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저우 아시안게임 야구대표팀 소집 하루를 앞두고 또한명의 ‘낙마’ 선수가 나왔다. KIA 좌완 투수 이의리(21)에겐 큰 시련이다.
대한야구소프트볼협회(KBSA) 경기력향상위원회와 KBO 전력강화위원회는 22일 항저우 아시안게임 야구대표팀 선수 교체를 발표하며 이의리의 제외 소식을 알렸다.
KBO는 ‘이의리가 손가락 부상에서 회복 중이나 대회 기간 최상의 경기력을 보이기 어렵다고 판단했다’며 ‘KBSA 경기력향상위원회와 KBO 전력강화위원회, 류중일 감독 및 대표팀 코칭스태프가 추가 논의를 거쳐 교체 선수를 확정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야구대표팀은 내일(23일) 서울 고척스카이돔에서 소집돼 첫 훈련을 시작한다. 27일까지 훈련한 뒤 28일 격전지인 항저우로 출국한다. 그러나 소집을 하루 앞두고도 엔트리 한 자리를 최종 확정짓지 못하는 등 혼란스런 상황이 이어지고 있다.
손가락 상태 나아졌는데…최종 테스트에서 외면받은 이의리
이의리는 지난달 22일 수원 KT전에서 왼쪽 어깨에 불편함을 호소하며 4이닝 76구만 던지고 교체됐다. 이튿날 검진 결과 단순 염증으로 드러나 한시름 놓았지만 보호 차원에서 1군 엔트리 말소돼 선발 로테이션을 한 차례 건너뛰었다. 이때부터 아시안게임 대표팀 교체와 관련된 이야기가 나왔다.
지난 3일 문학 SSG전에 복귀한 이의리는 그러나 9일 광주 LG전에서 이번엔 손가락에 문제가 생겼다. 왼손 중지 굳은살이 벗겨져 5회 투구 중 교체됐고, 다시 한 번 1군 엔트리 말소가 결정됐다. 물집이 아무는 데 시간이 필요했고, 11일간 회복을 거쳐 21일 대전 한화전을 준비했다.
투구에 큰 지장을 주는 수준의 부상은 아니었지만 이날 이의리의 투구수는 30~40구로 제한됐다. 아시안게임 대표팀 합류에 맞춰 투구수를 급격하게 늘리지 않고 몸을 만들어갈 수 있게 KIA 구단에서 배려했다. 그러나 이런 준비 과정들이 대표팀 제외로 수포가 되고 말았다.
21일 대전 한화생명이글스파크를 찾은 류중일 대표팀 감독, 조계현 KBO 전력강화위원장 앞에서 이의리는 부진했다. 1회를 3타자 연속 탈삼진으로 시작했지만 2회 볼넷과 몸에 맞는 볼로 제구가 흔들렸다. 수비 실책까지 겹쳐 2회를 채우지 못하고 내려갔다. 1⅓이닝 2피안타 2볼넷 1사구 3탈삼진 5실점(4자책) 패전.
직구 구속이 최고 147km, 평균 144km로 정상 컨디션일 때보다 떨어졌다. 시즌 전체로 보면 직구 구사 비율이 60.2%에 달하는데 이날은 직구(20개)보다 슬라이더(15개), 체인지업(9개), 커브(1개) 등 변화구를 더 많이 던졌다. 손가락 상태가 나아졌다고 하지만 이날 경기만 보면 정상적일 때 모습이 아니었다.
올림픽·WBC 모두 참가했지만 가장 허들 낮은 AG 낙마
이의리에겐 21일 한화전이 최종 테스트 무대였다. 이날 오후 대표팀은 이정후와 구창모의 대체 선수로 김성윤과 김영규를 확정, 발표하면서 ‘두 선수 외에 다른 대표 선수 중 부상의 영향으로 경기력이 저하됐다고 판단되는 경우 몸 상태를 면밀히 살펴 추가 교체할 방침이다’고 알렸다. 다분히 이의리를 염두에 둔 공지였고, 실제 류중일 감독과 조계현 위원장이 대전에 왔다. 류 감독과 조 위원장은 이의리가 내려가자마자 자리를 떴다. 그리고 22일 오전 이의리를 대표팀에서 제외키로 발표했다.
표면적인 이유는 부상이지만 결국 최근 불안한 경기력이 결정적인 교체 사유였다. 대표팀 최종 엔트리 발표 시점이었던 6월9일 기준으로 이의리는 11경기(49⅓이닝) 5승3패 평균자책점 2.55로 활약했다. 그러나 이후 13경기(59⅓이닝) 5승4패 평균자책점 6.07로 부진했다. 부상으로 두 번 엔트리 말소되는 등 정상 컨디션이 아닌 여파가 꽤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부상이 아닌 이유로는 선수 교체를 하지 않을 것이라던 대표팀 원칙이 깨졌다는 점에서 뒷말이 나올 수밖에 없다.
왼손 에이스로 기대한 구창모(NC)가 왼팔 척골 피로골절로 3개월 재활하며 실전 복귀가 늦어지자 대표팀은 그를 제외하는 결단을 내렸다. 대체 선수로 왼손 불펜 김영규를 뽑으면서 이의리는 유일한 왼손 선발 자원이었는데 그마저 낙마했다. 대체 선수 중 좌완 선발감이 마땅치 않다. 좌우를 가리지 않고 잘 던지는 것이 우선이지만 변수가 많은 국제대회 단기전 특성상 여러 유형의 선수가 고르게 포진해 있어야 하는데 이런 점에서 대표팀은 큰 리스크를 안게 됐다.
이의리 개인적으로도 첫 시련이다. 지난 2021년 1차 지명으로 KIA에 입단한 이의리는 첫 해부터 선발 로테이션에 빠르게 안착하며 신인왕을 거머쥐었다. 전신 해태 시절인 1985년 이순철 이후 36년 만에 탄생한 타이거즈 신인왕이었다. 2년차가 된 지난해에는 첫 풀타임 시즌으로 29경기(154이닝) 10승10패 평균자책점 3.86 탈삼진 161개로 활약, 데뷔 첫 두 자릿수 승수를 거뒀다.
올해도 최근 들어 고전했지만 24경기(108⅔이닝) 10승7패 평균자책점 4.47 탈삼진 133개를 기록했다. 2년 연속 10승. 제구가 잡히지 않아 주자를 쌓을 때가 많지만 국내 왼손 선발 중 가장 빠른 직구 평균 구속(145.6km)을 갖고 있다. 최고 150km가 넘는 직구 구위가 좋고, 날카로운 슬라이더도 있다. 국제대회에 강점이 있는 유형이다.
실제 19살이었던 2021년 도쿄올림픽 때도 이의리는 1라운드 도미니카공화국전(5이닝 4피안타 1피홈런 2볼넷 9탈삼진 3실점), 준결승 미국전(5이닝 5피안타 1피홈런 2볼넷 9탈삼진 2실점)에 선발로 나서 5이닝을 2~3실점으로 책임졌다. 10이닝 동안 삼진 18개를 뽑아내며 국제용 투수의 등장을 알렸다.
여세를 몰아 최고 선수들이 모이는 2023년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에도 태극마크를 달았다. 그러나 예선 일본전에서 7회 구원등판, ⅓이닝 3볼넷 1탈삼진 무실점으로 제구 난조를 보인 뒤 강판됐다. WBC는 1경기만으로 끝났지만 우리나라 투수 중 가장 빠른 155km 강속구를 뿌렸다.
올림픽과 WBC에 비해 상대적으로 허들이 낮은 아시안게임 발탁도 어렵지 않아 보였다. 이번 아시안게임 대표팀은 세대교체를 명분으로 와일드카드 3명을 제외하고 만 25세 이하, 프로 입단 4년차 이하 젊은 선수들로 구성됐다. 예상대로 이의리는 최초 명단에 무난하게 포함됐지만 부상 여파 속에 소집 전날 낙마 통보를 받았다. 석연치 않은 교체 과정으로 아쉬움을 삼키며 다음을 기약하게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