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O리그 역대 최장 시간 ‘경기 중단’ 기록이 나왔다. 무려 3시간을 넘었다. 3시간24분(204분)을 기다린 뒤 경기가 재개됐다. 이동 거리가 길어 불가피하게 오래 기다려야 하는 미국 메이저리그에서나 볼 법한 일이다.
17일 대전 한화생명이글스파크에서 열린 KT와 한화의 더블헤더 2차전. KT가 3-1로 앞선 5회말 한화 공격에서 선두타자 문현빈 타석 때부터 비바람이 몰아치기 시작했다.
이내 폭우가 그라운드를 덮쳤다. KT 선발 웨스 벤자민이 문현빈 상대로 7구째 공을 던진 뒤 심판진이 중단을 선언했고, 양 팀 선수들 모두 덕아웃에 들어갔다. 관중들은 우산을 쓰거나 관중석 지붕 아래로 모여 비를 피했다.
상당히 많은 양의 비가 내렸고, 대형 방수포를 깔기도 전에 그라운드를 삽시간에 적셨다. 비가 그친 뒤에도 그라운드 상태가 너무 좋지 않아 정상적인 경기를 치르게 어려운 상태로 보였다. 구장 관리팀에선 경기 진행이 어렵다는 의사를 전했다.
하지만 심판진이 취소 결정을 내리지 않았다. 비가 그치길 기다린 뒤 구장 관리 요원들이 투입돼 그라운드 정비를 시작했다. 내야가 완전히 진흙탕이 되면서 정비 작업에 더 오랜 시간이 걸렸다. 진흙을 걷어낸 뒤 새 흙을 깔아 내야를 다지는 작업이 이어졌다.
오후 6시33분 중단된 경기는 1시간, 2시간에 이어 3시간이 지나서도 노게임이 선언되지 않았다. 오후 9시57분에야 경기가 재개되면서 역대 최장 3시간24분(204분) 중단 기록이 쓰여졌다.
KBO리그 역대 최장 기록이다. 종전 기록은 1시간56분으로 지난 1987년 8월15일 대전 삼성-빙그레전, 지난해 7월23일 대전 KT-한화전 두 차례 있었다. 그동안 경기 중단이 2시간을 넘긴 적도 없었는데 이날 KT-한화전은 무려 3시간을 넘어섰다.
경기가 중단된 초반에는 구장에 울려퍼지는 노래에 흥겹게 춤을 추며 즐기던 관중들도 늦은 시각까지 경기가 재개되지 않자 하나둘씩 빠져나가기 시작했다.
심판진으로선 섣불리 노게임을 선언하기 어려운 면이 있었다. 여느 해보다 많은 우천 취소 영향으로 일정이 뒤로 밀린 탓이 크다. 이대로 노게임이 선언되면 추후 일정으로 재편성된다. 더블헤더를 연이틀 편성하지 않는 원칙에 따라 18일 월요일 경기를 더블헤더로 치를 수도 없었다.
경기 상황도 애매했다. KT가 3-1로 리드한 상황에서 홈팀 한화의 5회말 공격이 시작됐다. 강우콜드 게임 조건이 성립되지 않았고, KT나 한화 모두 노게임이 되는 게 아쉬운 상황이긴 했다. 그러나 중단 시간이 너무 길어지면서 오후 2시 더블헤더 1차전 경기를 치른 선수들의 피로도가 가중됐다. 관중들까지 모두 하염없이 대기하며 진을 빼야 했다.
4회까지 1실점으로 막으며 3-1 리드 상황에서 5회 마운드에 오른 KT 선발 벤자민은 대기 시간이 너무 길어지면서 승리를 놓쳤다. 경기 재개 후 마운드에 오른 벤자민은 문현빈에게 2개의 아리랑볼을 던져 볼넷을 허용한 뒤 손동현으로 교체됐다.
야구규칙 5조 10항에 따르면 경기에 출장하고 있는 투수가 이닝 처음에 파울 라인을 넘어서면 그 투수는 첫 번째 타자가 아웃이 되거나 1루에 나갈 때까지 투구를 해야 한다. 우천 중단 직전 벤자민은 파울 라인을 넘어 마운드에 올랐고, 문현빈과 7구 승부를 벌이던 중이었다. 결국 재개 후 문현빈 타석까지 투구를 완료한 뒤에야 마운드를 내려갔다. 부상 보호를 위해 무리하지 않고 가볍게 아리랑볼 2개를 던지고 내려갔다. 각각 77km 커브, 97km 직구로 측정됐다. /waw@os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