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회부터 번트를 대야 하나.”
지난 15일 LG-한화전이 열린 대전 한화생명이글스파크는 경기 전부터 먹구름이 잔뜩 끼어 어둑어둑했다. 오전부터 내린 비가 오후 들어 조금 잦아들었지만 완전히 그치진 않았다. 내야에 대형 방수포가 깔려 있어 선수들은 실내 연습장에서 몸을 풀었다. 오락가락한 상황인데 저녁에도 비 예보가 있었다. 오후 7시부터 시간당 20mm 이상 강수량이 예보돼 6시30분 경기 개시 이후 중단될 가능성이 높아 보였다.
경기를 앞두고 최원호 한화 감독은 “이 상태라면 경기에 들어가긴 할 것 같은데…1회부터 번트를 대야 하나”라고 말했다. 5회가 지나면 강우콜드로 정식 경기가 성립되는 만큼 초반부터 최대한 빨리 점수를 내서 리드를 잡아야 한다는 뜻.
염경엽 LG 감독도 같은 말을 했다. 경기 전 휴대폰으로 시시각각 변하는 기상 예보를 살핀 염경엽 감독은 “8시부터 비가 오면 계속 내릴 것 같다”며 “선수들에게 5회 안으로 점수를 내야 하니 1회부터 번트를 댄다는 이야기를 했다”며 웃었다.
그라운드 정비 작업으로 10분 늦게 시작된 경기는 예상대로 ‘우중 야구’가 됐다. 2회까지 꽤 많은 양의 비가 내렸고, 투수들은 스파이크에 뭉친 흙을 털어내느라 애를 먹었다. 관중들은 우산을 쓰거나 우비를 입은 채 빗줄기 속 경기를 관전했다.
강우콜드 게임이 될 가능성이 높자 양 팀 모두 경기 초반부터 짜내기 야구를 했다. 한화는 1-1 동점으로 맞선 2회 무사 2루에서 이진영이 희생번트를 댔다. 이어 계속된 1사 3루에서 한화 이도윤이 초구에 스퀴즈 번트를 댔다. LG 투수 김윤식이 침착하게 앞으로 달려나와 글러브 토스로 공을 홈에 넘겨 3루 주자 닉 윌리엄스의 태그 아웃을 이끌어냈다.
곧 이어진 3회 LG도 스퀴즈 번트로 반격했다. 1-3으로 뒤진 무사 1,3루에서 신민재가 펠릭스 페냐 상대로 초구 헛스윙 이후 2구째에 갑자기 번트를 댔다. 투수 옆으로 굴러간 사이 3루 주자 박해민이 홈인했다. 페냐는 홈 승부를 포기하고 1루로 던져 아웃카운트 하나를 잡는 데 만족해야 했다. 기록은 신민재의 희생번트 1타점.
단기전이 아니고, 당장 순위 싸움이 걸린 승부도 아니었지만 2~3회 경기 초반부터 양 팀 모두 이례적으로 스퀴즈 번트를 주고받았다. 이날 중계를 맡은 양상문 SPOTV 해설위원은 “한국시리즈가 아닌 경기에서 2~3회 스퀴즈는 처음 본다”며 웃었다. 우중 야구가 낳은 진풍경이었다.
LG는 스퀴즈 번트 이후 계속된 1사 2루에서 김현수의 우전 적시타로 3-3 동점을 만들었다. 한화는 4회 무사 1루에서 이진영이 초구에 보내기 번트를 했지만 포수 앞에 뜬 플라이가 돼 공격 흐름이 끊겼다. 그러자 LG는 5회 오스틴 딘의 좌전 적시타로 4-3 리드를 잡았다.
결국 오스틴의 적시타가 결승점이 됐다. 7회 LG 공격을 앞두고 빗줄기가 굵어지면서 경기가 중단됐다. 오후 8시56분 중단 이후 47분을 기다렸지만 비가 그치지 않자 오후 9시43분 강우콜드가 선언됐다.
절묘한 시점에 내린 비가 마무리투수 역할을 하면서 LG는 4-3으로 승리, 3연패를 끊고 1위 자리를 굳건히 지켰다. 경기 후 염경엽 감독은 “비가 와서 점수가 꼭 필요한 상황에서 오스틴이 점수를 내줬다”며 비가 쏟아지기 전에 올린 5회 1득점을 승부처로 꼽았다. /waw@os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