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과 2년 전 한화 소속으로 뛴 2루수로는 최초로 골든글러브를 수상한 정은원(23)이 외야 수비를 볼 가능성이 생겼다. 겁없는 신인 문현빈(19)이 2루수로 경쟁력을 보여주면서 정은원의 활용폭도 내야에만 국한되지 않을 듯하다.
최원호 한화 감독은 지난 17일 대전 KT전을 앞두고 시즌을 마친 뒤 일본 미야자키에서 열릴 마무리캠프에 대한 구상을 밝혔다. 그 중 하나가 2루수로 포지션이 중복되는 정은원과 문현빈의 활용법이다. 둘 다 쓰기 위해서는 1명이 외야로 나가야 하는데 문현빈이 아니라 정은원이 될 가능성도 열어놓았다. 두 선수 다 시즌을 마치고 마무리캠프에 참가한다. 여기서 경쟁을 통해 2루의 주인이 가려진다.
최원호 감독은 “시즌 때 나타난 문제점들은 시즌 도중에 어떻게 하기가 어렵다. 마무리캠프 때 파트별로 충분히 시간을 할애해서 보완하고, 내년을 위한 정립이 돼야 한다”며 관심을 모으고 있는 문현빈의 앞으로 포지션에 대해선 “마무리캠프 때 수비 훈련을 다 시켜보고 코치들의 의견을 들어보려 한다. 현재 수비력은 스프링캠프 때보다 떨어졌다고 하는데 시즌 후 교육리그, 마무리캠프 때 어느 정도 나아질 수 있을지 봐야 한다”고 말했다.
북일고 시절 주 포지션이 2루수였던 문현빈은 올해 입단 후 중견수로 시즌을 시작했다. 지난 2021년 골든글러브 2루수 정은원이 주전으로 자리잡고 있어 문현빈이 1군에서 뛰기 위해선 포지션 변경이 불가피했다. 카를로스 수베로 전 감독이 이끌던 5월초까지 중견수, 유격수, 2루수를 오가며 멀티 요원으로 기용된 문현빈은 최원호 감독 부임 후 중견수로 거의 고정되다시피 했다.
하지만 정은원의 공수 양면 부진이 생각보다 오래 가고, 문현빈이 중견수 수비에서 갈수록 불안을 노출하자 변화가 일어났다. 정은원이 선발에서 제외되고, 2군으로 내려간 지난달 중순부터 문현빈이 선발 2루수로 들어왔다. 중견수로 뛸 때도 꾸준히 내야 수비 연습을 하며 2루 포지션에 애착을 보인 문현빈에겐 큰 기회였다. 정은원이 1군에 돌아온 뒤에도 문현빈의 2루 출장 비율이 높다.
그렇다고 정은원을 이대로 벤치에만 앉혀둘 수도 없다. 비록 올해는 108경기 타율 2할2푼6리(367타수 83안타) 2홈런 27타점 OPS .617로 커리어 최악의 시즌을 보내고 있지만 한화에 정은원만큼 1군 경험이 있고, 타격에서 보여준 게 있는 타자는 얼마 없다. 올해도 볼넷을 62개 골라내 타율 대비 출루율(.342)은 나쁘지 않다. 한화로선 문현빈의 성장과 별개로 어떻게든 살려써야 할 선수다.
이에 최원호 감독은 정은원을 외야로 테스트하는 파격적인 구상도 하고 있다. 최 감독은 “정은원도 마무리캠프 때 외야 훈련을 시켜보려 한다. 계속 2루만 한다면 (문현빈이 주전으로 자리잡을 경우) 경기에 자주 나갈 수 없게 된다. 외야에서 다른 선수들과 비교해 수비가 엇비슷하고, 타격이 낫다면 정은원이 외야로 나가는 게 낫지 않을까 그런 생각도 하고 있다. 마무리캠프 때 다양한 시도를 하면서 코치들의 평가를 들어보겠다. 훈련을 많이 할 것이다. 캠프가 끝나고 떠날 때까지는 (포지션을) 정해야 한다”고 밝혔다.
불과 2년 전 리그 최고 2루수였던 정은원으로선 자존심 상하는 일이지만 냉정한 현실이다. 잠시라도 정체되거나 안주하면 언제든 자리를 빼앗길 수 있는 게 프로 무대의 생리다. 경쟁자 문현빈은 프로 데뷔 첫 해부터 115경기 타율 2할5푼5리(357타수 91안타) 4홈런 38타점 OPS .663으로 빠른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
올해 입단한 신인 타자 중 최다 안타를 기록 중인 문현빈은 1994년 LG 김재현(134개), 1995년 삼성 이승엽(104개), 1996년 현대 박진만(102개), 1999년 해태 정성훈(107개), 2017년 넥센 이정후(179개), 2018년 KT 강백호(153개)에 이어 역대 고졸 신인 타자로는 역대 7번째 100안타 기록까지 넘볼 만큼 이른 나이에 남다른 방망이 솜씨를 뽐내고 있다.
최 감독은 “은원이 개인적으로는 정말 힘든 시즌이다. 야구가 뜻대로만 된다면 다 슈퍼스타가 되겠으나 그렇지 않다. 그래도 라이벌(문현빈)이 생긴 것은 좋은 일이다. 서로 기량을 향상시키는 데 있어 좋은 경쟁 상대가 나타난 것이다”며 “아직 은원이도 나이가 어리다. 유격수 출신으로 내야에서 외야로 전향한 선수들이 많다. 은원이도 원래 유격수였다”는 말로 그에게 기대를 놓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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