농담이다. 하지만 10%의 진심이 섞인 멘트다. 그때만 해도 임찬규가 주는 안정감은 크지 않았다. 대권을 위해 어쩔 수 없다는 여론이었다. 아니, 실제는 그 이상이다. 그 어려운 트레이드를 성사시켰다는 반가움이 대세였다. 염경엽 감독도 “구세주를 얻었다”며 환영했다.
그런데 이후 상황이 묘하게 돌아간다. 일단 ‘메기효과’는 확실했다. 최원태가 온 뒤로 집단 각성이 이뤄진 느낌이다. 임찬규가 대표적이다. 그리고 이정용, 김윤식에 이지강까지 호투를 이어간다. 선발진의 경쟁 구도가 이뤄진 셈이다.
그것뿐만이 아니다. 케이시 켈리도 예전의 구위를 회복하는 중이다. 이제 애덤 플럿코만 돌아오면 더 이상 아쉬울 게 없다. 여기까지는 트레이드 이후 한결 개선된 환경이다.
그러나 심각한 문제가 생겼다. 메기효과 당사자의 부진이다. 최원태가 이적 후 계속 고전한다. 등판한 7게임(2승 2패)에서 평균자책점(ERA)이 8.27이다. 최근 3경기는 5회도 채우지 못했다. 급기야 지난 11일에는 엔트리에서 말소됐다.
이렇게 되니 본전 생각나는 게 인지상정이다. 팬들이 반대급부를 아쉬워하게 된 것이다. 최원태를 얻기 위해 팀의 미래를 희생하는 대가를 치러야 했다. 이주형과 김동규, 지명권(2024년 1라운드)을 포기한 것이다.
특히 이주형을 아쉬워하는 목소리가 크다. 애지중지하는 유망주를 하루아침에 잃었다는 상실감 탓이다. 하필이면 팀을 옮기자마자 잠재력이 폭발했다. 42게임에서 169타수 56안타, 타율 0.331, 홈런 6개를 기록 중이다. 벌써 히어로즈 타선의 핵심으로 자리 잡았다.
자연히 그를 아끼던 팬들은 마음이 불편하다. 계산기를 두드리고, 아픈 기억을 떠올리게 된다. ‘굳이 왜 그런 트레이드를’ ‘자꾸 박병호, 박종호, 박경수가 생각난다’ ‘키움 경기를 보면 왜 손가락이 아프지’ 같은 반응들이다.
물론 이번 트레이드에 대한 결론은 아직 이르다. 1차 손익계산서는 10월이나 돼야 나올 것이다. 하지만 자꾸 따지게 되고, 아쉬움이 남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사람 마음이다. 그리고 그게 한편으로는 더 큰 부담감으로 작용하는 악순환으로 이어진다.
결국 스스로 증명해야 하는 일이 남았다. ‘메기효과’를 일으킨 당사자는 컨디션 조정을 마쳤다. 그리고 오늘(24일) 복귀전 등판이 예고됐다. / goorada@os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