롯데 자이언츠는 필승조에 속한 투수들과 필승조가 아닌 투수들 사이의 격차가 꽤 큰 편이다. 마무리 김원중, 셋업맨 구승민 최준용으로 구성된 필승조 라인업은 10개 구단 어느 팀과 견줘도 뒤떨어지지 않는다. 필승조 라인업이 매년 바뀌는 구단들이 많은데 롯데는 이 필승조 라인이 안정적으로 운영됐다.
그러나 문제는 필승조 외의 투수들이었다. 필승조를 뒷받침할 만한 투수들을 끊임없이 육성하려고 노력했지만 쉽지 않았다. 선발이 5이닝 정도에 물러나면 6회를 책임질 수 있는 선수가 마땅치 않았다. 필승조로 넘어가는 연결고리를 찾지 못했다. 지난 2년 동안 김도규가 그 역할을 어느정도 수행했지만 지난해 연말 팔꿈치 뼛조각 제거 수술을 받고 돌아온 뒤 여전히 좋았던 시기의 모습을 찾지 못하고 있다.
이민석 서준원 등이 이 역할을 해줄 수 있는 선수들로도 꼽혔지만 이민석은 올해 개막전에서 팔꿈치 인대가 파열되는 부상을 당했다. 내재되어 있었고 관리를 해줘야 했던 팔꿈치 인대가 갑자기 버티지 못하면서 결국 토미존 수술을 받아야 했다. 시즌을 앞두고 미성년 대상 성범죄로 기소된 서준원은 방출됐고 이제 롯데 구성원 모두가 아예 언급을 안하는 금지어가 됐다.
대신 롯데는 방출된 노장 투수들을 대거 영입하면서 불펜 뎁스를 키웠다. 신정락(36) 윤명준(34) 김상수(35)를 차례대로 영입했다. 이들은 최전성기에서 한풀 꺾인 노장이었다. 전성기의 활약은 아니지만 어느정도 역할을 해줄 수 있는 시기는 있을 것이라고 믿엇다. 신정락과 윤명준은 잠시 반짝이는 시기가 있었지만 꾸준하지 못했다. 그러나 김상수는 달랐다. 투혼의 화신이 되어 마운드에서 열정을 불태우며 전성기를 방불케 할 정도로 반등에 성공했다.
김상수는 올해 사실상 필승조였다. 최준용이 부상으로 빠졌을 때는 불펜진을 지탱했다. 50경기 등판해 3승1패 1세이브 11홀드 평균자책점 3.79(38이닝 16자책점)의 기록을 남기고 있다. 2019년 KBO 최초 40홀드를 기록했던 역사적인 홀드왕이었던 경험을 올해 롯데 불펜에 고스란히 이식해서 열정과 활력을 불어넣고 있다. 현재 롯데 최다 등판 투수이면서 리그 불펜 투수 전체로 봐도 정우영(LG) 박영현(KT)와 함께 최다등판 공동 3위에 올라 있다.
최준용이 돌아오면서 김상수는 다시 연결고리 역할로 돌아갔다. 특히 팀이 추격을 하는 상황이나 근소하게 뒤지는 상황에서 경기를 포기하지 않았다는 벤치의 의지를 표출하는 투수였다.
그럼에도 후반기의 공헌도는 더 눈부시다. 11경기 3홀드 평균자책점 2.16(8⅓이닝 2자책점)의 성적. 후반기 위기 상황에서 1순위로 호출받는 투수로 이미 3연투도 두 차례나 펼쳤다. 특히 후반기 15명의 승계주자를 이어 받았지만 홈으로 들여보낸 주자는 단 1명에 불과했다. 승계주자 실점율은 6푼7리에 불과하다.
그런데 이번 주말 KIA 3연전에 김상수는 등판할 수 없다. 지난 10일 고척 키움전에서 왼쪽 종아리에 통증을 느꼈고 왼쪽 종아리 근육 미세 파열 부상을 당했다. 엔트리에서 말소되지는 않았다. 래리 서튼 감독은 “일단 파열 정도가 작기 때문에 3~5일 정도 지나면 회복이 될 것이라고 예상한다. 추후 차도를 지켜봐야 한다”라면서 “하지만 김상수는 공을 던질 수 있다. 항상 준비되어 있다고 말한다. 팀을 위해 언제나 헌신할 수 있는 선수”라며 김상수의 열정을 소개했다.
하지만 김상수의 부재는 곧바로 드러났다. 든자리는 몰라도 난자리는 안다고 하는 속담이 딱 들어맞는 날이었다. 12일 KIA전에서 선발 정성종이 무너졌고 타선도 초반 제대로 터지지 않으면서 1-8까지 끌려갔다. 두 번째 투수 심재민이 어느정도 버텨줬지만 실점을 피할 수는 없었다. 하지만 5회말 대거 4점을 뽑아내며 KIA를 5-8까지 추격했다. 5회에 3점차 상황이면 충분히 불펜도 승부를 볼 수 있었다. 이날 같은 추격전에 필요한 선수가 바로 김상수였다.
다만 김상수가 없는 상황에서 가용 자원은 한계가 있었다. 무턱대고 필승조를 투입할 수도 없었다. 추격조인 김도규 최영환 등 등판했지만 1이닝을 버티는 것도 버거웠다. 결국 점수 차를 지키지 못하고 5-13으로 패했다. 만약 김상수가 건강했다면 5회말 추격의 분위기를 조성한 뒤 6회를 책임졌을 것이고 다시 추격하는 흐름을 만들 수 있었다.
부활한 김상수는 역설적으로 부재가 존재의 이유를 확인시켰다. 어쩌면 김상수의 공백은 더 길어질 수 있다. 김상수의 부상 추이에 촉각을 곤두세울 수밖에 없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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