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블헤더로 오후 2시에 시작된 KT-한화전이 밤 11시26분에야 끝났다. 역대 최장 3시간24분(204분) 우천 중단 지연 끝에 KT가 더블헤더를 독식했다.
KT는 17일 대전 한화생명이글스파크에서 열린 2023 신한은행 SOL KBO리그 한화와의 더블헤더 1~2차전을 모두 이겼다. 1차전 7-0 완승을 거둔 데 이어 2차전도 3시간 넘는 우천 중단 지연을 딛고 3-1로 이겼다.
경기 소요 시간은 1차전 2시간40분, 2차전 2시간50분으로 비교적 빠르게 진행됐지만 2차전 5회말 우천으로 인한 중단이 무려 3시간24분으로 사실상 '트리플헤더급' 경기가 됐다. 1~2차전 사이 휴식 시간 32분을 포함하면 무려 9시간26분이 걸렸다.
하루종일 야구하면서 2승을 추가한 KT는 69승34패3무로 2위 자리를 지켰다. 이날 경기가 없었던 3위 NC(65승53패2무)와 격차를 1.5경기 차로 벌렸다. 반면 더블헤더를 다 내주며 4연패에 빠진 8위 한화는 50승66패6무.
쿠에바스 호투로 스피드 게임, 1차전 2시간40분 만에 끝
1차전에서 KT는 선발투수 윌리엄 쿠에바스의 7이닝 7피안타 2볼넷 5탈삼진 무실점 호투에 힘입어 7-0 완승을 거뒀다. 쿠에바는 3회 2사 2루, 4회 2사 1,2루, 6회 2사 1,2루, 7회 2사 1,2루 위기가 있었지만 위기관리능력으로 무실점을 기록했다.
시즌 15경기 만에 9승째를 거둔 쿠에바스는 무패 행진을 이어가며 평균자책점도 3점대(3.09)에서 2점대(2.86)로 낮췄다. 최고 148km, 평균 146km 포심(18개), 커터(21개), 투심(11개) 등 패스트볼에 체인지업(33개), 슬라이더(11개)를 구사했다. 빠른 템포로 공격적인 투구를 펼쳐 야수들의 리듬까지 살려줬다.
1회 강백호의 적시타로 선취점을 낸 KT는 5회 앤서니 알포드의 투런 홈런, 7회 대타 이호연의 2타점 2루타, 9회 대타 김준태의 투런 홈런이 나오며 여유 있는 승리를 거뒀다. 오후 2시에 플레이볼한 더블헤더 1차전은 4시40분에 끝났다. 2시간40분 스피드 게임이었다.
2차전 5회말 쏟아진 장대비, 무려 3시간24분 기다렸다
1차전 종료 후 32분이 지나 오후 5시12분에 2차전이 시작됐다. KT의 기세가 이어졌다. 2회 한화 선발 한승주 상대로 앤서니 알포드가 좌전 안타를 치고 나간 뒤 장성우가 좌월 투런 홈런을 폭발했다. 한승주의 초구 가운데 높게 들어온 145km 직구를 받아쳐 투런포로 장식했다. 비거리 110m, 시즌 11호 홈런. 개인 통산 100호 홈런으로 리그 역대 105번째 기록이었다.
3회에도 KT는 김민혁의 우전 안타와 황재균의 희생번트, 강백호의 우전 안타로 연결한 1사 1,3루에서 박병호의 유격수 땅볼로 1점을 더해 3-0으로 달아났다.
한화도 곧 이어진 3회 이원석의 볼넷, 문현빈의 몸에 맞는 볼, 이진영의 볼넷으로 만든 1사 만루에서 닉 윌리엄스의 2루 내야안타 때 3루 주자 이원석이 홈에 들어와 1점을 따라붙었다. 그러나 계속된 공격에서 노시환이 3구 삼진을 당한 뒤 채은성마저 유격수 땅볼로 물러나 잔루 만루로 아쉬움을 삼켰다.
이어 5회 한화 선두타자 문현빈 타석 중 경기가 우천으로 중단됐다. 비바람이 몰아치더니 폭우로 돌변하면서 삽시간에 그라운드가 물바다가 됐다. 대형 방수포를 깔기도 전에 그라운드 상태가 엉망이 되어버렸다. 경기를 재개하기 어려워 보였지만 심판진이 우천 노게임을 쉽게 선언하지 못하면서 하염없이 대기 상태가 됐다.
비가 그친 뒤 구장 관리 요원들이 투입돼 그라운드 정비를 시작했다. 내야가 완전히 진흙탕이 되면서 정비 작업에 더 오랜 시간이 걸렸다. 진흙을 걷어낸 뒤 새 흙을 깔아 내야를 다지는 작업이 이어졌다. 오후 6시33분 중단된 경기는 밤 9시57분이 되어서야 재개됐다. 무려 3시간24분(204분) 중단으로 KBO 역대 최장 기록. 종전 기록은 1시간56분으로 지난 1987년 8월15일 대전 삼성-빙그레전, 지난해 7월23일 대전 KT-한화전 두 차례 있었다. 공교롭게도 전부 대전 경기.
한화 구단에 따르면 이날 구장 관리팀에선 심판의 방수포 설치 사인 이후 2분 40초 만에 방수포를 내야에 덮었다. 이후 비가 그친 뒤 방수포 철거 후 심판 측의 정비시간 문의에 '2시간 이상이 소요될 것으로 예상된다'고 전달했다. 이에 심판진은 '그럼 정비를 하라'고 구단 측에 지시했고, 정비를 개시한 지 2시간30분가량 지난 시점에 심판진이 나와 어느 정도 시간이 더 필요한지 문의했다. 이에 구단은 '30분에서 1시간 정도 더 필요하다'고 알렸고, 이에 심판진은 다시 정비해줄 것을 통고했다. 이후 추가 정비를 진행해 오후 9시57분에 경기가 재개됐다.
어깨 식은 벤자민 아리랑볼 2개 던지고 강판…불펜 호투로 KT 2차전도 승리
여느 해보다 우천 취소가 많아 경기 일정을 더는 미루기가 어려운 상황이 문제였다. 이틀 연속 더블헤더를 편성할 수 없는 원칙에 따라 이날 우천 노게임이 되면 18일 월요일 경기에 더블헤더가 아니라 추후 일정으로 재편성해야 하는 어려움이 있었다. 강우콜드 게임 조건이 성립되기까지 1이닝이 남은 경기 상황도 애매하긴 했다.
심판진은 섣불리 우천 노게임을 선언하지 못했고, 결국 3시간24분이 지나서야 경기가 재개됐다. 4회까지 1실점으로 막으며 3-1 리드 상황에서 5회 마운드에 오른 KT 선발 벤자민은 대기 시간이 너무 길어지면서 어깨가 식었다. 어쩔 수 없이 교체돼야 했는데 5회 경기 재개 후 다시 마운드에 올랐다. 문현빈에게 2개의 아리랑볼을 던진 뒤 볼넷을 주고 손동현으로 교체됐다.
야구규칙 5조 10항에 따르면 경기에 출장하고 있는 투수가 이닝 처음에 파울 라인을 넘어서면 그 투수는 첫 번째 타자가 아웃이 되거나 1루에 나갈 때까지 투구를 완료해야 한다. 우천 중단 전 벤자민은 파울 라인을 넘어 마운드에 올랐고, 문현빈과 7구 승부를 벌이고 있었다. 부상을 피하기 위해 벤자민은 힘을 빼고 아리랑볼을 2개를 던지고 내려갔다.
4이닝 2피안타 3볼넷 1사구 6탈삼진 1실점으로 승패 없이 물러난 벤자민은 비 때문에 KT 역대 한 시즌 최다승 16승 기록을 다음으로 미뤘다. KT 한 시즌 최다승 기록은 15승으로 2020년 오드리사머 데스파이네와 올해 벤자민이 기록 중이다.
벤자민은 승리를 놓쳤지만 손동현(2이닝), 박영현(2이닝), 김재윤(1이닝)으로 이어진 불펜이 5이닝 무실점을 합작하며 KT 승리를 완성했다. 손동현이 시즌 7승(5패)째를 거뒀고, 박영현이 31홀드째를 수확했다. 김재윤은 27세이브째. 타선에선 장성우가 홈런 포함 2안타 2타점, 김민혁과 알포드가 2안타로 활약했다. 한화 선발 한승주가 5이닝 5피안타(1피홈런) 1볼넷 3실점으로 시즌 3패(1승)째를 당했다.
오후 2시 더블헤더 1차전이 시작된 이날 경기는 밤 11시26분에야 더블헤더 2차전 종료로 끝났다. 무려 9시26분이 소요된 하루. 이날 더블헤더 입장 관중은 1차전 7406명, 2차전 6228명으로 총 1만3634명이었다.
경기 후 이강철 KT 감독은 "오늘 선수들이 장시간 동안 집중력을 잃지 않은 덕분에 승리할 수 있었다. 선발 벤자민이 우천 중단으로 끝까지 이닝을 소화하지 못했지만 본인 역할을 다했다. 불펜도 타이트한 상황에서 5이닝을 잘 막아줘 정말 고맙다. 타선에선 장성우의 선취 투런 홈런으로 경기 분위기 가져왔고, 박병호의 추가 타점으로 승리할 수 있었다"며 "오늘 경기 끝까지 응원해주신 팬들에게 감사드리고, 선수들 수고 많았다"고 승리 소감을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