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자리 메우는 것이 내 일이다".
든든한 멀티형이 돌아왔다. LG 트윈스는 지난 8일 KIA 타이거즈와의 광주경기에서 황당한 일을 겪었다. 타자들이 KIA 164승 투수 양현종을 상대로 집중타를 터트렸다. 1회 5점, 2회 3점을 뽑았다. 9안타 1볼넷을 앞세워 8득점을 올렸다. 사실상 조기에 승부를 마친 것이나 다름없었다. 귀중한 1승이었다.
그런데 하늘이 돕지 않았다. 폭우가 쏟아지더니 야속하게도 1시간 넘게 멈추지 않았다. 심판들도 왠만하면 경기를 진행시키고 싶었으나 그라운드 사정이 불가능했다. 염경엽 감독도 "뚜껑이 열렸다. 94경기만에 편하게 야구를 보는가 싶었는데 하늘이 경기를 끝내버렸다"며 허탈감을 감추지 못했다.
염감독의 걱정거리는 불운의 후유증이었다. 완전히 1승을 놓쳤다는 아쉬움이 선수들의 분위기와 경기력에 안좋은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우려였다. 그러나 기우에 불과했다. 햄스트링 부상 회복을 마치고 돌아온 35살의 맏형 멀티 내야수가 한 방으로 불운의 싹을 잘라버렸다.
2회초 1사3루에서 좌월 투런포를 터트렸다. 이날 등록해 8번 2루수로 선발라인업에 이름을 넣더니 첫 타석 초구, 그것도 149km짜리 몸쪽으로 꽉찬 직구를 벼락스윙으로 걷어올렸다. 치기 힘든 이의리의 공을 기가막힌 타이밍으로 가격했고 승리로 이어지는 한방이 됐다. 세 번째 타석에서도 비슷한 코스로 직구가 들어오자 좌중간 2루타로 응답했다.
복귀 첫 날 결승타와 멀티안타를 터트리며 안좋은 기운을 깨끗하게 청소해준 것이다. 전반기 1군에서 2할8푼8리 4홈런 31타점 25득점의 견실한 활약을 펼쳤다. 유격수를 제외하고 내야 포지션을 메워주는 멀티플레이어로 힘을 보탰다. 햄스트링 부상으로 7월6일 빠졌고 34일만에 돌아오더니 베테랑의 힘을 보여주었다.
염경엽 감독도 "어제 취소경기로 인해 안좋은 분위기로 갈 수도 있었는데 돌아온 김민성이 초반 투런홈런을 쳐주며 경기를 잘 풀어갈 수 있었다"고 고마움을 표시했다. 김민성도 "2군 마지막 경기 3번째와 4번째 타석에서 타이밍이 잡히고 감도 잡혔다. 2군 경기에서 안타는 없었지만 이 타이밍으로 1군가면 안타가 나오겠다고 생각했는데 나왔다. 그 타이밍이 오늘 이어졌다"며 웃었다.
재활기간도 허투로 보내지 않았다. 염감독이 인터뷰에서 "민성이가 없으면 대타 쓰는 것과 선발라인업 짤때 고민이 된다"는 말을 들었기 때문이었다. "감사하게 생각해 더 철저히 준비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타이밍 잡는 등 1군에서 루틴을 계속 가져갔다. 1군에서 좋았던 것을 잊어버리기 싫었다. 스윙와 티베팅 등 감독님과 캠프때부터 해왔던 것을 계속 했다"고 말했다.
김민성의 복귀는 LG는 타선의 짜임새는 물론 내야진에서 활력을 불어넣을 수 있게 됐다. 쉼없이 출전하는 문보경, 신민재 등에게 휴식을 부여할 수 있고 확실한 대타 옵션도 추가됐다. 좌타들이 많은 타선에 우타 옵션도 든든해졌다. 아시안게임에 출전한 문보경의 대체자로 메울 수 있다.
김민성은 "시즌 초반부터 말했지만 빈자리 메우는 것이 내 몫이다. 그동안 민재나 보경이나 내야수들이 고생이 너무 많았는데 지금까지 빠진 만큼 그 선수들의 피곤함을 조금이라도 덜어주면 좋지 않을까 한다"며 웃었다. 동생들의 뒤를 돌봐주는 든든한 형이 돌아왔다. /sunny@os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