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틀 전 204분 기다림의 결실은 정식 경기 성사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양 팀 사령탑 모두 “그날 경기는 취소를 하는 게 맞았다”라며 심판진의 융통성 없는 경기 강행 판단에 짙은 아쉬움을 드러냈다.
한화 이글스와 KT 위즈는 지난 17일 대전 한화생명이글스파크에서 열린 더블헤더 2차전 도중 경기가 무려 3시간 24분 동안 중단되는 상황을 맞이했다. 5회말 선두 문현빈이 7구 승부를 펼치던 도중 폭우가 쏟아지며 우천 중단이 선언된 것.
문제는 대기 시간이었다. 방수포를 덮기 전에 내야 그라운드가 흠뻑 젖으면서 비가 그친 뒤 정비 작업에 상당 시간이 소요됐다. 종전 최장 중단 기록은 1시간 56분으로, 지난 1987년 8월 15일 대전 삼성-빙그레전, 지난해 7월 23일 대전 KT-한화전에 두 차례 있었다. 공교롭게도 모두 대전에서 진기록이 나왔다.
18일 대전에서 만난 최원호 한화 감독은 “야구장에 14시간을 있었다. 마치 3경기를 한 느낌이다. 더블헤더인데 왜 그렇게 했는지 모르겠다”라며 “아무래도 3시간 넘게 있다가 들어가니까 투수들은 몸을 풀고 나와서 그나마 나은데 타자들은 양 팀 다 방망이가 안 돌아가더라. 나는 3시간 동안 투수 로테이션 회의를 했다”라고 전했다.
한화생명이글스파크 정비에 오랜 시간이 걸린 결정적인 이유는 강수량이 아닌 경기장 내야 그라운드에 깔린 흙 때문이었다. 최 감독은 “선수들의 경기력을 위해 메이저리그 흙을 깔아놨는데 이는 햇빛을 받으면 딱딱해지는 마사토와 다르게 뽀송뽀송해진다”라며 “문제는 이 흙에 진흙 성분이 있어서 물이 묻으면 진흙탕이 돼버린다. 마사토보다 빨리 안 마르고 물을 머금으면 진흙이 된다. 비를 확 맞아버리면 정비가 쉽지 않다. 스펀지로 물기를 뺀다고 해결될 게 아니다”라고 아쉬워했다.
심판진에게 이런 부분을 어필했냐는 질문에는 “정상적이지 않은 그라운드에서 플레이를 하다가 우리든 상대든 부상자라도 나오면 어떻게 책임질 거냐고 했다”라며 “프로는 팬들에게 좋은 경기를 보여드릴 의무가 있다. 17일은 단순히 경기를 위한 경기를 하는 거밖에 안 됐다. 굳이 그렇게 경기를 위한 경기를 하는 것보다 다음에 다시 정상적으로 경기를 하는 게 맞았다”라고 작심 발언을 이어갔다.
최 감독은 계속해서 “선수들이 제대로 플레이 할 수가 없었다. 몸도 굳었고 그라운드 컨디션도 안 좋았다. 다치면 끝장인데 어떤 선수가 그런 환경에서 정상적인 플레이를 생각하겠나”라고 한탄하며 “도루도 슬라이딩도 모두 할 수가 없었다. 그냥 라이브배팅이었다. 의미가 없는 경기였다. 정상적인 경기를 할 수 있는 환경에서 경기를 해야 한다”라고 불만을 표출했다.
원정팀 KT는 204분이 한화보다 더욱 길게 느껴졌다. 하필이면 원정 라커룸 시설이 가장 열악한 대전에서 3시간 이상 대기하며 선수단 전체가 별도의 휴식 공간 없이 더그아웃에서 경기가 재개되기를 기다렸다. 선수들은 물론 감독, 코치들까지 체력 소모가 극심했다. 더블헤더를 독식했기에 망정이지 한 경기라도 패했다면 그 충격 여파가 컸을 것이다.
이강철 KT 감독은 “결과적으로 경기를 이겼지만 나 또한 경기 재개를 바라지 않았다. 중단되는 동안 LG-SSG 경기를 다 봤는데도 그라운드 정비 작업이 안 끝났더라. 취소를 바랐다”라고 솔직한 속내를 전했다.
이 감독의 가장 큰 불만은 경기 재개 후 다시 마운드에 오른 선발 웨스 벤자민이었다. 벤자민은 3-1로 앞선 5회 선두 문현빈 타석 때 7구를 던진 뒤 우천 중단되며 마운드에서 내려갔다. 이후 무려 3시간 24분이 흐르며 어깨가 식을 대로 식었지만 경기 재개 후 다시 등판해 문현빈과의 승부를 이어가야 했다. 벤자민은 의미 없는 공 2개를 더 던진 뒤 볼넷을 내주고서야 손동현과 교체됐다.
야구규칙 5조 10항에 따르면 경기에 출장하고 있는 투수가 이닝 처음에 파울 라인을 넘어서면 그 투수는 첫 번째 타자가 아웃이 되거나 1루에 나갈 때까지 투구를 완료해야 교체될 수 있다. 벤자민이 3시간 24분의 기다림 뒤에 다시 마운드에 오를 수밖에 없었던 이유다.
이 감독은 “해당 규정은 바꿀 필요가 있다. 1~2시간 기다렸다가 던지는 게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아무 의미가 없는 룰이다”라고 힘줘 말하며 “만일 볼넷 내보낸 주자가 홈을 밟았다면 자책점이 올라가는 것이다. 부상이라도 당했다면 선수 생명에 지장이 갈 수 있다. 30분이 지나면 기존 타자를 상대할 필요가 없는 쪽으로 규정이 바뀌길 바란다”라고 규정 개정을 조속히 촉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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