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잔혹한 인턴' 엄지원 "마라톤 같은 21년 연기, 절반쯤 달렸다" [인터뷰](종합)
OSEN 연휘선 기자
발행 2023.08.29 10: 10

요동치는 필모그래피는 없지만 기복도 없이 20년 넘는 배우 생활을 버텼다. 마음의 근력을 키운, 꼿꼿함을 넘어 단단한 배우. '잔혹한 인턴'의 잔혹하지 않은 사람, 엄지원이다. 
엄지원은 28일 오후 서울시 종로구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인터뷰를 진행했다. 그는 이 자리에서 국내 취채진과 티빙 오리지널 드라마 '잔혹한 인턴'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잔혹한 인턴'(극본 박연경, 연출 한상재)은 7년 공백을 깨고 인턴으로 컴백한 고해라(라미란 분)가 성공한 동기 최지원(엄지원 분)에게 은밀하고 잔혹한 제안을 받으면서 겪는 내면의 갈등을 사회생활 만렙 경력의 경험치로 불태우게 되는 이야기다. 지난 11일 티빙 오리지널 드라마로, 21일부터 tvN 드라마로도 공개된 가운데 워킹맘들의 경력단절 문제를 유쾌하게 풀어내며 주목받는 중이다. 
지난해 방송된 tvN 드라마 '작은 아씨들'에 출연했던 엄지원은 해당 작품 촬영 막바지에 '잔혹한 인턴' 초반부 촬영을 병행했다. 평소 촬영조차 겹치는 것은 피해왔던 그는 "워낙 두 캐릭터가 달라서 다행히 몸에 잘 붙고 이입이 됐다"라고 밝혔다. 이어 일부 촬영이 겹치는 것을 감수하면서 출연한 이유에 대해 "동시대의 사람으로 이 사회 구성원으로 살면서 지금 걱정하고 고민하고 있는 것들을 작가님이나 감독님이 드라마로 이야기로 풀어주실 때에 그런 걸 연기로 말할 수 있는 기회가 있다는 것을 좋아한다. 제가 이 사회 구성원으로서, 저는 직장생활을 하지는 않았지만 일을 하고 있는 사람으로서 느끼는 것들이 여러가지 있지 않겠나. 저의 고민과 제 친구들의 고민과 닿아있는 이야기들이 작품 속에 있어서, 그런 지점이 좋았던 것 같다"라고 말했다. 

특히 그는 '잔혹한 인턴'의 심각하지 않은 분위기를 좋아했다. "대변하는 것도 좋은데 심각한 사회물이 아니라 좋았다"는 그는 "우리는 정치인이 아니지 않나. 시청자들이 받아들이기 쉽게 써있는 게 좋았다"라고 강조했다. 작품을 연출한 한상재 감독은 '막돼먹은 영애씨' 시리즈를 연출하며 시트콤처럼 유쾌한 드라마 연출 감각을 익혀온 인물이기도 했다. 
실제 엄지원은 나름의 메시지를 유쾌하게 전달할 수 있는 작품들에 대해 가벼운 마음으로 열려 있었다. 과거 영화 '미씽: 사라진 여자'와 같은 소위 '여성 서사' 작품들에 출연한 것도 "그 시대에 살고 있는 여자 엄지원으로 관심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지금은 많이 변한 것 같다. 이제는 여성서사가 있는 이야기들에 관심이 있다는 것 자체가 오히려 차별적으로 들릴 정도로 지금은 많이 다양해진 것 같다"라는 그는 "쉽게 이야기하면 배우로 살다 죽는 과정에 어떤 사람으로 느끼는 지점이 있지 않겠나. 드라마나 영화 속에서 이야기로 극화가 잘 돼 있을 때 많이 참여하면 좋겠다 느끼는 지점들이 있다. 그런 부분에서의 책임감이 없다면 거짓말이다. 앞으로도 있고 싶다"라고 밝혔다. 절친한 배우 공효진과 환경에 관한 다큐멘터리 '보통의 용기'에 특별출연한 것도 같은 맥락에서 결정한 것이란다. 
그런 엄지원에게 '경력 단절'에 대해 이야기하는 '잔혹한 인턴'은 어떤 공감을 선사했까. 엄지원은 "모든 일하는 사람들의 고민인 것 같다. 저는 임신과 출산을 통해 강제적인 경력 단절은 아니지만 쉬어야 하는 시간을 겪지 않았지만 배우라는 직업 자체도 프리랜서라 언제 내가 불려지지 않으면 일을 못할 수 있다는 걱정이 있다. 일이라는 게 현대인들에게는 자아실현의 도구이기도 하고, 생존의 도구이기도 하기 때문에 나의 생존을 건드리는 것이 끊어진다는 건 굉장히 두려운 순간이다. 그런 것에 대해서 드라마가 이야기하기 때문에 공감했다. 그래서 아마 저 뿐만 아니라 회사원 분들이 공감하시는 것 같다"라고 밝혔다.
또한 그는 "제게는 직장인과 다른 의미로 생각이 있다. 미래의 일이고 현재의 집중하는 스타일이라 일이 있을 때 감사하고 그 일이 있을 때 최선을 다하고 후회 없이 할려고 노력하는 편이다. 매번 작품을 할 때 '어쩌면 이게 언제 다음 작품을 할 지 알 수 없을 때도 있는데 후회없이 해야해'라는 생각은 늘 한다"라며 웃었다. 
2002년 MBC 드라마 '황금마차'로 데뷔한 엄지원은 20년 넘는 시간 동안 이렇다 할 공백기 없이 꾸준히 연기하는 배우다. 문제적인 스캔들도 없었기에 기복 없는 기량을 보여주는 믿고 보는 배우들 중 한 명이다. 그도 '쉬고 싶다'는 생각은 없었을까. 엄지원은 "작품이 없을 때 강제적으로 쉬는 기간들이 있어서 최선을 다해 쉬는 기간이 있다"라며 너스레를 떨었다. 
오히려 그는 "제가 생각보다 어떤 걸 선택하거나 할 때 직관적이고 단순하게 하는 편이다. 물론 열심히 하긴 하지만, 스스로에 대해서도 대단한 평가를 하거나, 자책을 하거나 그런 스타일이 아니다. 그냥, 무던한 편이라고 해야 하나. 그런데 그냥 기본적으로 이 일에 대한 제 연기관, 마인드 자체가 시작할 때부터 마라톤 같은 거라 생각하고 임하고 있기 때문에 그렇다. 한 작품 한 작품이 너무너무 소중한데 크게 일희일비 않으려 한다"라고 했다. 
이어 "어떤 표현이 정확할까 잘 모르겠지만 그냥 걸어가고 있다고 생각한다. 특별한 인생의 나쁜 일이 생기지 않는 한 나이가 많이 들어서 노년까지의 연기를 하면 좋겠다고 생각하고 있기 때문에 조용히 연기를 한다고 생각한다. 거창한 목표가 있다거나 하는 그런 과는 아니다. 현재에 만족을 못할 때도 많지만 너무 감사한 건 다행히 큰 배우로서 슬럼프, 연기적 슬럼프가 아직 오지 않았다. 저 스스로도 다음 작품을 뭐하게 될지 다음 작품을 어떻게 연기를 할지 아직도 기대되고 설레는 마음이 아직 있다. 그런 것에 감사함이 있는 것 같다"라고 힘주어 말했다. 
"내 연기는 아마도 마라톤의 중반에 오지 않았을까. 20km는 뛰었을 것 같다"는 그는 "'어떻게 보이고 싶다'는 생각을 대단히 하면서 연기하고 있지 않다. 그저 좋은 메이커들과 많이 만나고 싶다. 좋은 감독, 좋은 배우, 좋은 제작자, 좋은 스태프들과 많이 만나고 싶다. '좋은'이라는 의미가 너무 넓으니까. 마음이 잘 통하는, 잘 맞는 사람들과 만나면서 일하고 싶다"라고 했다. 또한 "사실 극 중에 최지원처럼 '이렇게까지 독하게 살았다?' 싶을 정도로 독했던 순간은 아직 없었다. 물론 배우를 쭉 하는 게 힘든 순간들이 많기는 많다. 쥐구멍에 들어가서 안 나오는 순간들도 있었지만 독한 기억은 없다"라고 했다. 
담담하게 말했지만 엄지원은 단단한 마음의 근력을 갖고 있었다. 그는 "사람은 누구나 힘든 순간들과 나약해지는 순간들이 있는 것 같다. 그게 드러나게 표현되느냐, 드러나지 않게 표현되느냐. 유난히 멘탈이 센 사람도 있겠지만. 기본적으로 저는 작품의 이력이 요동치던 배우라기 보다 항상 평범한 선 안에 있는 사람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때로는 신앙의 힘이 붙잡아준 기간도 있고. 가족이나 친구들 덕에 견딘 적도 있는 것 같다"라고 담담하게 밝혔다. 
그는 "어떤 일에서 성공, 실패를 논하려면 10년 이상 해보라고 하지 않나. 10년을 버티면 어느 정도의 능력과 굳은 살이 생기는 게 있는데 제가 20년을 했으니까 이 일의 여러가지 부침에 근력이 생긴 것 같다. 제가 감당할 수 없으면 힘들 수도 있겠지만 어느 정도 요동치는 것에 대해서는 그래도 평정심을 잃지 않고 걸어갈 근력을 키웠다"라고 했다. 더불어 "제 단점이자 장점이 기억을 잘 못하는 거다. 그래서 친구들이 저한테 비밀 얘기 많이 하고 입이 무겁다고 한다. 공효진은 '지원언니는 정말 잘 까먹어, 정말 기억을 못해'라고 한다"라며 웃기도 했다. 
"어떤 사람으로 살 것인가에 대해 관심이 많다"는 엄지원은 "몸이 아프면 정신이 약해질 수밖에 없다. 심신이 약해지고 흔들릴 수밖에 없다"라며 운동의 중요성을 강조하기도 했다. 단, 그 안에서도 연기에 대한 믿은은 확고했다. 그는 "영화도 세상을 바꿀 수 있다. 책이나 영화, 문화가 현재를 대변하기도 하고 뭔가를 움직이기도 하고 누군가에겐 인생의 모멘텀을 준다고 생각하고 믿는다. 그런게 있기 때문에 제가 연기를 사랑하면서 좋아하면서 할 수 있는 원동력이기도 하다. 저도 수많은 좋은 작품으로부터 영감을 받기 때문에 제가 배우가 될 수 있었고 배우의 꿈을 믿었기 때문에 지금도 믿는다"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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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티빙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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