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SEN=백종인 객원기자] 스코어 6-7이다. 밀리는 홈팀의 9회 말 마지막 공격이다. 선두 김재환이 볼넷으로 출루했다. (8일 잠실, 삼성-두산전)
양쪽 벤치가 바빠진다. 지키는 쪽은 초조하다. 더 이상 몸 푸는 투수도 없다. 일단 막아야 한다. 타임을 걸고 맥을 끊는다. 코치(권오준)가 올라간다. 마운드 미팅이다. 별 얘기가 있을 리 없다. 몇 마디 다독인 뒤 회의 끝이다.
상대편 덕아웃도 마찬가지다. 일단 대주자(김태근)까지는 당연하다. 그런데 끝이 아니다. 뭔가 심상치 않다. 두런두런, 수군수군. 이런저런 궁리가 많아 보인다. 그러더니 뜻밖의 결정이 내려진다. 이승엽 감독이 타임을 건다. 대타 기용이다. 양석환을 빼고, 이유찬이다.
물음표가 여러 개 생긴다. 양석환의 타격감이 별로인가? 천만에. 이날 2안타를 쳤다. 타점도 1개 있다. 장타력을 보나, 결정력을 보나. 이유찬으로 교체될 이유는 없다. 있다면 오직 한 가지다. 보내기 번트를 위해서다. 7~9번으로 내려가는 타순인데, 괜찮은 작전인가? 그런 의구심도 든다.
하여튼. 일단은 구상대로 된다. 희생번트 성공으로 1사 2루가 열렸다. 그리고 다음 타자 강승호의 클린 히트가 터진다. 벤치에서도 환호성이 터진다. 동점 적시타다.
여기까지만 해도 작전은 100% 성공이다. 그런데 또 있다. 후속작이 더 대박이다. 계속된 1사 1, 2루에서 박계범이 배트를 힘껏 돌린다. 강렬한 타구가 3루수를 습격했다. 류지혁이 막아내기는 힘겹다. 글러브에 튕긴 공이 뒤로 흐른다. 2루 주자 강승호가 홈을 밟았다. 끝내기 실책, 퇴근 시간이다.
불과 나흘 전(4일)이다. 사직에서 자이언츠를 만났다. 그때도 비슷한 상황이 있다. 베어스가 3-4로 뒤지던 9회였다. 동점 또는 역전의 기회가 찾아왔다. 정수빈 볼넷, 호세 로하스의 우전 안타로 무사 1, 2루를 만든 것이다.
다음 타자는 3번 양석환이다. 이승엽 감독은 소신대로 간다. 중심 타선 아닌가. 타자에게 맡기는 스타일이다. 결과는 삼진. 이어 나온 양의지, 김재호도 무기력하다. 주자 2명은 그 자리에 얼어붙었다. 그대로 경기 종료다.
그러자 ‘만고의 진리’가 등장한다. 결과론이다. 언제나 틀리는 법이 없다. 항상 옳다. 만약 (양석환 타석에서) 보내기 번트를 성공시켰다면. 다음 양의지의 타격은 좌익수 플라이였다. 동점까지는 충분했을 것이다.
다음 날 이 감독은 이렇게 밝혔다. “중심 타자다. 양석환을 믿었다. 2루타 2개를 친 날이다. 번트를 잘 대는 선수도 아니다. 그러니 번트는 없다고 생각했다. (번트를 대기 위해) 대타를 생각하기도 했다. 그러나 그건 아니라고 봤다. 어쨌든 결과가 이렇게 나왔다는 것은 감독 책임이다.”
‘2023 베어스’는 (희생) 번트를 잘 대지 않는 팀이다. 8일까지 114게임에서 43개에 불과하다. 10개 팀 중에 가장 적은 숫자다. 가장 많이 댄 팀은 트윈스다. 80개로 두 배 가깝다. 이런 점은 감독의 색깔과 어울린다. 당대 최고의 타자 출신이다. 믿고 맡기는 스타일로 11연승도 이뤄냈다.
하지만 계절이 바뀌는 건 어쩔 수 없다. 바람이 쌀쌀해진다. 이맘때는 그도 어쩔 수 없다. ‘현실 감독’이 되고 만다. 어제(8일) 경기에서는 스퀴즈 플레이도 감행했다. 1사 2, 3루에서 조수행이 짜내기를 시도했다. 그러나 홈에서 횡사, 득점에 실패했다.
팬들의 반응은 엇갈린다. 우선은 결과에 집중하는 의견이다. 아무리 좋은 작전이면 뭐 하냐. 이겨야 명장이라는 논리다. 반면 아쉬움도 나타난다. 중심 타자를 빼고, 대타를 내세워 번트를 댄다는 게 아무래도 마음에 걸린다는 말이다.
그러나 어쩔 수 없다. 현실을 외면해서는 곤란하다. 프로야구 감독은 개인의 소신만을 위한 자리가 아니다. 수많은 팬들의 염원에 답하는 자리다. 구단 프런트와 스태프, 선수들과 성공과 실패를 함께 나누는 자리다.
이제 겨우 1년 차다. 앞으로 남은 날이 더 많다. 타협이 됐건, 절충이 됐건. 변화는 부끄러운 일이 아니다. 때에 따라서, 상황에 따라서. 수정하고, 보완하고, 변신해야 한다. 그런 유연함이 필요하다. 그게 결국 자신의 야구를 펼치기 위한 디딤돌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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