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감독의 사인을 무시(?)하고 마구 뛴다. 그런데 감독은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팀이 긍정적으로 변화하는 모습이기 때문이다.
염경엽 LG 감독은 20일 인천 SSG랜더스필드에서 경기를 앞두고 “경기 중에 깜짝깜짝 놀란다. 선수들이 막 뛴다”고 웃으면서 말했다. 전날(19일) SSG전에서 벤치에서 보내기 번트 작전을 냈는데, 주자들이 번트 작전에 아랑곳하지 않고 오히려 도루를 시도한 것을 언급했다.
0-1로 뒤진 3회 박해민의 볼넷, 홍창기의 안타로 무사 1,2루가 됐다. 신민재 타석에서 보내기 번트 수순이었다. 김광현의 초구, 그런데 2루 주자 박해민이 도루 스타트를 끊어 3루로 뛰었다.
신민재는 스트라이크가 들어오자 번트를 대지 않고 일부러 번트 헛스윙을 했다. 페이크 번트. 포수 이재원이 3루로 송구했으나 세이프. 1루 주자 홍창기도 2루로 뛰어 무사 2,3루가 됐다.
신민재는 전날 경기 후 “번트 사인이 나왔는데, 해민이 형이 뛰는 것이 보여서 일부러 번트를 대지 않았다”고 말했다.
염 감독은 20일 “캠프 때 훈련은 했다. 번트 작전이 나왔는데도 주자가 도루로 뛰면 스트라이크는 페이크 번트를 하고, 볼이 오면 배트를 빼는 훈련을 했다”고 설명했다. 신민재가 캠프 훈련 대로 번트를 대지 않고 매뉴얼 대로 했다.
벤치의 보내기 번트 작전과는 별개로 누상에서 주자들이 과감하게 도루를 시도한 것. 결과적으로 희생 번트로 1사 2,3루가 아닌 무사 2,3루가 됐고, 이후 신민재의 2타점 2루타 등 연속 안타가 이어지며 5점 빅이닝을 만들었다.
염 감독의 매뉴얼, 박해민의 과감성, 신민재의 작전 수행 능력 등이 톱니바퀴처럼 돌아간 결과였다. 염 감독은 "무사 1,2루에서 박해민이 도루를 하는 것도, 웬만한 과감성 갖고는 뛰기 힘들다. 감독 입장에서도 거기서 도루 사인 내기는 부담스럽다"고 번트 사인을 무시(?)하고 뛴 박해민의 도루를 대견해 했다.
(김원형 SSG 감독은 도루가 아닌 번트를 댔더라면, 김광현이 5점까지는 안 주고 2~3점으로 막아내지 않았을까 아쉬워했다)
그런데 그렇게 벤치 사인에 따르지 않고 뛰다가 아웃되면? 염 감독은 "아웃되면 어차피 책임이야 감독이 지는 거다. 이게 굉장히 긍정적이라고 생각을 한다. 해민이도 뛰고, 창기도 뛰다가 아웃됐지만 2번 다 번트 작전이었다"며 "선수들이 정말로 많이 변했다"고 말했다.
홍창기는 7회 선두타자 볼넷으로 출루한 뒤, 신민재 타석에서 초구에 2루 도루를 시도했는데 아웃됐다. 이 때도 신민재에게 보내기 번트 작전을 냈는데, 홍창기가 과감하게 도루를 시도한 것이다.
염 감독은 선수들의 이런 적극적인 모습을 반겼다. 그는 "첫 번째로 팀을 공격적인 야구를 하고 싶었다. 작년에는 아무것도 안 했지만, 이제 자기들이 뭔가 성공할 수 있고, 야구는 선수들이 풀어가야지 가장 편안한 거다. 선수들이 상대의 어떤 약점을 잡았을 때 풀려고 노력한다. 타석에서도 마찬가지고 공격에서도 마찬가지고 수비에서도 마찬가지다. 빠지는 타구에 슬라이딩을 하고, 3볼에서도 공격적으로 치면서도 출루율이 좋아졌다. 그래야 신바람 야구를 할 수 있고, 재밌는 야구를 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선수들에게 첫 번째로 강조를 했던 게 정말 빠른 시간 안에 과감할 정도로 선수들 경기를 하고 있다"고 흡족한 표정으로 말했다.
아웃이 되더라도 선수에게 잘잘못을 지적하진 않는다. 염 감독은 "거기서 뛰면 안 되는데 왜 뛰어서 죽었냐라고 얘기하는 순간 선수들은 소극적으로 바뀌게 된다. 선수들이 굉장히 공격적이고 활발한 야구를 하고 있다. 이게 LG가 앞으로 가야 될 방향이다. 올 시즌 1년 내내 뛸거다"라고 말했다.
이어 "앞으로 번트 작전을 확실하게 할 때는 주자들에게 도루를 뛰지 말라는 사인을 줘야겠다"고 웃으며 말했다.
LG는 팀 도루 124개로 압도적인 1위다. 그러나 도루 실패도 73개로 1위다. 도루 실패 2위 롯데가 35개인데, 2배가 넘는다. 성공률 62.8%다. 주로 도루 타이밍을 엿보다가 당한 견제사 12개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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