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꿈치 인대 파열로 남은 시즌 투수로 등판이 끝났지만 오타니 쇼헤이(29·LA 에인절스)의 마음은 꺾이지 않았다.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타자로 출장을 강행했고, 경기 중 미소까지 지어보였다. 차원이 다른 멘탈에 단장은 감동을 받았다.
오타니는 24일(이하 한국시간) 미국 캘리포니아주 애너하임 에인절스타디움에서 열린 2023 메이저리그 신시내티 레즈와의 더블헤더 1차전에 선발등판, 1⅓이닝 무안타 1볼넷 2탈삼진 무실점으로 막던 중 투구수 26개에 강판됐다. 지난 10일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전 이후 투수로 14일을 쉬고 나섰지만 정상이 아니었다.
1회를 탈삼진 2개 포함 삼자범퇴로 깔끔하게 막은 오타니는 2회 선두 스펜서 스티어에게 볼넷을 내준 뒤 조이 보토를 유격수 뜬공 처리했다. 계속된 1사 1루에서 크리스티안 엔카나시온-스트랜드 타석에 5구째 공을 던진 뒤 오타니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덕아웃에 사인을 보낸 뒤 팔꿈치 통증을 호소했고, 스스로 마운드를 내려갔다.
포심 패스트볼 평균 구속이 93.1마일(149.8km)로 시즌 평균보다 3.8마일(6.1km)이나 낮을 만큼 평소 같지 않았다. 2번 지명타자로 나선 1회 첫 타석에서 투런포로 시즌 44호 홈런을 기록한 오타니였지만 정상적으로 공을 던질 팔꿈치 상태가 아니었다. 타일러 앤더슨에게 마운드를 넘기고 내려간 오타니의 상태는 예상보다 더 심각했다.
팔꿈치 인대 손상 발견, 투수로 시즌 끝…두 번째 토미 존 수술 유력
MLB.com 등 현지 언론에 따르면 당초 에인절스 구단은 오타니 교체 사유를 ‘팔의 피로 증세’라고 밝혔지만 더블헤더 1~2차전 사이에 MRI(자기공명영상) 검사를 받은 결과 오른쪽 팔꿈치 내측측부인대(UCL) 손상이 발견됐다. 주사를 맞으며 재활로 버티는 방법도 있지만 UCL 파열 투수 대부분이 토미 존 수술을 받는다.
페리 미나시안 에인절스 단장은 “올 시즌 오타니는 더 이상 투구를 하지 않는다. 2차 소견을 듣고 판단하겠지만 지금은 하루하루 상태를 봐야 하는 상황이다. 앞으로 더 많은 정보를 얻게 될 것이다”며 “수술 여부도 아직 모른다. MRI를 찍고 나서 짧게 논의한 상황으로 오타니 에이전트와도 이야기를 해봐야 한다”고 밝혔다.
오타니가 UCL 파열 부상을 당한 것은 두 번째로 지난 2018년 에인절스 입단 첫 해 같은 부상이 있었다. 그해 6월9일 부상자 명단에 오르면서 투구를 접고 타자로만 뛴 오타니는 시즌을 마친 뒤 10월에 토미 존 수술을 받았다. 2019년에는 투수로 나서지 않고 타자로만 출장했고, 1년10개월이 지난 2020년 7월 투수로 돌아왔다.
그러나 복귀 2경기 만에 오른팔 굴곡근, 회내근 염좌로 투수로서 시즌이 끝났다. 투수를 포기해야 한다는 의견에 힘이 실렸지만 투타겸업을 계속한 오타니는 2021년 23경기(130⅓이닝) 9승2패 평균자책점 3.18 탈삼진 156개로 활약하며 투수로서 경쟁력을 보여줬다. 타자로도 46홈런을 터뜨리며 아메리칸리그(AL) 만장일치 MVP로 투타겸업의 새 역사를 썼다.
지난해 28경기(166이닝) 15승9패 평균자책점 2.33 탈삼진 219개로 투수로 한 단계 업그레이드된 모습을 보였다. 아메리칸리그(AL) 사이영상 4위에 이름을 올린 오타니는 올해도 23경기(132이닝) 10승5패 평균자책점 3.14 탈삼진 167개로 위력을 떨쳤다. 2년 연속 두 자릿수 승수를 거두며 AL 사이영상 후보 중 한 명으로 거론됐지만 팔꿈치 부상으로 레이스에서 아쉽게 이탈하고 말았다.
오타니는 지난주 피로 증세로 텍사스 레인저스 원정경기 등판을 건너뛰었다. 이때부터 몸 상태에 이상을 보였지만 미나시안 단장은 “오늘 전까지 오타니는 팔꿈치에 아무런 이상을 호소하지 않았다. 오른손 중지 물집과 탈수 상태에서 경련만 다뤘지, 팔꿈치에 대해선 아무런 말이 없었다. 오늘 처음으로 교체 후에 팔꿈치 통증에 대해 말했다”며 오타니의 팔꿈치 부상을 미처 예상하지 못했다고 털어놓았다.
“FA 앞두고 최악의 타이밍에 부상” 그런데 오타니는 웃었다, 단장도 감동
MLB.com은 ‘이번 부상은 시즌 후 FA가 될 예정으로 메이저리그 역사상 최대 규모의 계약을 앞두고 있는 오타니에게 최악의 시점에 찾아왔다. 첫 번째 수술보다 성공률이 훨씬 낮은 두 번째 토미 존 수술을 받아야 한다면 2024년 마운드에 오르지 못할 것이다. 그보다 더 오래 걸릴 수도 있는데 이는 오타니의 가치를 떨어뜨릴 것이다’며 투타겸업이 아닌 오타니의 시장 가치 하락을 전망했다.
ESPN도 ‘야구 역사상 가장 큰 FA로 기대를 모았던 오타니에게 충격적인 반전이 아닐 수 없다’며 ‘2018년 10월에 이어 또 다시 토미 존 수술을 받는다면 2024년 내내 마운드에 오르지 못할 수 있다. 많은 사람들이 5억 달러 이상 계약을 기대하는 오타니 FA 쟁탈전에 있어 상당한 영향을 미칠 것이다’고 설명했다.
미나시안 단장은 “실망스럽고 안타까운 일이지만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오타니라면 부상에서 완전히 회복해 다시 일어설 수 있다. 그에게선 그 어떤 한계도 둘 수 없다. 난 그가 다시 돌아와서 이전 같은 능력을 보여줄 수 있을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오타니의 남다른 멘탈과 의지력이라면 충분히 극복하고도 남을 수 있을 것이라는 믿음을 갖게 한다.
이날 더블헤더 1차전을 마친 뒤 팔꿈치 부상의 심각성을 확인했지만 오타니는 “오늘 밤(더블헤더 2차전) 뛰어도 되나? 오늘 밤도 뛰고 싶다”며 경기 출장 의지를 불태웠다. 실제 2차전도 2번 지명타자로 나선 오타니는 5타수 1안타 1득점을 기록했다. 특히 5회 우측 2루타를 치고 나간 뒤 투수 교체 때 신시내티 유격수 엘리 데 라 크루즈와 이야기를 나누며 활짝 웃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투수로 시즌이 끝나면서 FA 시장 가치도 크게 떨어질 수 있는 상황. 하지만 오타니는 평소처럼 타자로 경기에 계속 뛰면서 미소를 잃지 않았다. 미나시안 단장은 “이런 상황에서 다르게 반응하는 선수들을 많이 봤지만 오타니는 프로다웠다. 마음이 흔들리지 않았고, 2차전 경기도 뛰고 싶다고 했다. 오타니가 얼마나 야구를 좋아하는지, 그리고 팀 동료들과 이곳을 얼마나 중요하게 생각하는지 보여줬다고 생각한다. 정말 인상적이었다. 오타니는 정신적으로 강하다. 그래서 그와 같은 일을 할 수 있는 것이다”고 치켜세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