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SEN=백종인 객원기자] 인터뷰 하나가 화제였다. 1위 팀 마무리 투수가 주인공이다. 전날(5일) 큰일을 해낸 이후다. 어려운 1점 차를 지켜냈다. 그것도 아웃을 5개나 잡아낸 세이브였다. 그래서 그의 입에 많은 팬들이 주목했다.
기특한 내용으로 시작된다. 비 때문에 1시간 40여 분이 중단된 경기였다. “먼저 구장 관리 관계자분들이 너무 고생해서 (정비 작업을) 해줘서 너무 감사하다고 얘기하고 싶다. 그라운드 상태가 좀 걱정이 됐는데 생각보다 질지는 않았다. 그래서 더 감사했다.” (고우석)
또 다른 솔깃한 내용도 있다. 염경엽 감독과 면담에서 나눈 얘기다. 주로 피칭 디자인에 대한 것이다. 요약하면 이런 말이다. 감독이나 코칭 스태프는 변화구, 특히 슬라이더 비율이 너무 높다는 걱정을 나타냈다.
그런데 당사자의 생각은 달랐다. 자신감이 대단했다. 이런 요지의 말이다. ▶사실은 슬라이더가 정타를 허용할 위험성이 가장 낮은 구질이다. ▶(부상으로) 빠진 기간이 길다 보니까 감독이 자신의 공을 많이 보지 못한 것 같다. ▶초구부터 끝까지 슬라이더만 던질 생각도 했다.
좋은 쪽으로 해석한다. 투수는 그런 면이 있어야 한다. 자기 공에 확신과 자신감이 없으면 안 된다. 게다가 마무리 아닌가. 그것도 리그에서 손꼽히는 존재감이다. 배짱, 근성, 투지, 오기…. 그런 것들이 빠지면 곤란하다.
다만, 맥락이 중요하다. 굳이 왜 그런 면담이 필요했나. 그 점을 살펴야 한다. 그만큼 안정감이 예전 같지 않다는 말이다. 8월 말부터 2패를 떠안았다. 충격적인 끝내기 홈런도 허용했다. 그리고 어제(6일) 다시 우려가 현실이 됐다. 5아웃 세이브 바로 다음 날이다. 3점차 리드를 날렸다. 뼈 아픈 역전패였다.
불길한 조짐이 있었다. 9회 초 공격 때다. 2사 후 홍창기의 적시타가 터졌다. 1점을 추가했다. 그런데 찜찜한 일이 뒤 따른다. 1루 주자 박해민의 급발진이다. 중계 플레이가 2루로 향하자, 홈까지 노렸다. 하지만 무리였다. 넉넉한 타이밍에 잡히고 말았다. 스리 아웃, 공수 교대다. 상대를 더 압박할 기회가 사라졌다.
이건 의미심장한 복선이었다. 잠시 후 생길 엄청난 사건을 실마리가 된다.
아무튼 3-0이다. 3점 차면 가장 넉넉하다. 세이브 하나를 추가할 기회다. 아니나 다를까. 고우석이 또 등판한다. 그런데 전날과 다르다. 나오자마자 2루타(문상철), 안타(장성우)로 1점을 잃는다. 볼넷(박경수)에 이어 배정대에게도 적시타를 맞았다. 또 한 점을 따라 잡혔다. 3-0은 금세 3-2가 급해진다.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 마운드에는 흔들림이 역력하다. 다시 볼넷으로 1사 만루로 몰린다. 이제 스치면 동점이다. 여기서 멋진 수비가 나온다. 김민혁의 까다로운 타구를 1루수 정주현이 잘 처리했다. 베이스 뒤쪽에서 잡아 홈으로 어려운 송구를 쐈다. 정확한 배송이다. 가까스로 동점 위기를 넘겼다.
계속된 2사 만루에 황재균 타석이다. 카운트 2-2에서 5구째다. 145㎞ 커터가 바깥쪽으로 휘어진다. 배트에 간신히 걸린다. 3루수 정면 타구다. 힘 없이 크게 튀기는 그라운드 볼이다. 원정팀 응원석에서 안도의 한숨이 나오는 찰나다.
아뿔싸. 뜻밖의 상황이 펼쳐진다. 3루수 문보경이 공을 못 잡았다. 글러브에 맞고 뒤로 흐른다. 그러자 3루 주자는 물론이다. 2루 주자까지 넉넉히 홈을 밟는다. 스코어는 2-3에서 4-3으로 뒤집힌다. 승패도 뒤바뀐다. 그대로 퇴근벨이 울린다.
KBO 공식 기록은 끝내기 안타다. 황재균의 2타점짜리 적시타로 장식됐다. 하지만 현장 느낌은 다르다. 충분히 처리할 수 있는 타구라는 분위기다.
당시 KBS N Sports 박용택 해설위원의 중계 멘트다. “지금은 정말 문보경 선수가 너무 마음이 급했죠. 평범한 3루 땅볼이었어요. 하지만 문보경 선수가 캐칭 이전에 벌써 다음 플레이에 대한 생각들이 있다 보니까 이렇게 끝내기 실책이 나오면서….” 아예 실책이라고 못 박는다.
당사자나 나인들도 비슷하다. 문보경은 넋이 나간 표정이다. 글러브를 벗어 놓은 채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오스틴 딘, 김민성 같은 동료들이 가서 다독여 준다.
리플레이 화면을 봐도 그렇다. 점프했지만, 못 잡을 높이는 아니다. 혹은 반걸음 뒤로 물러나도 충분했다. 어쩌면 잡아서 3루를 밟으려고 했는 지 모른다. 2루 주자를 의식하다가 나온 실수일 지 모른다. 하지만 1루 송구로 충분했다. 황재균은 타석에서 겨우 한두걸음 뗐을 뿐이었다.
물론 공식 기록은 다른 문제일 수 있다. 정상적인 동작으로 처리하기 어려운 타구는 대개 실책으로 보지 않는다. 또 ‘애매할 경우는 공격(타자) 측에 유리하게’라는 원칙도 있다. 그렇다고 ‘좋은 게 좋은 것’이라는 식의 해석은 곤란하다. 문제의 상황이 안타로 기록되기에는 찜찜함이 남는다. 실책이라고 판단하는 게 더 냉정하고 적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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