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SEN=백종인 객원기자] 6-6이던 9회 초다. 원정팀 첫 타자와 승부가 너무나 인상적이다.
빠른 볼 2개로 파울을 만들었다. 카운트는 0-2로 투수 편이다. 그리고 3구째다. 기가 막힌 결정구가 통했다. 137㎞짜리 포크볼이다. 몸쪽으로 감기며 떨어진다. 타자는 어쩔 줄 모른다. 배트가 나왔지만, 턱도 없다. 연아신의 화려한 악셀이 연상된다. 빙그르르~. 한 바퀴 회전하며 그 자리에 허물어진다. 헛스윙 KO(삼진)다. (15일 광주 챔피언스 필드, 두산-KIA)
상대가 어디 보통인가. 천하의 양의지다. 상대 팀 최강이다. 아니, 리그 톱 레벨의 타자다. 절대 무리하게 치는 법도 없다. 강렬하지만 간결한 스윙을 추구하는 스타일이다. 그런 그가 타석에서 쓰러질 정도다. 그만큼 획기적인 공이었다. 모양 빠지는 건 둘째다. 피해 당사자도 어처구니가 없다. 넘어진 채 물끄러미 마운드를 바라본다.
마무리 투수 정해영의 출발은 더할 나위 없었다. 굴욕의 타자는 머쓱하다. 일어나며 상대 포수에게 뭔가를 묻는다. “이거 뭐야? 포크볼이야?” 아마도 그런 질문인 것 같다. 그만큼 어이없이 무너졌다. 김태군이 입을 가리며 웃는다.
하지만 딱 거기까지다. 그때부터 불행이 계속된다.
다음 타자는 호세 로하스다. 6구 실랑이 끝에 볼넷을 준다. 볼 배합이 기억에 남는다. 빠른 볼은 하나도 없다. 포크볼이 3개, 슬라이더가 3개다. 뭐, 그럴 수 있다. 한방이 두려운 좌타자 아닌가. 조심하느라 그런 거다. 여기까지는 그러려니 한다.
그런데 다음이 이상하다. 문제의 강승호다. 앞서 장타만 3개를 쳤다. 최고조의 타격감이다. 대기록(사이클링 히트)도 코 앞에 뒀다. 여기서도 정면 승부가 부담스러운 눈치다. 슬라이더만 4개를 연속으로 꽂는다. 그러다가 결국은 얻어맞는다. 하필이면 투수 강습 내야 안타다.
기분이 좋을 리 없다. (투수) 발에 맞아 아프기도 아프다. 그리고 기록은 기록대로 허용했다. 사상 최초라는 수식까지 붙는다. ‘리버스 내추럴(Revers Natural)’이라는 어려운 명칭이다. 홈런→3루타→2루타→단타라고 순서까지 따진다. 안방에서, 모양 빠지게 말이다.
그러나 진짜 문제는 따로 있다. 상황이 영 심상치 않다. 1사 1, 2루의 위기다. 그리고 타석에는 허경민이다. 어제(14일) 끝내기 안타를 친 타자다. 이래저래 부담스럽다. 역시 살얼음판을 걷는다. 초구, 2구에 간 보기가 들어간다. 거듭된 포크볼이다.
이미 밀리기 시작했다. 공격적인 투구는 물 건너갔다. 자꾸 유인구를 먼저 생각한다. 그럴수록 상대는 멀어진다. 말려들지 않고 지켜만 본다. 안 치면 볼이라는 걸 아는 눈치다. 카운트는 점점 타자 편이 된다. 투수는 점점 곤란하다.
직구 (던질) 타이밍을 계속 미룬다. 몰리게 되면, 어쩔 수 없이 선택한다. 스트라이크를 던져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불안하다. ‘가운데로 가면 맞는데….’ 그런 부담감 탓이다. 그래서 자꾸 ‘더 깊이, 더 꽉 차게’라는 강박에 시달린다. 존 안에 넣기가 어려워진다.
악순환의 결과는 아시다시피다. 1사 만루에 몰린다. 맞은 것은 고작 내야 안타 1개뿐이다. 나머지는 볼넷, 볼넷이다.
(김인태 타석) 마지막 투구 장면을 눈여겨봐야 한다. 카운트 3-2에서 포수 사인에 고개를 젓는다. 그리고 투구 동작에 들어간다. 이 때 김태군은 바깥쪽으로 앉는다. 그리고 스트라이크 존 경계선에 미트를 대고 있다. 너무 고급스러운 야구다. 볼 하나만 벗어나면 밀어내기인 상황 아닌가.
결국 목표 지점을 조금 벗어난다. 볼넷이다. 3루 주자는 공짜로 홈을 밟는다. 결승점이다. 곧바로 마운드가 교체된다. 정해영이 내려가고 장현식이 올라온다. 하지만 달라지는 건 없다. 8구 실랑이 끝에 또다시 밀어내기 볼넷이다. 6-6은 어느덧 8-6으로 변했다. 이날 승부의 최종 스코어가 된다.
얼마 전 일이 생각난다. 1위 팀에서 있었던 사달이다. 마무리 투수 문제로 골치가 아프다. 감독실에서 미팅이 열렸다. 당사자를 포함한 여럿이 참가했다. 주제는 피칭 디자인이었다. “고우석은 직구가 강점이다. 그걸 바탕으로 변화구를 구사해야 한다. 볼 카운트가 몰려서 어쩔 수 없이 던지면 맞기 쉽다.” 그게 결론이었다.
타이거즈도 비슷하다. 촉망받는 22살 마무리 투수다. 비록 전반기에 우여곡절이 있었다. 그러나 최근 괜찮았다. 8월부터 회복세가 뚜렷하다. 8게임 연속 무실점을 기록했다. 이 기간에 세이브를 5개나 올렸다. 직구 위력이 좋아진 탓이다.
그 역시 구위형 투수다. 패스트볼이 통해야 사는 스타일이다. 그런데 어제는 이상했다. 투구수 25개는 대부분 변화구다. 70%가 넘는 18개가 슬라이더나 포크볼이었다. 빠른 볼은 7개가 고작이다. 그것도 ‘안쪽 깊게’ 같이 어려운 코스를 노리다가 볼이 되기 일쑤였다.
심지어 첫 타자 양의지의 3구째부터 로하스-강승호-허경민까지 13개를 연속 변화구만 던졌다. 볼넷 2개로 만루의 위기를 초래한 볼배합이다.
고급스러운 야구는 중요하다. 그러나 현재 상황과 우리의 상태를 파악하는 게 먼저다. 무엇보다 젊은 투수다. 게다가 팀의 마무리다. 돌아가면 안되는 마지막 보루다. 승부가 필요할 때는 정면으로 붙어야 한다. 변화구, 유인구는 그 다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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