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종범, 홍세완, 김선빈의 뒤를 잇는 타이거즈 유격수 골든글러버가 탄생하는 것일까. KIA 박찬호(28)가 연일 맹타를 휘두르며 역사에 한걸음씩 다가가고 있다.
박찬호는 지난 24일 수원KT위즈파크에서 열린 2023 신한은행 SOL KBO리그 KT와의 시즌 9차전에 2번 유격수로 선발 출전해 4타수 2안타 2타점 1볼넷 3득점 맹활약하며 팀의 7-3 역전승을 이끌었다.
1회 유격수 땅볼, 3회 2루수 땅볼로 몸을 푼 박찬호는 1-2로 뒤진 6회 1사 후 내야안타에 이은 2루수 이호연의 1루 송구 실책으로 2루에 도달했다. 이후 나성범의 우전안타 때 3루를 거쳐 홈을 밟으며 동점 득점을 책임졌다.
2-3으로 끌려가던 8회 또한 박찬호의 출루가 득점으로 이어졌다. 1사 주자 없는 가운데 볼넷을 골라낸 뒤 2루 도루에 성공했고, 최형우의 우전안타가 터지며 이번에도 3루를 돌아 홈에 도착했다. 벼랑 끝에 몰린 팀을 구해낸 득점이었다.
백미는 마지막 타석이었다. 3-3으로 맞선 9회 2사 만루서 등장, 8월 평균자책점 0의 KT 마무리 김재윤을 상대로 2타점 역전 적시타를 때려낸 것. 1B-2S의 불리한 카운트에서 볼을 골라낸 뒤 6구째 포크볼을 공략해 결승타를 신고했다. 박찬호는 후속 나성범의 쐐기 2타점 3루타 때 다시 한 번 홈을 밟았다.
경기 후 만난 박찬호는 “이범호 코치님께서 여기까지 왔는데 못 치면 죽는다고 하셨다. (김재윤의) 코스, 투구 패턴, 공략법을 설명해주셨다”라며 “생각보다 직구 구위가 좋아 변화구를 던져줬으면 했는데 마침 들어온 변화구가 몰려서 운 좋게 안타로 이어졌다. 솔직히 타석에 들어서기 전에 자신감이 있었다. 이상하게 안타가 나올 것 같았다”라고 결승타 상황을 되돌아봤다.
공격과 달리 수비에서는 지옥과 천당을 오갔다. 5회 1사 후 김준태의 타구를 놓쳐 만루 위기 빌미를 제공했지만 8회 2사 3루 위기에서는 3루수 김도영이 포구에 실패한 장성우의 타구를 잡아 재빠르게 1루에 송구하며 이닝을 종료시켰다.
박찬호는 “(김)도영이가 별말을 안 하더라. 나 같으며 엎드려 절을 할 텐데 도영이는 그런 맛이 없다”라고 농담하며 “서로 최선을 다한 플레이였다. 누구나 실수할 수 있고 누군가가 그 실수를 만회해주면 좋은 것이다. 여러 모로 우리가 이기려고 그렇게 됐던 것 같다”라고 말했다.
4월만 해도 타율 1할8푼1리의 부진을 겪었던 박찬호는 101경기 타율 2할9푼8리 2홈런 39타점 21도루 OPS .725를 치는 리그 정상급 유격수로 발돋움했다. 현재 10개 구단 유격수 가운데 가장 타율이 높은 선수는 박찬호다. 최근 10경기 타율이 4할2푼5리에 달할 정도로 감이 좋은 상태다.
비결을 묻자 박찬호는 “노련하게 대처를 한다. 또 성숙하게 타석에 들어선다. 타석에서 어떻게 풀어나갈지, 어떤 투수, 어떤 코스, 어떤 구종을 노려야할지 고민한다. 무턱대고 치고 박던 시절에 비하면 많이 성숙해졌다”라며 “4월에 부진했지만 손목만 괜찮으면 잘할 수 있을 것이란 확신이 있었다”라고 답했다.
이어 “득점권은 더 자신 있다. 내 뒤의 타자들이 항상 좋아서 오히려 편하다”라며 “1번을 치든 2번을 치든 9번을 치든 늘 내 뒤에 나오는 타자들은 나보다 잘 친다. 그렇기 때문에 투수들이 득점권에서 나와 승부하려고 한다. 그래서 볼 배합이 편해진다”라고 덧붙였다. 박찬호의 시즌 득점권 타율은 3할4푼1리로 상당히 높다.
박찬호의 남은 시즌 목표는 9월과 10월에도 8월의 감을 그대로 유지하는 것이다. 지난해의 경우 8월까지 타율 2할9푼을 유지했지만 9월 월간 타율 2할9리, 10월 1할9푼의 부진으로 시즌 최종 타율이 2할7푼2리까지 떨어졌다.
박찬호는 “작년에도 8월까지는 잘했다. 그런데 9, 10월에 떨어졌다”라며 “올해도 한 번 지켜봐야 한다. 9, 10월을 어떻게 버티는지 보면 나의 성장 여부를 알 수 있다. 다만 준비는 늘 열심히 한다. 좋은 결과가 있기를 바랄뿐이다”라고 말했다.
지금의 흐름을 유지한다면 2023 KBO 유격수 부문 골든글러브는 박찬호의 차지가 될 가능성이 높다. 이종범(1993, 1994, 1996, 1997), 홍세완(2003), 김선빈(2017)에 이어 6년 만에 타이거즈에서 유격수 황금장갑의 주인공이 탄생될지 벌써부터 이목이 쏠리고 있다.
박찬호는 “솔직히 지금은 시기상조다. 남은 두 달 동안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모른다. 9, 10월에 4월처럼 1할을 칠 수도 있는 것이다”라고 신중한 태도를 보이며 “다만 나도 사람인지라 내심 기대는 한다. 그런데 겉으로 드러내지 않고, 오로지 팀 승리에만 집중할 것이다. 성적을 위해 꾀도 부리지 않겠다. 하던 대로 하겠다”라고 남은 시즌 남다른 각오를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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