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SEN=백종인 객원기자] 3회가 끝났다. 여전히 스코어는 0-0이다. 홈 팀 타자들이 어리둥절한 표정이다. 상대 선발은 만만해 보인다. 기껏해야 90마일 빠르기다. 변화구라고 해 봐야 별것 없다. 흔한 체인지업에, 커브 정도다. (한국시간 8일, 클리블랜드-토론토 경기)
그런데 이상하다. 타석에 들어가면 다르다. 왠지 만만치 않다. 귀신같이 가장 먼 쪽으로만 공략한다. 배트를 내밀기 힘든 자리다. 그게 전부가 아니다. 한 번씩 깜짝 놀라게 만든다. 안쪽 깊은 곳에 붙이기 때문이다. 88~89마일짜리로 겁도 없다. ‘어랏? 이건 뭐지?’ 움찔하는 순간 당한다.
게다가 높게, 낮게, 자유자재다. 도무지 종잡을 수 없고, 계산이 안 된다. 다음 공을 예상하는 건 무의미하다. 그랬다가는 허를 찔리기 십상이다. 어쩌다 괜찮은 타구도 나왔다. 하지만 매번 수비 정면이다.
그런 4회 초다. 선두 타자(스티븐 콴)는 힘없는 2루 땅볼이다. 10번째 타자까지 1루도 못 밟았다. 11번째 도전자는 안드레스 히메네스다. 카운트 2-2에서 5구째. 포심 패스트볼이 바깥쪽 낮은 코스에 박혔다. 스피드 90.3마일(145.3㎞)이 찍힌 공이다. 보더 라인 안에 정확히 걸렸다.
투수는 한 두 걸음 마운드를 내려온다. 삼진을 확신한 움직임이다. 그런데 구심의 생각은 다르다. 오른손이 꿈쩍도 않는다. 대신 손가락으로 볼카운트(3-2)를 확인시켜 줄 뿐이다.
투수가 빙긋이 웃는다. 싸늘한 냉소다. 홈 팀 중계석에서도 탄식이 나온다. 발리 스포츠 그레이트 레이크스의 캐스터는 “이런(Oh, man)” 하고 깜짝 놀란다. 곁에 있던 해설자는 웃기 시작한다. 죽었던(삼진 아웃된) 타자가 살아났다는 키득거림이다.
이 판정 하나로 많은 것이 달라졌다. 다음 공도 낮게 빠진다. 볼넷이다. 퍼펙트 투구가 깨진 것이다. 우리 팬들의 불만이 폭발한다. 현지에서도 마찬가지다. 블루제이스를 응원하는 SNS에 비난이 쌓인다. ‘완벽한 스트라이크를 놓쳤다’는 분노다.
심지어 부상과도 연관을 짓는다. ‘블루제이스 네이션’이라는 매체다. “심판이 볼 판정만 제대로 했으면 아무 일도 없었을 것이다. 아주 명확한 세 번째 스트라이크를 놓친 게 화근이다. 그게 아니면 이닝을 마쳤을 것이고, (강습 타구를 친) 호세 라미레스와 마주칠 일도 없었을 것이다.”
물론 운명론이다. 어느 정도 비약은 있다. 5회에 다시 만날 것 아닌가. 그때는 아무 일도 없으리라고 누가 보장하겠나. 그만큼 아쉽고, 안타까운 마음의 표현이리라.
하지만 오심은 그렇다 치자. 도대체 왜 그런 일이 생겼을까. 왜 그렇게 명확한 스트라이크를 놓쳤을까. 채드 페어차일드(52)는 상성이 괜찮은 구심이다. 류현진과는 한번 마주쳤다. 토론토 첫해인 2020년 9월 14일 메츠전 때다. 6이닝 1실점으로 3승째를 올린 게임이다. 볼넷 없이 탈삼진 7개로 호투할 때도 마스크를 썼다. 경력 19년의 베테랑이다.
이날도 나쁘지 않았다. 아슬아슬하게 걸친 공도 곧잘 잡아줬다. 그런데 문제의 46번째 투구에서, 딱 한 번 흔들렸다. 갑자기. 그럴 공이 전혀 아닌데.
의심 가는 부분이 있다. 포수의 프레이밍이다. 그러니까 대니 잰슨의 ‘미트질’이 잘못된 것 아니냐는 가설이다.
실전을 보시라. 낮은 존을 통과한 공이다. 정확하게 캐치해주면 되는 코스다. 그런데 잰슨이 여기서 기술을 부린다. 위쪽으로 잡아챈 것이다. 조금 더 스트라이크처럼 보이게 하려는 의도일 것이다. 그러나 너무 심했다. 미트 낀 손이 거의 타자 벨트 높이까지 올라갔다.
프레이밍(framing)은 중요한 테크닉이다. 얼마나 더 많은 스트라이크를 얻어내느냐를 따지는 지표다. 세이버메트릭스가 강조하는 숫자이기도 하다. 따라서 포수 평가에 높은 비중을 차지하게 된다. 문제는 그러다 보니 과해지는 현상이다.
이건 일종의 눈속임이다. 구심의 착각을 유도하는 손장난 같은 것이다. 때문에 거부감이 전제된다. 메이저리그 사무국은 매 경기가 끝난 뒤 심판의 판정에 대한 자료를 공급한다. 잘못된 부분을 복기하라는 의도다. 아울러 연봉 고과의 자료가 되기도 한다.
즉, 심판은 포수의 동작에 예민하기 마련이다. 속지 않으려는 의지가 강하다. 따라서 과한 프레이밍은 역효과를 불러오기 십상이다. 그래서 늘 강조되는 게 있다. ‘가급적 조금만 움직여라.’ 물론 그런데도 바운드된 볼까지 프레이밍 하는 포수가 있기는 하지만….
대니 잰슨은 나쁘지 않은 수비형 포수였다. 적어도 류현진이 이적하기 직전까지는 그랬다. 2019년 CFR(Catcher Framing Runs)이 ‘4’였다. 리그 전체 14위에 해당하는 기록이다. 그러나 이후 하락세다. ‘-1~1’ 사이를 오락가락했다. 올해도 ‘1’에 그친다. 리그 25위다. 팀 내에서도 알레한드로 커크(4, 10위)에 뒤처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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