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말 미안한데...".
두산 베어스가 가을 신바람을 내고 있다. 지난 17일 KIA 타이거즈와의 광주경기에서 8-3으로 승리했다. 최근 6연승을 질주하며 4위에 올랐다. 까다로운 투수 토마스 파노니를 상대로 공략에 성공했고 강승호 박준영 양의지의 홈런포, 양석환의 4타점 활약이 빚어낸 연승이었다.
연승을 질주하며 가을 야구 가능성도 한층 높였다. 전반기 막판과 후반기 첫 경기까지 11연승을 질주했던 위세를 재현하고 있다. 오히려 그때보다 분위기가 좋다고 말한다. 이유는 어려운 경기를 따내는 승리가 많기 때문이다. 0-2로 뒤진 9회말 역전승, 어려운 경기인데도 접전을 펼치다 기어코 승리를 만들어내고 있다.
이 가운데는 이승엽 감독의 한결 독해진 야구도 한 몫하고 있다. 대표적인 사례가 주력타자 양석환과 김재환 대신 보내기 번트를 위해 대타로 내세운 일이었다. 흔치 않는 일이었다. 선수에게 맡기지 않고 감독이 적극적으로 승부에 개입했다고 볼 수 있다. 공교롭게도 모두 승리로 이어졌다.
지난 8일 잠실 삼성전. 6-7로 뒤진 9회말 선두타자 김재환이 볼넷을 골랐다. 다음타자는 양석환이었다. 강공이 아닌 보내기 번트를 위해 과감하게 양석환 대신 이유찬을 투입했다. 이미 2안타가 있었다. 동점을 만드는데 방점을 둔 교체였다. 결국 동점타가 터졌고 상대의 실책까지 나와 끝내기 승리를 거두었다.
0-2로 뒤지다 3-2 역전극을 연출했던 14일 SSG와 잠실경기도 마찬가지였다. 9회말 양석환 중전안타, 양의지 볼넷으로 무사 1,2루가 되자 김재환 대신 또 이유찬을 투입했다. 역시 동점을 만들기 위한 작전이었다. 이유찬은 번트실패였다. 그럼에도 끈질기게 공세를 펼쳤고 아껴놓은 대타카드 허경민을 마지막에 투입해 끝내기 안타를 만들었다.
잘치거나 못치더라도 중심타자들에게 맡기는 것이 일반적이다. 실패할 수도 있었지만 득점확률을 높이기 위해서는 번트를 선택했고 과감하게 움직였다. 이 감독은 "만일 역전을 생각했다면 김재환을 그대로 갔을 것이다. 동점을 만드는 것이 중요해 이유찬을 투입했다"며 "이제는 이기는 것이 중요하다"며 과감한 교체 이유를 설명했다. 물론 두 타자에게는 "정말 미안하다. 어쩔 수 없는 상황이다"며 미리 양해를 구했다.
그렇다면 선수들의 마음을 어땠을까? 양석환은 "경기에 이겼으니 감독님의 선택이 맞았다고 생각한다. 의지형처럼 존재감이 있었다면 교체 안당했을 것이다. 내가 부족했다는 생각을 많이 했다. 부산경기에서 내가 실패한 적이 있었다.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감독님이 오셔서 '정말 미안한데 상황이 이렇다'고 설명을 해주셨다. 감독님의 선택을 믿고 흔쾌히 받아들였다"고 말했다.
그러나 선수 위치에서는 중요한 찬스에서 대타로 교체하는 일은 당황스럽다. 김재환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중심타자라면 찬스에서 멋진 타격으로 해결하는 그림을 그렸을 것이다. 이감독은 선수들에게 양해를 구하는 절차를 밟으면서도 냉정한 교체로 강한 승부욕을 드러냈다. 17일 경기에서는 김재환을 아예 빼고 전날 대타 동점포를 터트린 박준영을 선발 기용해 승기를 잡는 홈런을 이끌어냈다. 이승엽 야구가 독해졌다. /sunny@os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