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단추를 끼우기까지 오래 걸려서 부모님께 죄송한 마음과 함께 복합적인 감정이 든다.”
롯데는 17일 사직 SSG전에서 타선이 대폭발하면서 15-4로 대승을 거뒀다. 6,7회 추가점 기회를 놓치고 8회초 2점을 추격 당했다. 그러나 8회말에만 9안타 1볼넷으로 9득점에 성공하며 백기투항을 받아냈다. 올해 팀 최다안타, 최다득점 경기였다.
8회말이 끝나면서 경기는 사실상 종료된 것이나 다름이 없었다. 롯데는 마무리 김원중이 몸을 풀었지만 격차가 벌어지면서 휴식을 줄 수 있게 됐고, 이 자리에 들어선 선수는 김원중만큼 키가 크지만 낯선 실루엣의 투수가 마운드에 올랐다.
등번호 14번의 좌완 투수 김태욱(25)이었다. 김태욱은 9회 마운드에 올라와 조형우를 우익수 뜬공, 김민식을 우익수 뜬공, 그리고 최주환도 좌익수 뜬공으로 처리했다. 17개의 공을 던지면서 경기를 깔끔하게 매듭지었다.
사직구장은 이미 대승과 시리즈 스윕을 자축하는 분위기였다. 김태욱이 책임진 9회초는 아무도 뇌리에 남아있지 않을 수 있었다. 하지만 김태욱 만큼은 다르다. 김태욱만큼은 기쁨을 만끽하면서도 복잡하고 미묘한 감정에 휩싸일 수밖에 없었다. 김태욱은 이날 감격의 1군 데뷔전을 치렀고 무사히 경기를 마무리 지었다.
굴곡이 많은 선수였다. 북일고 출신으로 187cm 88kg의 체구를 갖춘 좌완 투수인 김태욱은 2017년 한화의 1차지명 선수로 입단했다. 그만큼 각광을 받은 유망주였다. 그러나 기대를 받은 것만큼 보여주지 못했다. 즉시전력감은 아니었지만 좌완이라는 특성에 키워볼만한 자원으로 평가 받았다.
프로 첫 해 2군에서 잠재력을 가다듬었다. 24경기 중 17경기 선발 등판했고 2승10패1홀드 평균자책점 6.38을 기록했다. 이듬해 2018년에도 2군에만 머무르며 선발 5경기 포함 17경기에서 1승3패1홀드 평균자책점 6.42. 눈에 띄는 성적을 내지 못한 채 군 입대했다. 2020년 5월에 제대한 김태욱은 육성선수로 전환이 됐고 다시 기회를 받지 못했다. 그리고 자신의 운명을 바꿔보기 위해 김태욱으로 개명까지 했다. 개명 전 이름은 김병현이었다.
동명이인의 야구 선배가 워낙 뛰어났기에 개명 전 김병현은 늘 가려질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김태욱으로 개명한 뒤에도 커리어는 풀리지 않았다. 성장은 더뎠고 부상도 찾아왔다. 결국 2021년 시즌이 끝나고 방출통보를 받았다. 1군에서 한 번도 등판하지 못했다.
현역 연장의 꿈을 포기하지 않았다. 개인 훈련을 하면서 담금질을 했다. 그리고 2022년 5월, 한화에서 다시 테스트를 받았다. 140km 초반대의 구속을 최고 147km까지 끌어올리면서 다시 한화 유니폼을 입었다. 방황은 이렇게 다시 끝나는 듯 했지만 2022년 2군에서 10경기 1승 1홀드 평균자책점 6.23(17⅓이닝 12자책점)을 기록했다. 여전히 특출나지 않은 기록.
김태욱은 올해 롯데 유니폼을 입고 2군에서 22경기 2승3패 4홀드 평균자책점 3.66(39⅓이닝 16자책점)의 성적을 남겼다. 올해 잠시나마 1군에 올라와 1군 타자들을 앞에 두고 라이브배팅을 도와주기도 했다. 1군 정식 등록은 지난 13일이었다. 다만 출장 기회가 없었다. 매 경기 접전 끝에 승리하면서 김태욱을 투입할 기회가 만들어지지 않았다. 그러다 이날 드디어 1군 데뷔전 기회가 찾아왔고 이 기회에서 무실점으로 마쳤다. 1루수 정훈은 마지막 아웃카운트를 잡은 공을 김태욱에게 건넸다. 데뷔전 기념구를 챙길 수 있게 됐다.
7년 만에 치른 1군 데뷔전이기에 감격하면서도 울컥이는 감정을 숨길 수 없었다. 시련이 컸고 암흑의 터널이 길었기에 감정이 북받칠 수밖에 없었다. 김태욱은 “첫 단추를 끼우기까지 오래 걸려서 부모님께 죄송한 마음과 함께 복합적인 감정이 든다”라면서 그동안 자신을 뒷바라지 해온 부모님의 이름을 먼저 꺼냈다.
이어 “마운드에서 내려오니 이전에 준비했던 과정들도 스쳐 지나가는 것 같다”라며 데뷔전의 순간들을 되돌아봤고 “오늘을 계기로 굳게 마음먹고 또 기회를 받는 그 날까지 더 열심히 노력하겠다”라고 강조했다.
롯데 선수단 모두가 한마음으로 김태욱의 데뷔전을 축하했다. 새로운 팀에 왔지만 그가 어떤 길을 걸어왔는지 알고 있기에 진심을 전했다. 그는 “선배님들과 동생들이 마운드에서 내려올 때 축하를 많이 해줬다. 감사한 마음 잊지 않고 팀에 필요한 선수가 될 수 있도록 하겠다”라고 더 많은 경기에서 도움이 되겠다고 굳게 다짐했다. /jhrae@os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