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이저리그(MLB) 최고 수준의 도루 억제력을 가진 류현진(36·토론토 블루제이스)이 처음으로 한 경기에 도루 3개를 허용했다. MLB 최고 수준의 ‘대도’에게 2~3루 도루를 연이어 내주며 진땀을 뺐지만 무너지진 않았다.
류현진은 지난 7일(이하 한국시간) 오클랜드 애슬레틱스와의 원정경기에 선발등판, 5이닝(1피홈런) 5피안타 1볼넷 5탈삼진 2실점으로 막았다. 최근 6경기 연속 2자책점 이하 투구로 안정감을 이어갔다. 그러나 4회 카를로스 페레즈에게 맞은 투런 홈런 한 방이 아쉬웠다. 토론토 타선이 터지지 않으면서 류현진은 팀의 2-5 패배와 함께 시즌 2패(3승)째를 안았다. 평균자책점은 2.65.
이날 경기에서 눈에 띈 것은 류현진의 도루 허용이었다. 3회 2사 1루에서 닉 앨런이 2루에 들어가 시즌 7경기 32이닝 만에 첫 도루를 내준 류현진은 5회 에스테우리 루이스에게 2~3루를 연거푸 허용했다. 한 경기에만 3개의 도루를 빼앗겼는데 MLB 데뷔 후 10시즌 182경기 만에 처음 겪는 일이었다. 2~3루 연속 도루 허용도 처음이다.
류현진은 MLB에서 최고 수준의 도루 억제력을 갖췄다. 통산 도루 허용이 11개밖에 되지 않는다. 이날 경기 전까지는 10시즌 동안 8개를 허용한 게 전부. 류현진이 빅리그에 데뷔한 2013년부터 최근 11년간 900이닝 이상 던진 투수 96명을 통틀어 도루 허용이 가장 적다.
1루를 바라보며 던지는 좌완 투수로 주자 견제에 어드밴티지가 있지만 슬라이드 스텝이 빨라 도루 타이밍을 쉽게 내주지 않는다. 적절한 견제구로 주자들과 타이밍 싸움을 잘한다는 평가를 받는다. 그런 류현진이 하루에 도루 3개를 내줬으니 낯설지만 리그의 환경 변화를 감안하면 크게 놀랄 일은 아니다.
MLB는 스피드업과 박진감 넘치는 경기를 위해 올해부터 여러 규정에 변화를 줬다. 그 중 하나가 베이스 크기 확대로 홈플레이트 제외한 1,2,3루 베이스가 정사각형 15인치(38.1cm)에서 18인치(45.7cm)로 커졌다. 이에 따라 베이스간 거리도 홈에서 1루, 3루에서 홈 사이는 3인치(7.6cm), 1~2루와 2~3루 사이는 4.5인치(11.4cm) 짧아졌다.
투수의 견제 회수도 한 타석당 2번으로 제한됐고, 3번째로 견제할 때 주자를 잡아내지 못하면 보크로 인정된다. 투수가 투구판에서 발을 떼는 것도 견제 동작으로 간주하면서 주자들에게 절대적으로 유리한 환경으로 바뀌었다. 그 결과 도루 시도(1.36개→1.78개), 도루 성공(경기당 1.02개→1.42개), 도루 성공률(75.4%→80.0%) 모두 전년대비 큰폭으로 상승했다.
류현진 상대로 2~3루 연속 도루한 최초의 선수가 된 루이스는 규정 변경의 수혜자 중 한 명이다. 1999년생 도미니카공화국 출신 우투우타 중견수 루이스는 지난해 7월 샌디에이고 파드리스에서 데뷔한 뒤 얼마 안 지나 트레이드 마감일을 앞두고 밀워키 브루어스로 이적했다. 지난해 더블A(37개), 트리플A(48개) 합쳐 무려 85도루로 폭발적인 도루 능력을 뽐냈지만 빅리그에선 17경기 1도루에 그쳤다. 도루 실패가 2개로 더 많았다.
지난해 12월 다시 트레이드를 통해 오클랜드로 이적했고, MLB에서 첫 풀타임 시즌을 보내고 있다. 113경기 타율 2할4푼9리(401타수 100안타) 3홈런 40타점 16볼넷 90삼진으로 출루율이 3할4리에 불과하다. 타격과 선구안 모두 아쉽지만 아메리칸리그(AL) 도루 1위(58개)로 장기를 살리고 있다. 누상에 나갔다 하면 무조건 뛰는 수준. 도루 성공률도 86.6%로 높다. AL 신인으로는 역대 한 시즌 최다 도루 2위 기록으로 2001년 시애틀 매리너스 스즈키 이치로(56개)를 3위로 밀어냈다. 1992년 클리블랜드 인디언스 케니 로프튼(66개)의 AL 신인 최다 도루 기록을 31년 만에 넘본다.
이날 류현진을 상대로도 리드 폭을 크게 잡으며 여유 있게 2루 도루에 성공하더니 3루 도루로 허를 찔렀다. 5회 2사 2루 라이언 노다 타석 때 토론토 포수 하이네만이 5구째 공을 받은 뒤 투수 류현진에게 다시 공을 전달하자마자 3루로 스타트를 끊어 도루를 성공했다. 하이네만의 다급한 손짓을 보곤 류현진이 공을 받자마자 3루로 던졌지만 늦었다. 기습적인 도루에 류현진도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류현진이 3루를 도루를 허용한 건 LA 다저스 시절이었던 지난 2013년 5월1일 콜로라도 로키스전 덱스터 파울러 이후로 10년 만이자 두 번째였다. 루이스는 3루 도루만 17개로 양대 리그 통틀어 1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