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O리그 42년 역사상 이런 일은 없었다. 무려 3시간24분(204분)을 기다린 끝에 경기가 재개됐다. 초유의 우천 중단 사태였다.
지난 17일 대전 한화생명이글스파크에서 열린 KT와 한화의 더블헤더 2차전. KT가 3-1로 앞선 5회말 한화 선두타자 문현빈 타석을 앞두고 외야에서 비바람이 몰아치기 시작했다. 빗줄기가 점점 굵어지더니 이내 폭우로 돌변했다. KT 선발투수 웨스 벤자민이 문현빈에게 7구째 공을 던진 직후인 오후 6시33분 심판진이 우천 중단을 선언했다.
그러자 구장 관리팀이 분주하게 움직였다. 중단 결정이 내려지자마자 미니 방수포로 마운드부터 먼저 덮은 뒤 대형 방수포를 내야 전체에 깔았다. 여기까지 2분40초 걸렸다. 저녁에 비 예보가 있긴 했지만 기습적인 폭우에 미처 손 쓸 틈도 없었다. 비는 20분가량 내렸고, 그라운드 곳곳이 완전히 물바다가 되어버렸다.
삽시간에 워낙 많은 양의 비가 내렸고, 흠뻑 젖은 그라운드 상태로 보아 경기 재개가 쉽지 않을 것 같았다. 그런데 심판진은 섣불리 결정하지 않았다. 우천 노게임을 선언하지 않았고, 한화 구장 관리팀에 그라운드 정비 시간을 문의했다. 이에 관리팀에선 “2시간 이상 소요될 것으로 예상된다”고 심판진에 전달했다.
현실적으로 경기를 재개하기 어렵다는 뜻이었다. 종전 KBO리그 최장 경기 시간 중단 기록은 1시간56분(116분)으로 1987년 8월15일 대전 삼성-빙그레전, 지난해 7월23일 대전 KT-한화전 두 차례 있었다. 그동안 경기 중단이 2시간을 넘긴 적이 없었는데 이날 2시간에 이어 3시간을 훌쩍 넘겼다.
심판진 요청으로 비가 그친 뒤 구장 관리 요원들이 전부 그라운드 정비 작업에 나섰다. 방수포를 걷은 뒤 어느 정도 물이 빠지기를 기다렸지만 손봐야 할 곳이 한두 군데가 아니었다. 일일이 내야 진흙을 먼저 삽으로 걷어낸 뒤 새로운 흙을 깔아 내야를 평평하게 다지는 작업을 반복했다.
정비를 개시한 지 2시간30분가량 지난 시점에서 심판진이 그라운드로 나와 직접 상태를 살폈다. 또 한 번 관리팀에 어느 정도 시간이 필요한지 물었고, “30분에서 1시간 정도 더 필요하다”는 답이 돌아왔다. 이에 심판진은 다시 정비해줄 것을 통고했고, 추가 정비 작업을 거쳐 밤 9시57분에야 가까스로 경기가 재개됐다.
무려 3시간24분(204분) 우천 중단으로 KBO리그 역대 최장 기록. 경기 중단 초반에만 해도 구장에 울려퍼지는 노래에 흥겹게 춤을 추며 재개를 기다리던 관중들도 밤이 깊어가자 하나둘씩 자리를 떴다. 오후 2시부터 더블헤더 1차전을 치른 양 팀 선수들도 하염없이 길어지는 대기 시간에 진을 뺐다. 경기 재개 후에는 미끄러운 구장 환경 탓에 부상 위험에도 노출됐다. 팀을 떠나 “이러다 선수들이 다치기라도 하면 어쩌려고 하나”라는 볼멘소리가 양쪽에서 나왔다.
정상적이라면 일찌감치 노게임 선언됐어야 할 경기. 심판진이 주저한 것은 밀려도 너무 밀린 일정 영향이었다. 여느 해보다도 비가 많이 내리면서 이날 17일까지 KBO리그는 총 85경기가 우천 취소됐다. 역대 최다 기록. 지난달 29일 취소된 경기 일정을 재편성한 뒤에도 19경기가 추가로 취소되면서 추후 일정을 또 편성해야 하는 복잡한 상황이다. 오는 11월16일 일본 도쿄돔에서 열릴 아시아프로야구챔피언십(APBC) 전까지 포스트시즌을 마쳐야 하는 만큼 더는 미룰 여유가 없다.
급격한 기후 변화로 인해 앞으로도 이런 상황이 계속 벌어지지 말란 법이 없다. 내년에도 시즌을 마친 뒤 11월에 WBSC 프리미어12 국제대회가 예정돼 있어 KBO리그 정규시즌을 가능한 빨리 마무리해야 한다. 우천 취소를 남발하지 않는 게 가장 중요하지만 일정이 더는 밀리지 않게 구체적인 대책을 세워야 하는 시기다.
KBO는 3월말로 시즌 개막 시기를 앞당기는 방안을 고려하고 있다. 지난달 KBO 실행위원회에선 선수들의 체력이 좋을 시즌 초중반에 우천 취소시 월요일 경기 또는 더블헤더를 치르는 방법도 논의했다. 현장에선 월요일 경기보다 일요일 더블헤더가 더 낫다는 의견이 주를 이루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