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파조 같지만, ‘오늘도 걷는다마는 정처 없는 이 발길’이다. 안타깝고 안쓰럽다. 리그 최하위 키움 히어로즈를 보노라면, 그런 마음이 절로 든다. 키움 구단의 감독은 마치 ‘시지프스의 운명’을 짊어지고 형벌을 받는 것과 마찬가지인 신세다.
키움은 시즌이 한창인 7월 29일, 팀 마운드 주축인 10승대 투수(최원태)를 ‘잘나가는 LG 트윈스’에 내주고 ‘불확실한 미래’를 선택했다. 외형적으로는 전혀 이상할 게 없는 ‘거래’였다. 아직 검증이 제대로 되지는 않았으나 미래를 그려볼 수 있는 자원(22살 내야수 이주형+19살 새내기 투수 김동규)을 확보하고, 게다가 2024년 신인드래프트 1라운드 지명권까지 얹어 받았다.
고형욱 키움 단장은 트레이드에 즈음해 보도자료를 통해 “우리 구단은 2022시즌이 끝난 후 정상 정복을 위해 나름대로 전력 강화를 준비했지만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 시즌 중반을 넘어선 가운데 조금 더 냉정을 찾고 구단의 현재 전력상 약한 부분 보강과 미래 전력 강화를 심각하게 고민한 끝에 이번 트레이드를 결정했다”고 그 배경을 밝혔다.
뭉뚱그리자면, 올해 농사는 접었다는 뜻이다. 핵심타자인 이정후의 부상도 영향을 미치긴 했겠으나 일찌감치 시즌을 포기한다는 것은, 리그 흥행에도 악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다른 구단의 한 관계자는 키움의 트레이드에 대해 ‘팀 간 전력 불균형의 심화’를 지적했다. 1위 LG와 23게임 차 최하위로 처져있는 키움이 이렇게 시즌을 놓아버리면 그만큼 경기의 밀도나 흥미가 자연스레 떨어지게 된다는 얘기다.
시름에 겨운 키움은 8월 13일 잠실 LG전에 이적해온 김동규를 경험도 쌓게 할 겸 시험 삼아 선발로 내세웠으나 2이닝 동안 5자책점으로 난타당했다. 키움은 이 경기에서 주전 포수 이지영마저 담 증세로 결장, 지리멸렬한 경기로 홈스틸 포함 무려 5개의 도루를 허용한 끝에 8-17로 졌다. 승패는 그렇다손 치더라도 이 경기는, 앞으로 키움이 지난(至難)한 팀 재건 과정을 또 거쳐야 한다는 암울한 전망을 던지게 만든다. 지난해 같은 끈적끈적한 팀 색깔을 되찾기에는 너무 멀고 험한 길이 가로 놓여 있다. 이렇게 팀을 내몰면, ‘제갈량 할아버지’가 와도 속수무책이겠다.
트레이드라는 게 당장 이해득실을 따지는 것은 사실 별 의미는 없다. 그렇다고 현장의 힘을 느닷없이 쑥 빼버려 전력을 헝클어버리는 이런 식의 트레이드를 주변에서 선뜻 이해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키움 구단의 운영 방침에 시비를 걸고 싶지는 않지만, 도저히 상식적인 판단이라고 여길 수 없는, 자못 파격적인 트레이드였던 것은 분명하다.
고형욱 단장이 “지난 8년 동안 팀을 위해 최선을 다해준 최원태에게 고맙다고 말하고 싶다. 새로운 팀에서도 좋은 활약 이어 나가길 바란다”고 트레이드 보도자료의 뒷부분에 사족처럼 달아놓은 언급은, 덕담으로 치부하기에는 너무 애잔할 정도였다.
키움 히어로즈는 2008년 창단 이후 ‘자립형 구단’으로 팀 존립을 놓고 경영권 분쟁, 뒷돈 트레이드 등으로 그동안 숱한 풍파를 겪었고, 용케 고비와 파도를 넘어 오늘에 이르렀다. ‘투쟁’의 소용돌이로 점철된 사반세기 동안, 키움은 세 차례(2014, 2019, 2022년)나 한국시리즈에 올랐으나 끝내 우승 고지에는 한발 못 미쳤다. 후발 주자인 NC 다이노스(2020년)와 KT 위즈(2021년)도 정상에 한 차례씩 섰는데, ‘곶감 빼주기 식’ 이었던 키움은 현존하는 10개 구단 가운데 유일하게 우승 경험이 없다.
기껏 선수를 힘들게 키워서 남 좋은 일만 시켜주는(?), ‘선수 공급망’ 노릇에 만족한다면-그럴 리는 없겠지만-그 구단의 미래는 없다.
다시 묻고 싶다. 키움 히어로즈 구단의 ‘존재의 이유’는 무엇인가.
글. 홍윤표 OSEN 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