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인 감독도 능사가 아니었다. 이제는 성공보다 실패 사례가 더 많다.
래리 서튼 롯데 감독이 지휘봉을 내려놓았다. 롯데는 지난 28일 서튼 감독의 자진 사퇴를 공식 발표했다. 29일 대전 한화전부터 롯데는 이종운 감독대행 체제로 남은 시즌을 소화한다.
올 시즌까지 계약 기간이 남아있던 서튼 감독은 지난 27일 사직 KT전을 앞두고 건강 문제로 결장했는데 경기 후 사퇴 의사를 밝혔다. 구단이 숙고를 했다고 하지만 만 하루도 지나지 않아 이를 수용하면서 중도 하차가 결정됐다. KIA, 한화에 이어 롯데까지 외국인 감독 선임이 실패로 돌아갔다.
표면적 사퇴 이유는 건강상 문제, 결국은 성적 부진이었다
표면적인 사퇴 이유는 건강 문제이지만 결국 성적 부진이다. 지난 2021년 5월11일 퓨처스 감독에서 1군 감독으로 승격된 서튼 감독은 꼴찌였던 팀을 재정비해 5할 승률을 거두며 8위로 마쳤다. 시즌 후 2023년까지 1년 추가 연장 계약을 하며 2022년 시즌을 맞이했지만 8위로 제자리걸음했다.
지난겨울 외부 FA와 즉시 전력 방출 선수들을 대거 영입하며 맞이한 올해, 시작은 무척 좋았다. FA 영입 선수들과 방출 선수들, 신인급 선수들의 활약이 어우러지면서 2008년 이후 15년 만에 9연승을 질주했다. 5월초까지 단독 1위를 달리며 기세를 바짝 올렸지만 봄날은 오래가지 않았다.
6월부터 성적이 고꾸라지기 시작했다. 어느 팀이든 시즌 내내 좋을 순 없지만 롯데는 늘 그랬던 것처럼 오르내림의 폭이 심했고, 떨어지는 것도 급속도였다. 특히 6월말 코칭스태프 항명 논란이 터지면서 서튼 감독의 리더십도 타격을 받았다. 가뜩이나 계약 마지막 해라 ‘레임덕’이 불가피한데 외부에 불화가 노출됐다.
코칭스태프 보직 개편으로 분위기를 수습하고자 했지만 성적 반등으로 이어지진 않았다. 6월(9승16패 .360)보다 7월(5승12패 .294)에 더 못했고, 순위는 점점 내려오더니 7위까지 내려앉았다. 8월에도 기복이 심하긴 마찬가지. 4연승 이후 곧바로 7연패를 당하며 9승13패(.409)에 그치고 있고, 5위 KIA와 격차가 5경기로 더 벌어졌다.
서튼 감독의 스트레스도 극에 달했다. 지난 17일 사직 SSG전에 이어 27일 사직 KT전까지 어지럼증으로 자리를 비웠다. 최근 7연패 기간 서튼 감독이 낙담하는 표정도 자주 보였다. 시즌이 36경기 더 남아있지만 반등의 동력을 찾기 어려운 상황에서 서튼 감독이 물러났다.
수베로, 윌리엄스 감독도 실패…KBO 외국인 감독 환상 깨졌다
서튼 감독 체제에서 롯데는 366경기 167승187패12무(승률 .472)로 이 기간 9위에 머물렀다. 롯데보다 못한 팀은 한화다. 서튼 감독에 앞서 중도 하차한 카를로스 수베로 감독 체제에서 한화는 319경기 106승198패15무(승률 .349)로 부진했다. 2021~2022년 2년 연속 10위에 이어 올해도 9위에 머무른 수베로 감독은 지난 5월11일 대전 삼성전을 마친 뒤 경질됐다.
그 전에 맷 윌리엄스 KIA 감독이 있었다. 메이저리그 스타 선수 출신으로 올해의 감독상까지 받은 화려한 경력자였지만 KBO리그에선 별다른 족적을 남기지 못했다. 2020년 6위, 2021년 9위로 2년 연속 가을야구에 실패했다. 2년간 288경기 128승149패11무(승률 .462)의 초라한 성적을 남긴 채 계약 기간 마지막 1년을 남겨두고 경질 통보를 받았다.
2021년 한때 3명이나 됐던 KBO리그 외국인 감독이 2년 만에 완전히 전멸했다. 구단 최초 외국인 사령탑 영입으로 기대를 모았던 KIA와 한화, 한 번 재미를 봤던 롯데마저 모두 실패하면서 유행처럼 번졌던 외국인 감독 영입도 시들해질 것으로 보인다.
KBO리그에 외국인 감독은 실패한 적이 없는 성공 보증 카드였다. 지난 2008년 롯데에 부임한 제리 로이스터 감독은 공격적인 ‘노피어’ 야구로 ‘8888577’ 암흑기를 끊고 부산에 야구붐을 일으키며 3년 연속 가을야구를 이끌었다. 포스트시즌에서 성과를 내지 못했지만 10년이 더 지난 지금도 롯데팬들의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존재다.
이어 미국 메이저리그, 일본프로야구 감독을 역임한 트레이 힐만 감독이 SK(현 SSG)를 맡아 2017년 5위에 이어 2018년 한국시리즈 우승으로 외국인 감독 성공 신화를 재현했다. 철저한 부상 관리와 데이터를 기반으로 세밀한 야구, 선수들과 수평적인 관계로 리더십을 보이며 무너진 SK 왕조를 재건했다.
외국인 감독 후광 효과 속에 윌리엄스, 수베로, 서튼 감독이 차례로 한국에 왔지만 전부 실패했다. 세 팀 모두 기본적인 전력이 받쳐주지 않는 상황에서 외국인 감독에게 마법을 기대했지만 현실은 달랐다. 구단의 지원이 부족하기도 했고, 감독들의 지도력에도 물음표가 붙었다.
윌리엄스 감독은 특정 선수들에 대한 의존도가 심해 혹사 논란이 이었고, 수베로 감독은 육성 철학은 확고했으나 올드스쿨로 이기는 야구에 서툴렀다. 서튼 감독도 스몰볼을 구사했지만 롯데 선수들의 디테일은 그 정도 수준이 아니었다. 시간이 갈수록 무색무취한 야구로 국내 감독들과 차별화된 모습을 보여주지 못했다. 마지막 남은 서튼 감독마저 중도 하차하면서 오랜 ‘환상’이 깨졌고, 당분간 KBO리그에서 외국인 감독을 보기는 쉽지 않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