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군 데뷔 2년 만에 마무리 자리를 꿰차며 꿈을 이뤘지만 아직 갈 길이 멀다. 볼을 줄이고 구위를 더 끌어올려야 비로소 진정한 클로저가 될 수 있다.
두산 베어스의 새 마무리투수 정철원(24)은 지난 26일 서울 잠실구장에서 열린 SSG 랜더스와의 홈경기에 구원 등판해 ⅔이닝 1피안타 3볼넷 1탈삼진 1실점으로 부진했다.
정철원은 5-6으로 근소하게 뒤진 8회초 2사 1루서 흔들리는 박치국에 이어 등판했다. 1루주자 최지훈의 2루 도루로 득점권 위기에 처했지만 타석에 있던 최주환을 중견수 뜬공으로 잡고 이닝을 마무리 지었다. 추가 실점을 억제하기 위해 지는 상황에서 마무리를 기용한 이승엽 감독의 선택이 적중했다.
여전히 5-6으로 뒤진 9회초에도 마운드에 오른 정철원은 첫 타자 최정에게 우전안타를 맞으며 불안한 출발을 보였다. 후속 박성한을 6구 끝 헛스윙 삼진으로 돌려보냈지만 보크와 김강민, 하재훈의 연속 볼넷으로 자초한 만루 위기서 전의산 상대로 7구 승부 끝 충격의 밀어내기 볼넷을 헌납했다. 경기의 쐐기점을 내준 순간이었다.
정철원은 5-7로 뒤진 9회 1사 만루서 최원준과 교체되며 씁쓸하게 경기를 마쳤다. 투구수는 32개. 다행히 최원준이 후속 최준우를 초구에 병살타로 잡고 이닝을 끝냈지만 이미 상대에게 승기가 넘어간 뒤였다.
2018 두산 2차 2라운드 20순위로 입단한 정철원은 작년 5월 혜성처럼 등장해 셋업맨 한 자리를 꿰찼다. 어떤 상황에서도 150km가 넘는 돌직구를 가운데에 과감히 뿌리며 김태형 전 감독의 신뢰를 얻었고, 이는 데뷔 시즌 최다 홀드(23홀드)라는 대기록으로 이어졌다. 정철원은 이에 힘입어 생애 단 한 번밖에 받을 수 없는 신인왕을 차지했고, 2023 WBC(월드베이스볼클래식)에서 생애 첫 태극마크까지 달았다.
정철원은 1군 2년차를 맞아 작년과 마찬가지로 셋업맨 역할을 수행했다. 하지만 최근 마무리 홍건희가 접전 상황에서 여러 차례 흔들리는 모습을 보였고, 이승엽 감독은 장고 끝 지난 15일 마무리투수를 홍건희에게 정철원으로 전격 교체했다. 정철원은 작년 시즌부터 “언젠가 두산의 마무리투수가 되겠다”라는 목표를 밝혔는데 데뷔 2년차에 그 꿈이 이뤄졌다.
정철원은 마무리 보직을 맡고 이틀 뒤인 17일 잠실 KT전에 구원 등판해 ⅔이닝 1실점으로 흔들렸다. 다만 당시는 세이브 상황이 아니었다. 5-8로 뒤진 9회 1사 주자 없는 가운데 추격조 임무를 맡아 배정대의 2루타에 이은 김준태의 1타점 적시타로 1점을 헌납했다. 8일 잠실 삼성전 이후 9일 만에 등판해 실전 감각을 조율했다.
정철원은 공식 마무리 데뷔전이었던 19일 잠실 NC전에서 1⅔이닝 1탈삼진 무실점 세이브로 두산 뉴 클로저의 탄생을 알렸다. 그러나 문제는 잦은 기복이었다. 24일 고척 키움전에서도 세이브를 신고했지만 1⅓이닝 동안 4피안타 1볼넷 1실점을 헌납했고, 전날 경기서도 1피안타 3볼넷 1실점 난조를 보이며 벤치와 팬들에게 신뢰를 안기지 못했다.
정철원의 마무리 전환 후 평균자책점은 6.23(4⅓이닝 3자책). 4⅓이닝 동안 삼진 5개를 잡았지만 볼넷 4개를 허용했고, 투구수가 101개로 적은 편이 아니었다. .421의 피안타율 또한 마무리라는 보직과 어울리지 않는 수치다. 정철원은 최근 현장에서 "셋업맨과 마무리 보직의 큰 차이가 없다"고 말했지만 확실히 마무리를 맡은 뒤로 부담을 느끼는 모습이 보인다.
사령탑은 그런 정철원을 향해 쓴소리를 쏟아냈다. 이승엽 감독은 “마무리는 팀에서 가장 중요한 보직이다. 점수 차가 어떻든 나가면 무조건 무실점으로 막는다는 생각을 가져야 한다”라며 “본인 스스로 알아서 몸을 풀고 잘 던질 필요가 있다. 우리가 어떻게 해줄 수가 없다. 그래서 프로인 것이다. 본인이 프로 의식을 갖고 해야 한다”라고 힘줘 말했다.
그래도 고무적인 건 정철원은 두산 불펜 요원 가운데 가장 강한 멘탈을 보유하고 있다. 지난해 괜히 신인왕을 수상한 게 아니며, 1군 데뷔 1년 만에 국가대표에 뽑힌 것 또한 다 이유가 있다. 정철원은 WBC에서도 담대함을 높이 평가받으며 이강철호의 ‘애니콜’로 활약했다. 이승엽 감독 또한 정철원의 멘탈을 높이 사며 시즌 도중 마무리 전환이라는 큰 결단을 내렸다.
그러나 마무리 보직은 지금보다 더 강한 정신력과 책임감이 요구된다. 이 감독은 “볼이 많아지면 불안해진다. 주자가 쌓이면 상황이 어떻게 변할지 모른다. 요즘 야구의 3점 차는 원 찬스다. 언제든지 스코어가 뒤바뀔 수 있다”라며 “정철원이 안정감을 주려면 조금 더 공격적인 투구가 필요하다. 마무리가 됐으니 본인이 원래 갖고 있는 자신감을 마운드에서 쏟아 부었으면 좋겠다. 강한 마음을 갖길 바란다”라는 조언을 건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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